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내 얼굴 슬로북 Slow Book 4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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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는 것만큼 기운빠지는 일이 없을 거다. 웃는건 힘껏 양껏 웃고나면 끝이지만 울면서 빠지는 기운, 눈물, 마음의 소비량까지

근데 이 사람마음이라는게 우는게 왜이리도 쉬운지 아파서 눈물나고, 싸우다 눈물나고, 드라마 보다가도 눈물나고, 책 한장 넘기면서 눈물이 방울방울 뚝뚝,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사람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아니라지만 "웃어라, 웃어라, 내얼굴!" 외치며 괴이하고 이상하고 인륜을 어지럽히고 귀신같은 (=괴력난신) 주문을 외워서 해결된다면 하루에 수십번도 외쳐볼 의향이 있다.

 

오늘도 그랬다, 웃으면서 넘기면 좋겠는데 내 다리는 누가 만지기만 해도 아파 자지러지고, 내가 만져도 돌로 찍은 것 마냥 욱신거려서 웃기보다 악소리가 나고, 그 고통을 참다보면 현실에 눈물이 그렁그렁 떨어진다. 만지지마세요 써붙이고 다닐수도 없고, 괜찮냐며 무릎을 턱하니 만지시는 할머니 앞에서 문득 김종광 소설가의 웃어라, 내얼굴이 떠오르더라. 화내지말자, 괜찮다 괜찮다. 괴력난...괴력... 그래 웃자...

 

그런데! 재밌게도 웃어라, 내얼굴은 이 책의 단편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더 많은 짧막한 글들 중 하나의 제목이 웃어라, 내얼굴 인 것인데 이 제목이 뇌리에 콕 박혀서 오늘처럼 힘든 날 주문이 되어버린 것이다. 떨어져 있는 엄마에게 투정을 부릴 수도 없고, 점하나 찍으면 남이라는 남편에게 짜증내면 싸움나고 작가가 말하는 웃어라, 내얼굴은 좋은소설, 웃기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 것보다 조금 더 넓은 인생을 생각하고 있나보다. 그래 좋은 글도 좋지만 웃긴 소설도 반갑다. 헤비하지 않게 짧막짧막한 글들을 모아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그 글들을 보면서 피식피식 웃고, 가족을 떠올리고, 괴력난신이라는 주문을 중얼거려보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그래서 책은 소중한 것이다.

 

내가 소중하다고 말하는 책을 작가는 "계륵"이라고 말한다.

버리지도 못하고, 좋은 일에 쓰지도 않으면서, 집착하는 것 마냥 버리지도 못하고 계속이 품고다는 집착의 응결

나는 책을 버리는게 너무 슬프고, 너무 너무 싫어서 평생 죽기 전까지 보고 또 볼거라 외치지만 사실 한 번 정독하고 나면 두 번 보기에는 세상에 새로운 책들이 너무나 빨리 나와버린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야기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다. 버리고 싶을 때는 많다. 특히 이사할 때! 이 집은 정말 책이 짐의 반이네요 그만큼 많은 책을 읽은 것 같아 뿌듯하다가도 엄마의 잔소리, 집안이 좁아보인다는 신랑의 투덜거림에 짜증이 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집착의 응결은 나를 보여주는 결과인 것이다. 책꽂이가 사진첩처럼 느껴지듯 27년을 살아오며 157cm 짜리 어느 여자사람의 머리와 마음 속에는 수백권의 책들을 읽던 그 순간의 기분을 추억하게 해주고, 때로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하며 주섬주섬 책장을 뒤져보는 백과사전 같은 역할을 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1. 가족에게 더불어, 2. 괴력난신과 더불어, 3. 무슨 날, 4. 읽고 쓰고 생각하고

길어야 한장 반, 두 장 정도 되는 소제목들의 이야기는 20년차 소설가가 살면서 보았던 것을 일기처럼 작품처럼 써내려간 글들이 담겨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재밌는 건 무슨 날에 대한 이야기이다.달력에 표시되어 있는 삼일절, 식목일, 법의날, 근로자의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환경의날, 부부의날, 날은 왜이리도 많은지

이 많은 날들에 대한 생각을 쓴 글들은 평범해서 공감가고, 공감해서 너무 많은 날이 있는 것 같다 생각되면서도 하나 하나에 담긴 의미가 다 달라서 뭉탱이로 2019 "날에 대한 날"이라 통합하긴 어렵겠구나 엉뚱하게 생각도 해봤다.

 

주말이 되면, 등산을 하거나, 스포츠를 즐기거나,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거나, 하는 것을 낙으로 사는 분들이 게시다. 아마 그런 분들은 주말에 움직이지 않으면, 다음 주말까지 목에 가시 걸린 것처럼 불편할 테다. 비 오는 주말이 원수 같으리라. 집에 쳐박혀 혼자 뒹굴뒹굴 노는 상태를 염원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다만 하루만이라도 사람과 차와 업무에 시달리지 않고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은 게다... ... 그런데 주말을 끔찍하게 외로워하는 분들도 계시다. 단 하루만이라도 가족과, 부모님과, 벗들과, 얘기하고 여행하고 밥 먹고, 이 소박한 꿈을, 여건상 실현하지 못하는 분들이 그 얼마나 많을텐가.

 

결혼 3년차가 되니까 남편한테 나가자고 말하기도 귀찮다. 그냥 나만 나가게 해주면 좋겠는데 일주일에 하루 쉬는데 같이 쉬지 어딜 가냐는 말에 나가지도 못한다. 남편님은 잠만 자고 싶으시겠지만 나는 그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 혼자라도 좋으니 도서관이라도 하물며 마트라도 좀 나가보고 싶다.

<웃어라, 내얼굴> 에세이에서 가장 처음 시작되는 이야기는 "석탄박물관"

지금은 박물관이지만 아버지가 탄을 캐며 우리를 키워낸 공간, 40년의 희로애락이 담긴 곳의 이야기를 보며 코 끝이 찡하고 그리운 사람이 생각난다. 짧은 글 하나 하나가 가지각색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그립게 떠오르는 이도 많고, 웃음도, 찡함도, 공감도 모두 담겨져 있다. 나랑 다른 신랑을 생각하며 화가 나다가도 자식들을 키우느냐 청춘을 받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공간을 생각하면 마음이 찡하고 백년만년 내 옆에 있을 것만 같은 나의 어머니가 어느날은 바늘구멍이 잘 안보여 침침하다 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깊은 곳부터 울컥함이 치밀어오른다.










저 산 구석구석에는 아직도 석탄이 쌓여 있다. 우리 아버지들이 캐었으나 소비되지 못하고 그저 높다랗게 시커멓게 싸혀 있다. 석탄의 시대도 가고 아버지들의 시대도 갔지만 석탄이, 아버지가 우리를 키워냈다는 사실은 저 박물관처럼 명징하다. 석탄박물관에 가면 아버지들의 냄새가 뜨겁다.


처음엔 그 재미로 했던 실 끼워드리는 일이,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조수 노릇이 되어갔다. 사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머니의 눈은 침침해졌고, 우리의 눈은 밝아졌기 때문이다.


20년차 소설가의 필력인 것일까,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서너페이지의 짧막한 글에 공감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기도 하고, 피식피식 웃음을 짓기도 한다. 웃으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보다 좀 더 오래 산 연륜의 이야기 때문에 언젠가 내가 경험해야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아 울컥함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웃으라더니!! 그래도 글 사이사이 깨알같은 코멘트에 아 이 작가는 일상에서 웃을 수 있는 것들 우리가 놓치고 살아갈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시는구나 싶은 마음도 들더라.

 

그러면서도 글에 대한 빛과 어둠을 지적하는 모습에서 마냥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만 하는 글도 아니고, 그동안의 작품들 속에서도 평범한듯 이렇게 지적해왔던 것이 문득 떠오른다. 다 읽어보지는 못했어도 김종광 작가의 소설을 몇 권 읽어본 독자로써 아 이 분은 이런 이야기도 이렇게 표현하던 분이었지 새삼 웃게 되는 시간

 

크리스마스에 올려야지 해놓고는 올리지 못했던 사진, 수많은 날들을 사는 사람들, 그 사는 모습이 거기서 거기 같아 보이지만 것모습 벗겨내고 나면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웃으며 살고, 웃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슬픔이 따라오는 건 인생의 빛과 어둠같은 모습이 공존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겠지,

각박한 세상에서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해 웃고, 위로받아 웃고, 짠해서 웃고, 기막혀 웃음치고, 분해서 어이없어 웃음나고, 추억을 곱씹으며 피식거리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나는 거기에 플러스 알파 재재구(강아지) 보며 웃고, 새초(고양이), 꾸우미(고슴도치) 보며 어야둥둥 울다가도 울음을 그치며 살아가고 있다. 아 그리고 어여쁜 하나뿐인 조카들 탄탄대로까지, 세상 살면서 웃는 법보다 우는 법을 먼저 배우며 태어나지만 그래서 웃으며 살다 웃으며 가길 바라는게 내 작은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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