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
박홍규 지음 / 우물이있는집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1.
책의 내용은 주로 사이드의 주저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얘기다. 박홍규 선생이 번역하기도 한 책이다.

촘스키의 책은 꽤 많이 번역되어 있지만, 사이드의 책은 번역된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2.
아래는 책을 읽다가 메모 해 둔 것을 옮긴 것이다.


3.
국제법 : 제국주의의 수단으로 기능, 국제법 자체가 그런 필요에 의해 나왔으며, 침략 후 상대가 전혀 모르는 교묘한 언어로 조약이란 것(형편없이 불평등한)을 맺고, 군대를 진주시켜 법과 질서, 법의 지배를 미명으로 삼아 식민지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동양에 대한 서양침략의 합리화이며 서양의 우월성에 대한 합리화이다.

더불어 박홍규 선생의 전공이 바로 법(노동법)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법학 자체가 '학문'이 아니라 권력의 하수인적 '기술', 또는 하수구와 같은 쓰레기 치우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학문은 순수한가?


4.
근대 일본의 동양관, 조선관 :
일본 현대학문의 기초를 쌓았다는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 = 유럽 = 진보를, 미개 = 아시아 = 정체와 대비하면서 아시아 정체의 원인을 서양과 같이 18세기 이래의 전제주의에서 구했다. 그러나 일본은 동양의 예외로 보면서 특히 조선을 극단적으로 폄하하는 비역사적인 용어를 구사하여 대비시켰다. 동시에 조선은 서양이 동양에 대해 그랬듯이 관능적인 대상으로 묘사되어 일본의 방탕한 무리들을 내보내는 장소, 도덕적인 본토에서는 불가능한 성적 체험의 유발지로 묘사하기도 했다.

* 언젠가 읽은 <밤의 일제 침략사>가 생각난다.


5.
"만일 학생들에게 회의를 갖게 할 수 없다면, 교사는 학생들을 결국 지식과 도덕에 예속되는 노예로 만드는 셈이다. 진정한 교육이란 권위자들이 말하는 것을 아무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심하고 배움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6.
사이드는 서양이 만든 동양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예술과 학문으로 제도화되어 서양의 동양지배를 정당화하는 권력 장치로 기능하는 과정으로 오리엔탈리즘을 분석한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서양과 동양이라는 구별 자체가 서양에서 만든 그러한 학문권력의 기초였다고 하는 점이다. 그것은 문명과 야만 선진과 후진이라는 구별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구별 밑에는 학문과 권력의 야합이 있음을 사이드는 비판한다.


7.
원서 읽기를 학문 자체로 혼동하는, 그것이 바로 한국의 학문이다.

일본에서는 자연과학을 제외한 인문사회과학의 외국박사는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 사실상 거의 무의미한 것으로 인식된다.

*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반대다. 외국학교의 박사 소지자가 아니면 교수로 임용되기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더구나 그 외국박사란 것도 거의 90퍼센트 이상이 미국 학교 박사학위다.


8.
오늘의 우리 대학에는 학문이 없다. 미국의 오리엔탈리즘에 세뇌되어 '미국유학 + 정경유착'으로 일관한 원로교수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


9.
<국화와 칼>(루스 베네딕트) :
기본적으로 자기의 이상화에 의한 다른 문화의 가치판단.
문화의 복합성과 역사성을 무시한 안이한 일반화, 에피소드주의, 개념규정의 애매함, 조사대상이 갖는 객관적인 특수성 무시 등 수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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