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첫 작품인 <고래>가 너무나도 인상 깊었기에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곧바로 구매해서 읽었다. <고래>에서 보여준 엄청난 서사가 바탕이 된 글은 아니었지만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로 구성된 글이었다. 작가의 삶과 내면을 조금 엿볼 수 있는 글이어서 친근함이 더 느껴지기도 했다.
고령화가족, 제목처럼 가족구성원의 평균 나이가 49세이다. 중딩 날라리인 조카를 포함해도 49세이니 정말로 고령화가족이기는 하다. 제목만 보고 고령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를 풍자하고 있는 세태풍자소설이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고령화로 인한 문제보다는 그냥 단순히 나이가 많은 가족구성원들이 가족애를 찾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까닭에 안내글에도 ‘막장가족의 유쾌한 이야기’라고 언급했을 터.
<고령화가족>은 한마디로 ‘특별한 가족의 따뜻한 이야기’이다. 이기주의·개인주의가 활개를 치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를 사는 개개인들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점점 소원해지는 가족 간의 왕래, 그로 인한 유대감 상실, 개인의 우울함이 커져도 혼자서 앓다가 자살로 치닫고 마는 암울함……. 자신의 백그라운드로 든든하게 내세울 수 없는 가족은 별 의미가 없는 듯하다.
특히나 이 작품에서 그리는 가족은 더 그렇다. 살인을 저지르고 복역까지 한 큰아들, 영화판에서 굴러먹다 실패자로 낙인찍혀 자살까지 생각한 둘째아들, 바람을 피워 이혼당하고 술집을 운영하며 사는 딸, 담배 피우다 들켜 삼촌에게 삥 뜯기는 날라리 중딩 손녀까지……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하지만 <고령화가족>은 사회에서 실패자로 불리는 오감독, 불가촉천민처럼 여겨지는 살인자 오함마, 이혼녀에 애 딸린 술집 여자 오미연, 가출해 술집으로 팔려갈 뻔했던 날라리 중딩에게도 소통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공간이 있음을, ‘가족’만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자양강장제임을 넌지시 보여준다.
‘나’로 나오는 오감독은 실패를 반복하고 도저히 다시 설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자살을 생각한다. 그때에 닭고기를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전화가 걸려온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아들이 자살에 직면한 상태를 모르고 닭을 먹으러 오라고 전화를 한 엄마. 아마도 엄마는 아들의 상태가 어떠함을 가슴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을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가슴 뭉클했다.
엄마의 전화 한 통으로 오감독은 자신에게도 기댈 곳이 있음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막장가족 속으로 들어가 부대끼며 산다. 그리고 자신이 막장가족의 일원임을 깨닫는다.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막장인생을 사는 형이지만 결국엔 편을 들어줘야 할 제 가족임을…… 쓸모없는 인생낙오자라고 조롱을 당하는 자신이지만 조카가 나쁜 길로 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삼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 부분도 감동적이다.(결국은 오함마가 벌써 삼촌의 도리를 먼저 했지만 말이다.)
책을 읽어가며 실패자로 낙인찍힌 오감독이 재기에 성공해 근사하게 영화계로 컴백하길 바랐지만 그것은 내 바람으로만 끝났다. 그렇지만 어쩌랴, 그게 인생인 것을…….
아무튼 <고령화가족>은 내게 가슴 찡한 감동을 준 작품이다. 가족이라는 것이 삶의 무게로 느껴지는 이들, 가족은 자신에게 상처만 주는 곳이라 여기는 이들, 엄청난 비상을 꿈꾸지만 늘 발목을 잡는 사람들이 가족이었던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가족이 부담스러웠던 이들이 읽는다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다시 생기게 하는 작품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비록 눈꼽만큼이라도 괜찮은 거니까.
아마도 이 책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가족은 타인이 꺼리는 당신의 삶의 무게를 대신 져줄 수 있는 벗이다. 대신 져주며 구시렁대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때론 욕도 좀 먹긴 하겠지만 삶의 무게가 줄어드는 기쁨을 생각하시라!”
“가족은 비상하다 떨어지면 트램펄린처럼 자신을 받쳐주는 인생 최후의 보루이다. 그들이 탄력 좋은 트렘펄린이 아니어서 같이 나자빠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족은 당신이 추락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을 생각하시라!”
“가족은 당신의 어두운 면을 알아도 고발하지 않는 유일한 이들이다. 어디 가서 입 밖에 꺼내놓지 못하는 말도 그들에게는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