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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그렇게 대답했다 ㅣ 특서 청소년문학 2
이상권 지음 / 특별한서재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작품, 어른들이 만든 세상은 결국 아이들도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버릴 것
같은 소설 『숲은 그렇게 대답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이다,
거울은 예쁜모습만 보여주는게 아니라 우리의 가지각색의 표정과 숨겨진 마음을 표현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걸 생각하면 부모가 겉으로
아무리 좋은 것만을 보여주고 우아한척 가르쳐도 뒤에서 다른 사람의 돈을 빼앗거나 욕을하는 모습을 배우고 똑같은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 수도 있다.
『숲은 그렇게 대답했다』 속 어른들은 그렇다. 장군봉 속 4백여년이 넘은
소나무가 순식간에 침몰해버리며 경악하는 모습의 뒤로, 아이들의 자잘못을 따지고 혼내기보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국회의원과 통화하고, 정부관계자를 모셔와 신성하게 여겼던 숲을 밀고 새로운 산림정책을 진행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못해 소나무 반에 일본산 버드나무 반이 되어버린 장군봉을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우리는 너무도 소중한 숲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미래를 잃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저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숲은 사라졌지만 다시 살려낼 수 있습니다. 불을
낸 아이와 그 가족이 책임을 지고 저 숲을 살려내겠다는 약속을 우리에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허락하신다면, 제가 책임 있는 분들을 만나서 우리의 뜻을 전하고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담판을 짓고 오겠습니다."
우리는 미래가 있는 아이들을 위해 도덕적이지 못한 결정을 선택한 어른들을 어떻게 생각해야만
하는 것인가. 과연 이 선택이 정말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올바르게 나아가도록 이끌어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그들은 헌신적으로
나무를 보살폈어. 심지어 모를 심을 수 없을 정도로 가뭄이 들이닥쳤을 때도 십 리 밖에 있는 저수지까지
발품을 팔아서 나무들을 먹여 살렸을 정도로. 정말 대단한 일이지 않니?
신적인 존재를 단지 신앙이라고 보기 보다는 현실과
대비되는 존재 그 자체로만 생각하면 읽기에 부담스럽지도 않고 소설에서 이상권 작가가 전달하려고 하는 의미 또한 좀 더 명확하게 전달되는 느낌이
든다. 장군봉은 400여 년동안 사람들에게 신적인 존재였다
시제를 지내기도 하며, 대대로 먹고살게 해준 것에 감사하기도 하였고,
숲이 있어 무과에 급제한 사람들이 십여 명이나 나올 수 있었다고 믿으며 살아오던 중요한 존재
그렇게 수백 년 자신들을 보호해 주던 장군봉의
존재를 불과 서너시간만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건 14살, 7명의
아이들이었다.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나이 14살, 부모들과 마을 사람들은 신성한 존재였던 400여년의 역사보다 앞으로
미래가 될 아이들이 더욱 중요하다는 이유로 어떤 대가와 처벌을 맞교환한 어른들은 소나무와 일본산 버드나무가 반씩 자리잡은 장군봉을 다시 울창한
숲으로 가꾸기 위해 헌신적으로 나무를 보살피게 되었고 아이들 역시 숲이 자신들의 일부인 것처럼 생각하며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마을은 젊은이들이 하나 둘 떠나고 물질만능주의, 자본이 더욱 우선시 되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계획형 전원주택이 자리잡은 마을로 변하기 시작하였고 이야기는
아이들이 고1이 된 시점으로 간다. 분명 몰입도가 높은 작품은
맞는데 조금 정신없이 느껴지는 소설이라고 생각이 든게 초반 급격한 전개와 생각보다 너무 다양한 요소로 어른들의 자본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여기에 오고가는 시간의 흐름과 판타지적 요소까지
암이라는 선고에도 끄떡없이 버티시던 아이들의 거인선생님이 돌아가시면서 무덤 터 조차 마음대로
정하지 못해 발인도 못하고 있는 상황, 이미 많은 땅을 팔아버리고 낯선 타인이 정성스럽게 가꾼 땅에
살고 있으니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십 년 전 까지만 해도
이곳은 다랑논에 둘러싸인 작은 동산이었다... ... 그러나 내가 열 살 때, 마른장마 끝에 들이닥친 폭우는 그 뒷동산의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산사태로
대부분의 유골은 찾을 수도 없었다. 문중 사람들은 간신히 찾아낸 유골들을 모아서 화장한 다음 자그마한
납골당에다 안치해놓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땅을 팔아버렸다. 그 땅의 절반 이상을 구입한 건설회사는
무덤 터야 말로 최고의 명당자리라면서 동산마을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장군봉 숲의 경관이 아름다워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낯선 타지인들에 의해 묘지 터를 사용하는
것도 어렵고, 뜻하지 않게 개발이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게 되면서 그 산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던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자본에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아이들은 혼란스러워 할 수 밖에 없어보인다 사랑하는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유언을 지키고 싶지만 돈이 많고
우아한 어른들은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반대를 하고 간신히 만든 무덤마저 불법라고 하니 아이들에게는 숲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부모님 역시 그 돈이라는 것에 장군봉을 포기하려고 하면서 도덕적으로 살라고 하는 가르치시는데 이게 무엇인지
의문스럽고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왜 그렇게 보냐? 내가 이상하냐? 우리 친구들 다 피워. 맥주는 아빠랑 일찍부터 조금씩 했고. 니 눈빛이 꼭 불량 학생이라고 선고하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 같다!"
아이들에게 부모님은 이런 모습이었지 않을까 싶다. 평생을
근면성실하게 살아오신 것 같은데...
개발소식에 땅을 팔려고 하는 어른들이 잘못되었다고 탓하는 것도 우습다. 어쩌면 나라도 그렇게 선택했을 것이다. 그 땅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당장 눈 앞에 더욱 중요한 나의 자식과 인생이 보이는데 숲을 지킨다는 것과 조금 더 넉넉한 삶을 산다는 것 중 어떤 것에 비중이 쏠리게 될까,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마음속으로 외치는 나의 모습도 이중적이며, 아이들만큼은 그렇게 살지 않게 가르치는 부모의 모습도 이중적이다.
몽환적, 판타지적, 그런 부분보다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어렵게 했던 질문 한가지는 '아이들
때문에'라는 자본인가, 수년간 지켜온 장군봉인가
숲을 지키고자 하는 아이들과 현실에 갈등하는 부모님, 그리고 숲이 가진 중요함을 모르는 낯선 외지인
아이들은 어른들이 가지고있던 그 순수함, 그 마음 하나로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하며 어른들은 각자의 이익타산에 따라 조금 더 이익적인 행동을 취하려고
한다. 결국 이 이야기의 끝은 물질만능주의에 살아가는 어른들처럼 아이들도 그 것에 물들어가는 모습일까
"그래도 난 산신령이랑 삼신할미 믿던 그 시절이 더 좋았던 것 같아... ... 신이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사람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아. 저런
산 하나 밀어버리는 것도 순식간이고, 아무도 죄의식을 갖지 않잖아? 만약
신이 있었다면 절대로 그러지 못하겠지. 옛날에는 말이다. 적어도
살아 있는 목숨을 지금처럼 함부로 죽이지는 않았지. 요즘은 무서워서 뉴스를 못 보겠어. 나이든 사람이나 어린것들이나 개구리 잡듯이 생명을 죽이고, 그러잖아. 그래서 난 산신령 같은 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그래야 우리한테
희망이 있는 것이지."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신은 종교라기 보다는 사람들을 통제해주는 그 어떤 것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무언가를 믿지 않아도 산신령이 있으니 함부로 개발해서는 안돼, 사람을 죽이면 어떤것에 깃든 신이 나를 괴롭힐거야. 지금은 한마디도
먹힐 이야기가 아니지만 정말 이 말이 통하던 그 떄가 지금보다는 조금 괜찮은 시절은 아니었을까 잠깐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