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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수수께끼 - 마빈 해리스 문화 인류학 3부작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소와 우리 민족은 떼어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우리의 역사를 이루어왔다. 그러면 과연 암소숭배의 나라 인도에서 소는 인간과 비합리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농사를 짓는 수소의 생산, 암소의 배설물 이용 등의 경제적 가치와 민족성 고취라는 정신적 가치 등을 보면서 전통적 생활양식과 현실의 삶 속에서 암소숭배가 현실적으로 그들의 생존방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태양도 지구의 자전을 이기지 못하고 열기만 남긴 채 산 뒤로 넘어갈 무렵 인부들이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이로 삼겹살이 보인다. 돼지숭배와 혐오. 우리나라에 살면서 생각하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는 말. 그 돼지를 혐오하거나 숭배할 이유가 내게는 없는 것이다. 돼지를 사육하기에 우리나라는 생태적으로 적당한 환경을 가졌으며 그와 관련된 종교나 민속적 금기가 없기 때문이다. 돼지숭배나 혐오가 사회적 기능,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동질성 유지. 인구, 가축수의 규모와 분배에 적절한 조절작용을 한다니 놀라운 연구결과이다.
이런 조절작용으로 또 원시전쟁을 들고 있다. 생태학적 균형을 따라 인구수를 유지 시키는 데 필요한 차단 메카니즘이라고 하는데, 전쟁이 인간의 선천적인 살해본능이라면 전쟁 방지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전쟁이 인간의 삶의 실체적인 조건들과 이해관계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런 조건들과 이해관계를 변화시킴으로써 전쟁의 위협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소유란 아주 오랫동안 인간의 존재 방식이지만 분배 또한 그렇다고 말하기엔 뭔가 미흡하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재산 분배 양식은 포트래취(POTLATCH)라는 잔치로 이루어진다. 이 말은 그 부족이 사용하는 “주다”라는 동사의 한 형태에서 나왔다. 잔치를 열고 족장은 재물 가운데 많은 것을 자기 손님에게 나누어 주고 과시하고 또 평가를 받는다. 포트래취는 생산력이 더 높은 부락에서 이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부락으로 식량과 귀중품들을 분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빈 해리스의 현대 문명사회의 경제제도에 대한 비평 또한 멋지다. 호혜성 경제체제와 재분배제도. 원시부족들이 향유했던 물질적 복지와 실제 전혀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늘어난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인류가 기만 당하고 착취당해 더 고된 노동을 해야했던 전 과정이 과연 건강한 것이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수많은 원시 사회 사람들은 노동을 덜어주는 새로운 생산 기술은 실제에 있어서는 생활수준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오히려 힘든 노동을 강요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생산을 늘리려는 노력을 거부했고 인구밀도를 높이지 않았다.
수많이 생산하고 수없이 버리기를 되풀이하는 현대인의 생활방식을 먼 훗날 이해할 수 있을까. 현대 문명인들은 비탈길에 서 있는 것 같다. 발전의 가속을 스스로의 힘으로는 조절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끊임없는 발명과 개척 덕분에 우리는 온갖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 편리함만큼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물질문명 발전의 바퀴의 속력을 줄일 것을 고려해야 할 때이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이해하지 못했던, 막연히 무시했던 문화가 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그것이 생존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문화도 잘 알지 못하는 눈으로 무시되어온 것이 많았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서양우월주의로 국적 없는 떠돌이 문화가 잠시 잠깐 머무를 뿐, 미래 세대에게 전승할 것이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 뿌리에서 올라온 줄기를 찾아 가지를 뻗고 꽃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새로운 씨를 맺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문화의 올바른 해석을 명쾌하게 풀이해줄 책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