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함께 살았던 아내나 남편이 죽은뒤 숨겨진 과거를 알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쩌면 나를 만나기 전 어떤 삶을 살았는지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는지,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게 되진 않을까. 드라마나 영화 속에 사랑하는 배우자의 숨겨진 과거를 마주하게 된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다. 내가 모르는 사랑하는 사람의 지나온 시간을 받아들이는 모습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아서 페퍼]에서는 사랑하는 아내가 죽은 뒤 알게되는 아내의 숨겨진 과거를 마주하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있다. 꼭 1년 전 오늘, 그의 아내가 죽었다. 세상을 떠났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죽었다라는 말이 욕이라도 된다는 듯이. 아서는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증오했다. 그 말은 잔물결이 일렁이는 운하를 가르며 지나가는 보트처럼, 혹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떠다니는 비눗방울처럼 온화하게 들렸다.(10p) 40여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가 죽은 뒤 홀로 살고 있는 69세 아서페퍼. 평생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갑작스런 아내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긴 노인의 쓸쓸한 일상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평범하고 조용한 성격의 아서페퍼는 아내인 미리엄이 폐렴으로 죽은지 1년여만에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낯선 팔찌를 발견하게 되고 팔찌에 달린 여덟개의 참을 단서로 아내의 과거 행적들을 따라 예기치 못한 여행을 하게 된다. 인도, 런던, 파리를 여행하며 팔찌에 달려있는 참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아서의 변화가 시작된다. 생각지도 못한 아내의 과거로 인해 소중한 그들의 추억에 위기도 찾아오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전해 듣는 젊은 아내의 모습은 활기차고 아름답다. 아내의 과거 속 사람들을 대할때마다 혼란과 갈등, 질투도 생기지만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음을 깨닫게 되는 아서. 무엇보다 여행을 통한 아서의 내면의 변화는 아내가 죽은 뒤 불안해진 가족들의 관계마저 회복시키는 계기가 된다. 자신조차 알지못했던 열린 마음과 포용력, 스스로 알고있는 것보다 자신이 강하고 속깊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아서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위해 한걸음 나아가게 된다. 마치 황무지에 홀로 버려진 씨앗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씨앗은 모든 역경을 딛고 단단한 땅을 밀어내며 마침내 싹을 틔웠다. 초록색 싹이 움트고 있었다. 그는 그 싹을 키우고 싶었다. 언젠가 프레더리카의 잎이 시들어 가장자리가 갈색으로 변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물을 주고 애정을 주었다. 이제는 그 자신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228p) 갑작스레 찾아오는 이별과 상실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다르다. 과거를 움켜잡고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두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훌훌털고 삶의 주도권을 잡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상실감에 빠져 자신만의 공간속에 숨어살던 시간들을 벗어나 아내가 남겨준 지표를 따라 스스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아서페퍼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뭉클하고 따뜻한 위로를 주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사랑과 추억을 벗어나 현재의 삶을 사랑하게 된 노년의 아서페퍼에게 무한 응원을 보낸다.
아서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