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 이한우의 지인지감 知人之鑑
이한우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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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라는 자체가 집중해서 풀어 읽이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인데 논어를 배움으로써 사람이 보이고, 리더십을 배울 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저자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사람들은 한문 고전이 옛것에 불과하고 현실과 접점이 점점 멀어진다 생각할 있지만 저자는 논어를 "사람을 알아보는 "이라 설명한다. 물론 상사로서 부하직원을 뽑을 이사람의 얼굴은 일을 잘하겠구나 싶은 관상이 아니라 언행을 통해 인성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문 하나하나를 해석해가며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보다 많은 경험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겪어봄으로써 이해하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 몇마디로 사람의 인성을 과연 제대로 있을까 가장 의문이 들기는 하고, 실제로 이한우 작가의 해석이 아리송한 부분이 많기도 하지만 구절 자체를 깊이 파고들기 보다 현실과 적용해서 조금 읽어보려고 했다

4장에 걸쳐 논어와 리더십을 설명하고 있는 <논어를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다스리는 , 언제나 살피고 주의하라, 인재를 보는 눈을 밝히다, 천하의 흥망을 가르다, 삼기는 자의 옳은 자세를 정리해놓았는데 리더가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사람들을 보는 사교적인 목적에서 논어를 읽을 수는 없는 것일까?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부하직원이 생기는 리더가 되기는 하지만 항상 리더십이 부각되고 서로가 동등한 입장에서 배려하는 이야기는 해외의 이야기인 것만 같아 개인적으로는 아쉽게 여겨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참고로 책은 어렵다, 보기 좋게 정리한다고 하였을텐데 한문도 많고, 평소 사용하지 않는 단어도 많이 나와서 속독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을 참고하면서, 것이 무조건 적인 정답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독서를 하길 권한다.

책의 시작은 리더가 ()하면 망한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혹은 미혹할 혹으로 리더가 아니라 리더를 보조하는 아랫물이 고여 썩어도 세상은 망할 있지만 한때 제국을 건살할 만큼 뛰어난 역량을 보였던 제왕이 당대나 다음 대에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요인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중국 역사에 나오는 무제가 세운 나라 소연을 예로 들어보자

상은 몸소 빨래한 옷을 입었고 항상 먹는 음식은 오직 채소로만 만들었다. 지방 고위 관리들을 고를 때마다 힘써 청렴하고 공정한 사람을 뽑았으며 모두 앞에 불러서 접견하고 정치의 도리를 가지고 권고했다.

더없이 청렴한 무제 왕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보였다. 문무가 완벽하고 검소한 왕으로 보였던 그는 재위 30 불교에 빠져 왕후와 자제들은 교만하고 음란했으며 불법을 일삼았고, 무제왕은 연로해지며 국정에 싫증을 내고 불법의 계율에만 정성을 쏟아 죄를 판결할 때마다 즐거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반역의 죄를 지은 자를 보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용서를 해주고, 무슨 일이 생기면 법사를 짓기 시작한 , 과연 사람들은 이런 왕을 자애로운 자라 보았을까, 쉽게 속이고 자리를 넘볼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을까, 처음에는 왕의 의견을 지지했었을 사람들도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 정사를 돌보지 못하고 가정을 수습하지 못하며 종교에 빠진 왕을 믿을 없었을 것이다.

논어의 이야기에서는 가족 문제 앞에 마음이 약해지는 조선 세종과 조서강의 이야기도 담겨져 있다

도승지 조서강은 재직하는동안 세종의 눈과 귀를 막았다는 이유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데 개국공신인 조서강은 태종의 문과 시험에서 마지막으로 올려진 두개의 답안지 명이었을 정도로 촉망받는 엘리트였지만 강직하거나 아니라고 말하는 인물이 아니라 세종의 넷째 아들이 궁중의 음식물과 물품을 관장하는 내자시의 가야지와 간통을 것이 발각되어 문제가 되었을 세종이 진노하며 제주도로 보내야 한다고 말하자 조서강이 나서 임영대군의 나이가 어리니 크게 문제 삼을 것이 없다며 가야지 대신 아버지에게 죄를 물어 유배를 보내자며 아첨하였고, 세종 역시 말을 반기었다.

재밌는건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서강과 세종의 실망스러운 행동은 계속되어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건한 흥천사 재건을 축하하기 위해 국고를 지원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대신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조서강의 아첨에 뜻을 맞추어 행동하는 대표적 사건이기도 하다.

리더십을 떠나 사람들은 누구나 달콤한 유혹 앞에 흔들리고, 간언하는 자를 구분해내기를 어려워한다. 무언가를 갈등하고 있을 내가 마음을 기울이고 있던 부분이 맞다고 동의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마음은 자연스럽게 따라 기우는 것이다.

나면서 아는 자는 최고요, 배워서 아는 자는 다음이요, 겪고 나서야 그것을 배우는 자는 그다음이요, 겪고 나서도 배우려 하지 않으면 사람으로서 최하가 된다.(계씨 9)

 

뛰어난 이를 알아보는 것만큼이나 뛰어난척 간사하게 행동하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뛰어난 이를 몰라본다고 당장 조직이 망하지는 않지만 간사한 자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기꺼이 나라 하나가 망하는 조차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내심 동의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인재찾기가 어렵다면, 사람들은 누구를 보던 계속 의심하게 되기 마련이다. 누군가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산다면 중요한 일을 맡길 수도 없을 것이요, 스스로가 언제 당할지 모른다는 조급함에 병들어 버릴 것이다. 공자는 사람을 보는 3단계를 제시했는데 하나는 사람의 행동을 보고, 둘은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게 까닭을 살펴야 하며, 끝으로 사람이 진정 우러나는 마음에서 것인지 주변 사람들의 좋은 평판을 얻으려 의식적으로 것인지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찾은 인재,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이야기를 하는지 번쯤은 고려해야할 필요는 있지만 무조건적으로 의심해서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과유불급이다. 궁예가 관심법으로 자신의 의심을 다스리려 했으나 패망하였고, 광종은 아들까지 의심하며 수많은 친족과 신하를 죽였듯 <논어를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하고 어려운 단어도 아닌 '과유불급' 뭐든 넘쳐 과해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즐겨 인용한 구절로 유명하다는 '사람이 의심스럽거든 결코 쓰지 말고 일단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疑人莫用 用人勿疑] 리더십 뿐만 아니라 나와 친해진 사람들이 나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를 의심하게 된다면 애초에 친해져 머리아파하기 보다 멀어지길 선택하고, 친해졌다면 그가 하는 말에 의심하지 말고 동의할 아는 마음을 내어주는 역시 같은 의미가 아닐까?

이한우의 지인지감 <논어를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책의 띠지 속에 논어를 통해 리더십을 논한다는게 나는 부정적으로 느껴졌다. 자꾸 사람들은 리더와 부하로 구분을 하고 동등한 관계에서 사람들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답답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중국의 역사까지 더해지니 논어를 끝까지 읽어보자 노력했던 마음에 어려움까지 더해져 독서가 순탄치 않았지만 읽다보니 것이 리더십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누구를 대할 때에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곰곰히 따지게 되었다. 독이되는 말인지 모르고 친구가 하는 말이라면 다른사람들의 말을 듣지도 보지도 않고 선택했다 후회하는 모습들, 친구임에도 의심하며 말을 믿어야하는 것인지 재는 상황들까지... 쓰여져 있는 것처럼 리더십 자체로 읽지말고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 적용하며 읽으면 현실적으로 와닿을 것이다. 구관이 명관이고, 것을 알고 새로운 것을 적용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있다는 이야기가 있듯 논어는 옛날의 한문, 학문 자체에 그치지 않는 현실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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