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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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북한 엘리트 출신 고위 관리로 한국전쟁에 참가했다가 포로로 잡혀 10여년간 복역한 정찬우라는 실제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김일성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스물두살의 나이에 여학교 교사로 부임한 주인공은 오로지 글을 쓰는 일과 학문연구가 전부이며 대학총장 딸과의 약혼을 앞두고 있었다.하지만 영남지방 교육위원으로 파견된뒤 삶의 비극이 시작된다. 북에서 듣던 상황과는 다르게 유엔 연합군의 폭격으로 생사를 넘나들고 빨치산이 되어 산속에 숨어지내기도 하며 전쟁의 참혹함은 그의 사상과 이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참혹한 전쟁을 한단말인가? 

학교에서 배운 사상이론은 단순했지만, 전쟁은 모든 사람의 생각을 헝클어놓았다. 선과 악의 경계를 오가던 이봉춘도 그랬고 박창섭도 그랬다. 어쩌면 정찬우 자신도 정신분열 상태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진리나 절대 선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북 아니면 남을 선택해야 하고, 공산주의가 아니면 자본주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정신을 분열시켜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227p)

전쟁이란 소재로 만들어진 책이나 영화들은 이미 많이 보았기에 실제 인물이 겪어야 했던 비극적 삶의 모습은 낯설게 다가오진 않는다. 그러나 전쟁에서 버려진 사람들의 포로수용소와 형무소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에 휘말려 강제로 동원되어 싸우다 죽거나 포로가 되는 사람들. 모든 권리를 빼앗긴 포로들에게 쏟아지는 핍박과 폭력은 무자비하게 자행된다. 극렬한 공산주의이자 인민군 고위 간부인 박창섭과 이봉춘이 포로가 된뒤 비열한 반공주의자로 변신해 함께 수용된 동료들을 괴롭히는 모습은 극한 상황속에서 드러나는 추악한 인간상을 들여다본 듯 씁쓸해진다.

책을 읽다보니 예전에 보았던 '남부군'이란 영화가 생각이 난다. 승전보를 울리며 낙동강까지 내려왔던 인민군들이 패전을 거듭하며 결국 남으로부터 죄어오는 추격과 북으로 부터 버림받게 되는 빨치산에 대한 이야기로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를 읽으며 소설의 내용과 비슷한 곳에선  자연스레 장면들이 그려지곤 했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의 고통속에서 토벌군에게 쫓기고 결국 빨갱이란 옷을 입은 사상범으로 법정앞에 선 정찬우. 10년이란 시간을 고스란히 감옥에서 보내고 고향땅위에 엎어져 목놓아 오열하는 그의 모습은 일제시대 해방후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세력들과 잘못된 역사속에서 파생된 또다른 비극이 아닐런지..
한사람의 수기가 이뤄낸 책한권이지만 불행했던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 보게된 소설이다.

약소민족의 비애를 느꼈습니다. 우리 민족이 강대하였더라면 일본의 식민지 노예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남북으로 양단되는 서러움도 없었을 것입니다. 국토가 두 동강이로 나누어진 이 약소민족의 처지가 저로 하여금 법정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생각됩니다.(2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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