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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조앤
제니 루니 지음, 허진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어릴적 즐겨 보았던 007 시리즈는 스파이영화를 이야기할때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영화다. 제임스본드나 본드걸처럼 화려한 외모와 초인적 능력, 로맨스와 액션이 가미된 스파이의 스릴넘치는 첩보활동은 지금까지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오랜시간 꾸준히 시리즈를 내놓고있다.
그에 반해 스파이를 소재로 쓴 신작소설인 [레드 조앤]은 흔히 보아왔던 스파이가 활동하는 첩보영화와는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레드 조앤]은 다재다능한 아우라를 뽐내는 히어로나 팜무파탈 여인의 모습의 주인공이 아닌 평범한 여대생이 등장한다.그래서인지 평범한 대학생인 그녀가 스파이가 되어가는 과정이 어떻게 그려질지 읽기전부터 궁금해졌다.
당시 여성으로서는 쉽지않았던 켐브리지 대학에 입학해 자연과학을 공부하던 주인공 조앤이 스파이가 된 사연은 무엇일까?
한남자를 만나 다른 삶을 살며 조용히 남은 시간들을 보내고 싶었던 노년의 조앤은 윌리엄의 부고기사후 M15요원들이 찾아오면서 과거 그녀의 스파이활동에 대해 심문이 시작된다. 졸업후 대학연구소에서 진행되는 정부의 비밀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조앤. 연구의 결과로 미국이 히로시마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많은 사상자를 만든 사건으로 충격을 받는 그녀. 인류애라는 내적갈등에 싸인 조앤에게 열띤 공산주의자인 연인 레오의 설득으로 러시아에 기밀문서를 넘기게되고 스파이로 활동하는 계기가 된다. 힘의 균형을 위해 소신을 갖고 행동했다는 조앤의 선택. 그녀가 살고있는 혼란스러웠던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공감할수도 또 조앤의 아들 닉처럼 쉽게 비난할수도 없어진다.
[레드 조앤]의 작가인 제니 루니는 실제로 KGB를 위해 40여년의 오랜시간동안 활동하던 영국의 스파이 멜리타 노우드를 모티브로 이소설을 쓰게 됐다한다. 제2차세계 대전이후 스파이를 키워 정보를 수집하던 냉전시대에 여성으로써 중요한 각종 기밀문서를 소련측에 넘겼던 두여인의 행보는 비슷하다. 하지만 소설을 읽을수록 주인공 조앤에 대해선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명확한 정의가 담긴 정치적이념의 행보인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대학시절 같은 대학에서 우연한 기회로 알게된 소냐와 그의 사촌 레오. 그들을 통해 사회주의에 눈을 뜨게 되는 조앤이지만 결국 그녀가 스파이란 길에 들어서게 된건 레오에 대한 사랑과 이기심, 철저한 공산주의였던 친구 소냐에게 휘둘렸던 탓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그녀는 한 가지 입장 -- 사과, 진심어린 후회 -- 만 허용된다는 것을 알지만 사실 항상 자신이 용감한 일을 했다고 믿었다. 그렇다. 만약 당시에 소비에트의 만행을 조금만 더 잘알았다면 주저 했겠지만,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 당시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다. 조앤은 혁명을 구하기 위해서 그 일을 한 것이 아니었다. 히로시마 때문에, 버섯구름 사진들, 사상자들, 사람을 할퀴는 끔찍한 열기에 관한 기사때문에 그 일을 했다. -445p
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다리가 그려진 책의 표지로 경쾌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풋풋한 대학생 조앤과 레온, 소냐의 관계에서 오는 묘한 감정들과 심리들. [레드 조앤]은 한편의 영화같으면서 가독성도 좋아 술술 잘 읽혔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덕분에 더욱 매력적인 소설이 아니었나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