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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평점 :
스스로 머리가 좋다고 이야기하는 꼬마가 있다, 머리카락의
삐죽거림으로 그 날의 날씨를 알 수 있고, 어른들도 어려워 할 것 같은 과학에 호기심이 많은 어쩌면
일본에서 메모를 가장 많이 한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귀여운 박사님, 주말에 <펭귄 하이웨이>를
보러 가기 전 원작소설을 먼저 읽어보았는데 일본 애니메이션은 특유의 영상과 음향이 예뻐서 집에서도 자주 틀어 놓기는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 느낌을
영상에 다 담기엔 어렵지 않을까 물음표가 떠오른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에게는 그 호기심에 질문을 던져주는 누나와 우연히 혹은 운명 같은 펭귄의 추억이 4학년의
노트에 빼곡히 채워져있다. 비록 이런 아이를 따돌리는 '제왕'이라 불리는 아이들도 있지만 <펭귄 하이웨이>가 인상적인건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이 순간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 한걸음씩 걸어가고 있으며,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이끌어주는 엄마와 아빠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하루에 한걸음씩 극복하고 성장하며 더 훌륭한
어른이 되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말뿐만이 아니라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보일 수 없는 끈기와 노력, 그리고 지식의 풍부함을 보여준다고 해야할까
“그 문제들은 제각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하나의 문제일지도
모르니까”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관심있는 것들도 많은 아오야마에게는 숫자와 과학적으로 궁금해 하는 점에
대한 연구는 아버지가 채워주고, 감성적인 부분에는 엄마가 질문을 던져가며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 3000일 하고도 888일을 꼬박 기다리고 있는 아이는 이런 부모님이 있기에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에도 씩씩하게 성장하며 푸른 하늘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연구를 함께할 친구와 함께 호기심을
나누는 아련한 첫사랑의 치과 누나도 있다. 더없이 흥미롭고 사랑스러운 넓은 바다같은 애정을 퍼주는 존재들이
이 소설을 잔잔한 풍경에 파동을 주듯 생동감있게 살아움직이고 있다.
“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3000하고도 888일이 남아 있다. 그러면 나는
3000하고도 888일을 나날이 훌륭해지는 거다. 그날이
왔을 때 내가 얼마나 훌륭해져 있을지도 짐작도 못하겠다. 너무 훌륭해져서 큰일이 나는 건 아닐까. 모두들 깜짝 놀랄 거다. 결혼해달라는 여자도 많겠지. 하지만 나는 벌써 상대를 정해놓았기 때문에 결혼해줄 수 없다. 미안하긴
하지만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
어느날 등굣길에 뚝 떨어진 것 같은 펭귄들은 이동 중에 사라진다. 펭귄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종류인지도 알아보기도 전에 트럭에서 사라져 아오야마의 마을에 다시 나타가 여기저기에
출몰하기 시작하면서 소년과 이론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 우치다는 숲속을 탐험하면서 <펭귄 하이웨이> 프로젝트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누나는 그 펭귄을 만들어냈다, 다른 것도 만들어 냈고, 꿈에도 나왔다. 꼭 어린왕자의 펭귄 하이웨이판 같은 모습의 누나는 첫사랑이자 궁금의 대상이었다. 친구이자 호기심의 대상, 그리고 동경의 대상인 누나의 손가락은 부러질
것 같이 가늘고 유리처럼 차가웠으며 펭귄을 만들어 낸 이후로 아프기 시작한다.
“내가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도 누나는 우리 집 안에서 흰긴수염고래를 만들어버렸다. 누나는 "아기니까 괜찮아"라고
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아기 흰긴수염고래는 거실에 몸이 꽉 끼어 꼼짝달싹 못하게 됐고 아주 힘들고
슬퍼 보이는 얼굴을 했다. 나는 누나가 깔려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
열심히 누나를 찾았지만 아무 데도 없었다. 내가 누나를 부르며 허둥거리는 사이에 아기 흰긴수염고래가
엄청난 응가를 했다.
믿을
수 없다. 무서운 꿈이었다.”
숲 속 나무 한그루 없는 접시같은 초원에는 신기한 '바다'는
우주에서 바라보는 듯한 지구와 같은 푸르는 모양이었는데 꼭 누나와도 같았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한 존재였지만
아오야마와 친구들은 밀접한 관계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도 찾아내었다.
소년처럼 당을 충전하며 책을 읽으며 조곤조곤 풀어 본 내
나름의 가설은 이제 3000일 하고도 800일을 더 살아야
스무살이 되는 소년보다 비루하다는게 슬프긴 하지만 순수한 존재이기에 이론을 고스란히 흡수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토해내고, 숲을 찾아 '바다'를 찾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5000일 하고도 약 800일을 더 살은 나보다 해박한 지식을 가진 당돌한 어린이의 자신감은 여기서부터 샘솟는거겠지 ;-) 순수한 상상력과 지식의 조합은 어른이 이겨낼 수 없는 장르인 것 같다.
물론 그걸 표현한 모리미 도미히코의 필력 또한 엄청나고
▷ '바다'가
확대되면 누나는 건강해진다.
▷ '바다'가 축소되면 누나는 건강이 나빠진다.
'바다'는 생각한 것보다 다양한 것을 품고 있고 훨씬
더 아름다운 존재이자 '누나'와 같았다. 누나는 바다이고, 바다는 누나일까.
적어도 누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보여주고 '바다'를 연구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고, 아오야마는 밥을 굶어마겨 누나가 얼마나 괴로울지 연구할 정도로 애정하는 관계이다. 나는 이 조건없는 애정과 연구가 더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만해 책 속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
단순히 펭귄을 연구하고 우주를
상상하는 판타지소설이었다면 흥미가 떨어졌을 수도 있다. 판타지보다는 스릴러와 추리소설을 더 좋아하고
일본애니메이션 특유의 색감과 사운드를 좋아하기 때문에 비슷한 장르가 확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연구를 통해 동물을 사랑하고 서로 공감하고 누군가를 애정하며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머리 속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덕분에
끊임 없이 푸르른 하늘과 '바다'를 떠올리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깜찍하게도 자신만만한 소년의 20살이 기다려진다. 그 때가 되어도 삐죽거리는 머리가 날씨를 알려주고
가장 많은 메모를 남겨놓고, 세계의 끝을 찾아 빠르게 달려가고 있을까?
약간은 오만한듯 귀여운 소년의 풍부한 표현력과 상상이 영화보다
더 넓게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만드는 모리미 도미히코 <펭귄 하이웨이>를 애니메이션에서 다 담을 수 있을지,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하면서도
소설의 반짝임과 표현을 감히 다 담을 수 있을까 걱정이다. 그럼에도 푸른 영상이 머릿 속에서 넘실넘실
떠다니는 저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