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니 정말 눈 깜짝할 사이 30대를 훌쩍 지나버렸다. 늦은 결혼으로 엄마라는 꼬리표와 함께 육아로 정신없이 보내버린 나의 30대. 그때문인지 내게도 머물다가버린 서른셋이란 나이와 '당신은 외로운 사람인가요?'란 표지속 문장에 유난히 눈길이 갔던 한권의 책인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은 다산의 신간인 하유지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처음엔 힐링에세이 종류가 아닐까싶었던 책이었는데 소설이라 다행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고 서른셋이란 나이와는 거리가 있어 공감하긴 힘들겠지만 재미있게는 읽을수 있겠구나 싶었다. 근데 책을 읽다보니 나이랑은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소설의 주인공 영오는 참고서를 만드는 출판사 편집자이다. 서른셋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검은수첩에 적혀있던 세개의 이름. 그들을 만나면서 그녀는 삶의 변화를 겪게된다. 사년전 폐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원했던 영오. 그런 아버지가 맺어준 인연은 서른이 넘도록 타인과의 관계가 힘에 부치던 고단한 그녀의 삶에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지. 열일곱 고등학교진학을 포기한 공미지, 중학교 계약직 수학선생인 홍강주, 고양이 버찌와 함께 살고 있는 703호 할아버지인 두칠, 잘나가는 만두집 사장인 문옥봉할머니, 존재조차 몰랐던 이모인 명보라까지. 각자의 사연으로 상실을 겪은 이들의 외로움이 서로를 만나면서 위로가 되어준다. 이 하얀 플라스틱 고리를 샀을 때, 비닐 포장에는 200그램 이하의 물건만 걸라고 적혀 있었다. 영오는 가끔 고리를 살펴본다. 떨어지거나 망가질 기미가 보이지는 않지만 고리와 거울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는 모른다. 영오는 그 작고 가벼운 플라스틱 쪼가리가 꼭 자기 자신 같았다. -54p 외로움을 느끼는 나이가 따로 있을까. 누구나 살면서 외로움은 느끼기 마련. 생각보다 공감가는 문장이 많았고 유쾌하면서도 작은 울림을 주었던 소설. 문득문득 아이들 생각 부모님 생각에 눈물도 나면서 가슴이 뭉클했던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너무 좋았다. 사는 게 너무 바빠. 숨과 숨 사이가 서울에서 부산보다 멀어. 엄마는 여기 없으니까, 이건 그냥 표지판이니까, 괜찮죠? 내가 누군가의 흔적이라는 걸 잊지 않을게. 엄마가 나라는 표지판을 이 세상에 세우고 갔다는 걸 잊지 않을게. - 27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