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겠다는 마음
오성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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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단편보다는 묵직한 느낌의 책들인 장편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편이다.

단편을 읽다보면 왠지 읽다가 끝난 느낌이 들 때가 많고, 뭔가 아쉬움이 남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되겠다는 마음이 단편이고, 잘 알지 못하는 작가의 작품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오만이었고, 자만이었다...

결코 가볍거나 그냥 읽고 지워질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여덟 편의 단편들을 다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 긴 숨이 나왔다.

작품마다 녹아있는 작가의 이야기들이 만들어진 소설이 아닌 일기와 같은 수필의 느낌으로 사실적인 공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래, 이런 일들이 우리 생활 속에 있지. 우리 옆집이나 뒷집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었을 거야. 내가 알던 그 누군가가 겪었을 이야기야.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어.’ 라며 혼잣말을 하게 되버렸다.

하지만, 소설이기에 가능한 판타지적인 요소도 분명 있어서 창의적인 소재에서의 흥미 또한 뺄 수 없다.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내가 존경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생각지도 못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이렇게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에 무한의 존경심을 표한다.

 

여덟 편의 이야기가 한 편의 이야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허희문학평론가의 해설은 절대 빼먹지 말고 꼭 읽어야 한다.

요즘말로 바로 컬쳐 쇼크그 자체다.

 

마지막장까지 모두 다 읽고 난 후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라는 띠지의 말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은 판타지야.

이 소설은 사랑이야기야.

이 소설은 역사이야기야.

이 소설은 여행이야기야.‘ 등등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소설이다.

단편소설을 이렇게 재미있게 순식간에 읽어낸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정말 푹 빠져서 금세 읽어버렸다.

다시 한번 더 읽어 보려한다.

어떤 느낌으로 다시 느껴질지 내 또 다른 기대를 하게 된다.

 

-, 어해 P20,21

어쩌면 배가 다시 울음을 터트린 건 아닌가, 노인은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 소리는 금광호가 우는 소리나 대형 선적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오직 노인에게만 들리는 바다의 소리였다.

 

-핑크 문 P50

여자는 멈칫했다.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에선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방독면 아래로 보이는 목덜미가 가쁘게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여자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게 포름알데히드의 지독한 연기가 아니라면 방독면의 안경알 두 개가 희뿌옇게 흐려지는 까닭은 분명 눈물에 의한 습기였다. 이 여자는 나를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나 대신 내가 되고 싶은 것인가. 진정 나는 이 여자의 구원자였던 것인가.

 

-아주 잠시 동안 P79

그가 바라는 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것이었던건가. 그러나 그도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는 걸 분명 알고 있었다. 그가 한때 미워했던 도돌이표처럼, 그가 사라져버린 건 더는 그 집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창고와 라디오 P204

무언가가 되겠다는 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라는 거다.’

강이 체념한 듯 중얼거린 그 말이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날카로운 경적이 이제 막 항구를 벗어난 노인의 배를 불러 세웠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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