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고백록 현대지성 클래식 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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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나는 종교적으로 관심이 없어서 <톨스토이 고백록> 속에 나오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갈등은 나의 주관적인 생각대로 해석하며 읽었다는 점을 적어놓아야겠다. 독서를 좋아하지 않아도 학교를 다니다보면 번쯤은 들어보는 이름, 일부분 읽어보는 작품이 톨스토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작품은 그가 살아있을 때에도 죽어서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전쟁과 평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안나 카레니나>, <부활> 대표적인 작품을 적어보아도 그가 집필한 작품은 수없이 많이 남아있고, 톨스토이의 작품 속에는 종교에 대한 갈등을 담고 있는 부분이 언급되는 내용이 많다.


무척 얇은 두께와 톨스토이의 작품을 관심있게 보지 않았다면 "고백록 이라는 책도 있었나요?" 묻게 되는 <고백록> 유년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종교를 접하며 살았던 그가 형과,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선택한 것들에 이유를 서술하고 있는 작품으로 '' 시점에서 어렵지 않게 풀어 자신의 삶과 속에서 타인과의 토론, 고뇌 선택한 감정에 대한 절절함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다른작품보다 어렵지 않고 오히려 생동감 있게 편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 이런 작품도 있었냐며 가볍게 빌려가더니 짧으면서도 여운이 남는 책이라 이야기 하기도 했고...

나는 정교회라는 기독교 신앙 속에서 세례를 받고 자랐습니다. 유년기에 시작해서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신앙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학교 2학년이었던 18 나는 그동안 내가 기독교 신앙과 관련해서 가르침 받았던 모든 것을 이상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에 신앙은 태어남과 동시에 함께 성장한 친구와 같았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판단할 있는 나이가 되기 어른들의 생각에 따라가 들었던 그냥 막연한 존재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아마 이런 사람들이 지금도 꽤나 많을 것이라 생각되는 것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종교를 따라다니고, 세례를 받으며 곳에서 가르치는 것을 판단하지 못하고 배우다 옳고 그름, 호불호 스스로에게 기준을 세울 있는 나이가 되면 것이 때론 허구처럼 느껴지거나 독실한 신자가 되거나 불필요한 존재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 역시 점점 성장해 가면서 친구들과 형이 의문을 가지고 스스로가 철학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면서 신앙과 종교적 가르침을 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역시 조금 어려운 것이 버리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가르침이라고 정의할 있는 것도 아닌 완전하지 못한 것이며

아직 어린 톨스토이에게는 하느님이 보시기에 나은 사람이 되기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힘있고 부유한 사람이 되도바 하는 욕망을 가지게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연인, 친구에게 칭찬받는 사람, 눈에 보이는 존경하는 사람을 쫓아가 높은 자리에 오르길 바라는 마음 역시 모두가 경험하는 것과 같은 감정일 것이다.

내가 스물여섯 전쟁이 끝났고, 나는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작가들과 어울렸습니다. 가들은 나를 작가로 대우해 주고 호의적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나는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을 정립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내가 어울리게 무리의 작가들의 인생관을 받아들였고, 그들의 인생관은 선을 추구하고자 했던 나의 이전의 노력을 말살시켜 버렸으며, 내가 방탕하게 살아가는 것을 정당화할 있는 이론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예술인이 그의 종교는 작품을 통해 얻는 돈으로 주어지는 돈고 , 명성이었고, 그의 믿음이었다. 상당기간을 믿은 안에 살면서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그에게 주어진 지위를 거부하지 않으며 많은 것을 말하고 활자화했다. 재밌는 것은 수천명의 작가들은 서로를 반대하고 욕하며 싸우면서도, 모두들 부지런히 글을 썼고, 선악에 대한 대답을 하기 보다는 자신의 말을 쏟아내는 정신병동 같은 상황을 영출했다는 것이다. 많은 작품들이 세계의 명작이라고 불리는 현실과 다르게 작가들은 서로를 정신병자라 부르는 아이러니함.

결국 그가 생각하는 종교의 끝은 형의 투병과 죽음에서 끝이 났다. 작은 돌을 던져 그의 믿음에 금이 가게 했다면 형의 죽음은 금으로 약해진 벽을 깨트리고 것이다. 시골로 돌아와 농민학교를 운영하며 글로 사람들을 가르치고자 했을 내면에서 마주쳤던 거짓된 모습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의 마음 속에서는 끊임없이 수많은 질문들이 숙제처럼 맴돌며 그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답을 찾아내기 위해서 계속이 방황하며 다른이를 가르치고자 하였다.

어쩌면 그에게는 자신을 ''처럼 생각하는 무언가가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유럽을 돌며 귀족계층, 지식인들의 종교(?)라는 것에 실망과 배신감 같은 기분을 느낀 끊임없이 민중, 농노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가르치고자 하였는데 것이 평범한 지식이라기 보다는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하는 마음 욕구가 엿보였던 것은 물론 모든 것을 버리고 대초원지대에서 원시적인 생활을 하였던 것이 그런 부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전에는 어떻게 하면 삶을 나아지게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듯이, 지금은 어떻게 하면 삶에서 벗어날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자살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자살이 나를 유혹하고 내게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나는 너무 성급하고 경솔하게 자살을 실행에 옮기지 앟기 위해서, 내가 지금 당장 자살하지 않아야 이유들을 생각해 내는 꼼수를 부리지 않을 없었습니다.

실제의 삶과 이상 괴리감과 나를 우롱하는 같은 기분, 모든걸 가졌지만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인생이라고 공포 속으로 스스로를 몰아갔던 그는 학문을 통해서 그와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이 찾은 답을 보고자 하였지만 없었다. 형의 죽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일까? 과학과 수학은 정답을 주는 반면 삶에 대한 의문은 아무리 파헤쳐 볼지라도 결론을 내릴 없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사랑의 존재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에 무슨 학문을 가져다 해석한들 답이 나올 있을까 이런 반복적인 그의 정신적인 고민은 마음 어딘가에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해 있는 닥터가 존재하지 못했다는게 문제였다고 오히려 나는 판단되었다.

쇼펜하우어, 소크라테스, 솔로몬, 석가모니 성현들의 이야기에서도 해답을 얻지 못한 톨스토이는 그를 절망으로 이끈 삶의 의문을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는지 관찰하고 빠져나오기 위한 방법을 발견해냈다. 무지, 쾌락주의, , 약함 하지만 우리가 소설로 읽은 톨스토이의 작품과 다르게 그의 정신세계는 복잡했다. 자신의 지성에 자부심이 있었기에 이마저에도 의심하는 망상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기독교 신앙을 발견한다.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톨스토이의 끝없는 결과의 답은 신앙이었다.

신앙이 어떤 대답을 주고, 신앙이 어떤 신앙이며, 대답이 누구에게 주어지는지와는 상관없이, 신앙이 주는 대답들은 언제나 인간의 유한한 실존에 무한한 의미, 고통이나 상실이나 죽음에 의해 없어지지 않는 의미를 부여해 주는 이었습니다. 이것은 오직 신앙 속에서만 삶의 의미와 살아가야 이유를 발견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톨스토이 고백록>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고?

앞에서 글을 읽어왔다면 톨스토이는 0 0이며 안에 무슨 의미가 있으며, 우주의 진리는 무엇이다 라는 결론까지 찾아낼 같은 '' 스스로가 도출해낸 결과가 아니면 어떤 이론이던 신앙이던 쉽게 믿지 않는 '' 대한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기독교라는 신앙을 찾았다고 이성적으로 그걸 따르며 존중하고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있었을까?

기독교에는 다양한 파가 존재하는데 톨스토이는 철저한 '톨스토이'파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나의 내적인 사고가 지금까지 걸어온 과정을 다시 돌아보고서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공포를 느꼈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무한한 것을 알지 못하거나 삶의 의미와 관련해서 무한한 것과 유한한 것을 연결시켜 그런 설명을 갖거나 중의 하나여야 한다는 것이 이제는 내게 명백해졌습니다. 나는 그런 설명을 갖고 있었지만, 내가 유한한 것을 믿고 있는 동안에는 내게 그런 설명은 필요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설명을 이성에 비추어서 검증하기 시작했을 , 나의 이전의 그런 설명 전체는 나의 이성의 앞에서 공중분해되어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유한한 것을 이상 믿지 않게 때가 내게 찾아왔고, 나는 이성을 기초로 해서, 내가 삶에 의미를 부여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지혜와 지식의 설명으로부터 나의 의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내고자 했지만, 거기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얻을 없었습니다. 나는 0 0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것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지성들의 결론이기도 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무척 놀랐지만, 거기에서는 나의 의문에 대한 다른 대답들을 들을 없었습니다.... P.77

부분으로 톨스토이의 종교와 삶의 고민, 문학에 대한 애정, 작품에 대한 설명까지 모두 담을 수는 없지만 앞의 부분에서 톨스토이가 고민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할 있게 되었던 같다.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그들만의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새로운 것들을 제시했듯이 톨스토이 역시 그만의 세상에서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는 , 그리고 그런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살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스스로의 인생과 생각들을 정리해 남긴 <톨스토이 고백론> 후대에 전달 있었던 것이다. 조금은 극단적이거나 조금은 자기중심적일 수도 있지만 열정과 끝없는 학문연구로 해결책을 찾으려 했던 모습만큼은 후대에서도 끝없이 배워 이어져야하는 모습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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