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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나는 길들여지지 않아
앤드루 블룸필드 지음, 윤영 옮김 / 마리서사(마리書舍) / 2018년 11월
평점 :

나도 처음에는 캣맘이 될거라 생각도 하지 못한적이 있었다. 고양이 특유의 눈이 무서워서 거리를 돌아서 다닐 정도였는데 길고양이를 돌본다는 말이 가당키나했을까? <사랑해, 나는 길들여지지 않아> 속 주인공처럼 내가 고양이를 돌보게 된 것 역시 이사를 하고나서였다. 대학가에 유독 길고양이가 많았던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 그냥 그 행동 하나하나가 자꾸 신기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남부 방갈로에 이사하게 된 작가 역시 새끼고양이가 라쿤과 코요테에게 내뱉는 비명을 들으며 문명사회의 귀퉁이에 들어서고야 말았다는 사실을 체감했다고 한다. 밤마다 울리는 얇고 가느다란 새끼고양이의 목소리, 누군가에게는 소음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집고양이와 길고양이가 만나는 포인트가 되어주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한가지 기억할 것은 야생, 길고양이라고 부르는 이 고양이들은 집에서 시작 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아이들 역시 길들여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섯부른 애정과 호기심은 때론 독이 되어 다가오기도 한다.

한 동물을 사랑하기 전까지 우리의 영혼은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에 머물게 된다.
-아나톨 프랑스
LA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렇게 시작되다를 프롤로그로 저음 만난 새끼 고양이와 재활치료, 캣맘이 되면 어느새 아름을 지어주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중성화와 치료, 입양,
그리고 헤어짐의 과정까지 내 마음 속에 하얀색의 애옹이가 잘 살고 있는지 잘 살고 있을거라 믿고 싶듯 작가에게도 가랑비 젖어들듯 마음 속에 남아있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라는 공감에 책을 읽는 내내 울컥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보고싶은 그리고 미안한 존재
겁 많고, 거칠고,
때로는 사납기도 한 길고양이 무리와의 떠들석한 연대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난 고양이에게 이름과 집을 지어주었고,
그들을 먹이고 구출해 주었으며 중성화도 시켰다.
잠을 자는 건 꿈같은 일이었다. 포식자로부터 고양이를 지키기 위해 나는 툭하면 자다 말고 침대에서 일어나야 했다.
동물 병원 청구서 때문에,
도와주려다 입은 상처를 치료하러 병원 응급실을 숱하게 드나드느라,
신용카드는 한도를 넘어서기 일쑤였다.
몇 년이 지나자 이 무리의 생과 사, 경쟁과 동맹, 파벌과 따돌림의 사이클 속으로 나는 송두리째 휘말리게 되었다.
작가의 20년의 야생고양이 돌봄은 위의 이야기가 축소해서 내용을 들려준다. 월급의 일부를 쪼개서 고양이를 케어하는데 사용하고, 사료와 캔을 사고,
눈과 비를 피할 곳을 찾아 만들어주기 위해 몸에 상처가 나도
풀 숲을 헤쳐보았던 기억들 그걸 좋게보는 사람들과 나쁘게 보는 사람들...
애옹이가 너무 약하다고 생각해서 버려진 아기를 입양보내기까지 도움 받았던 사람들의 고마움과 하루만 더 버텨주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에 눈물이 나는 기억들까지 캣맘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고양이를 좋아하던 사람이 아니었을지라도...

연약한 하얀 고양이가 이웃집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낸 뼈다귀를 먹고 질식해 죽는 모습을 보면서 어려운 형편에서도 열다섯 마리의 고양이들에게 아침 저녁으로 하루 두 번 밥을 주게 되었고, 깊은 개입을 하지않기 위해서 이름을 붙이며 그 이상의 영역을 넓히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아픈 아이가 보이면 하나 더 늘어나고 또 늘어나고 그러다보면 이름도 많아지고... 얼굴도 다 기억 못할 것 같지만 어찌어찌 다른점으로 다 찾아 아이들을 구별하게 되고
<사랑해, 나는 길들여지지 않아>
그러나 길들일 수 없을지라도 나는 이미 너에게 길들어져 있다.
'당신이 반려동물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 반려동물이 당신을 선택한다.'라는 말처럼 하나씩 선택받은 반려동물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힘없이 밤새 이어지는 울음소리 뜬눈으로 지새운 밤,
결국 쓰레기통 재활용품 통 사이에 털도 온전히 나지 않은 조그만 새끼 고양이가 끼어있었고, 7~8센티미터도 안되는 길이의 작은 고양이가 마구 떨고 있었다. 희안하게도 그 새끼고양이는 다시 어미가 물고 갔었지만 결국 어미는 작가에게 자신의 새끼고양이를 맡기게 되었다.
개입하지 않겠다 했지만 길고양이를 본 병원에서 책임지지 않겠다면 치료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에 그녀는 20년정도를 함께할 반려동물에게 선택당하게 된 것이다.
그 녀석이 지금 작가가 글을 쓰고 있는 순간 함께 하고 있는
'타이니'이다.
재활치료소 대신 집에서 엄마표 재활을 받은 타이니의 뒷다리는
6주 정도가 뒤나 비틀거리긴 했지만 네다리로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타이니와 함께하는 시간은 너무 행복한 기억들이라 길고양이를 돌보는 모습을 떠나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가정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늑함이 나에게까지 전달되어 흐뭇흐뭇할 정도였다.
반려동물과의 유대감은 하루 이틀이 지날 수록 더욱 끈끈해지고 말하지 않고 눈만 바라보아도 원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경지에 오르기도 한다. 작가의 마지막 이야기 중 가장 공감했던 것...한가지는

타이니는 내가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결이며 내 삶의 진정한 목적이다. 나는 언제나 누군가를 위해 적어도 한 번이라도 이 한 몸을 다 바쳤으면 좋겠다고 바래 왔고,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그 상대가 고양이가 될 줄은 몰랐지만. 나는 타이니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 때 자주 외던 기도문을 요즘도 종종 읊조린다.
"당신의 영생을 기원하나이다."
왜냐하면, 지금에야 인정하지만,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꾸우미가 떠나고 때찌, 마리가 왔지만 처음과 같은 애정 그 자체를 주기에는 아직도 나는 겁이 너무 많이 난다. 그러나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시간이 오래되길, 내 삶의 이유가 영원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