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성경, 한국교회
권지성 엮음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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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획은 매번 반갑다.
신학자들이 그저 책상의 담론만 펼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와 함께 기독교의 답변들을 제시하는 것은 오늘에 따라 더 필요하다.

미투운동도 일어나는 현실 앞에서
우리의 신학을 돌아보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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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성경, 한국교회
권지성 엮음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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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폭력, 성경, 한국교회>

서평자 : 정재경 
책임편집 : 권지성
저자(10) : 권지성, 박유미, 최순양, 유연희, 성기문, 송진순, 한수현, 강호숙, 박성철, 오제홍
 
1. 교회 앞에 던져진 경고문

주변에서 교회,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간혹 나누게 된다. 그럴 때마다 놀라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어두운 부분을 정확히 알고 이에 대한 개인의 입장으로 교회 가지 않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 횡령, 비리, 권력 범죄와 성범죄 문제는 공적으로 이미 알려진 상태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러한 상황을 교회만 모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아직도 우린 교회가 깨끗하고 세상과는 구별된다고 믿는다. 물론 그렇게 믿어야한다.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실수했고 더 슬프게는 적극적으로 악에 가담했는지를 돌이켜보면서 교회가 교회됨을 바라봐야지 그저 악을 은폐하면서 교회를 높이는 것은 대체 무슨 신앙이고 무슨 종교일까.
 
청년 목회를 한다는 J 목사의 성범죄는 공공연하게 드러났지만 결국 교회, 명확히 말하자면 그 목사의 소속 교단은 그를 제대로 권징도 하지 않고 그대로 목회하게 두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역자들의 성범죄는 너무나도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교단적 차원의 조치는 미흡했다. 이런 사건들 가운데 교회를 다니는 이들조차 교회에 대해서 마음을 잃고 세상은 종교의 순기능조차 의심하게 되었다.
 
이런 비극적 상황에서 이 책의 10명의 저자들은 교회와 신학의 답변을 제시한다. 종이에 무엇을 써서 상황을 바꾸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선 현실을 마주하고 그때 문제 해결을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저술한 것 같다. 이 책의 공저자이자 책임편집자인 권지성 박사는 교회가 세속 가치에 의한 잠식과 내무 부패와 범죄 문제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진단한다(10). 이어서 그는 교회의 권력 부패 문제를 지목하고 특히 성범죄가 어떻게 교회 안에서 문화로서 악을 형성했는지를 설명한다. 이 책의 기획은 미투 운동 이후 한국교회 내부의 개혁적 운동을 학자들의 작업으로 지지하고 진행하는 데에 있다(13). 이런 큰 변화 앞에 각자의 자리와 역할이 있겠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저술 활동으로 미투 운동과 같은 사회 흐름에 발걸음을 함께하고자 한다.
 
2. 10명의 저자들과 그들의 목소리

책의 저자들의 배경을 보면 놀랄 만큼 다양하다. 보수신학의 학교로부터 진보신학에 출신지가 있는 저자들도 있고 남성과 여성이 5명씩 참여한 기획도 반갑다. 전공들도 구약학에서 신약학만이 아니라 조직신학, 실천신학까지 다양하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면 한가지 전통이나 입장만으로 사회와 교회 현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입장들 안에서 현상을 보는 안목을 가지게 된다.
이제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한다.
우선 1부는 구약성경과 성폭력 문화라는 제목으로 디나 사건, 다말 사건, 레위인의 첩 이야기, 구약 선지서의 성적 표현 등을 주제로 다룬다. 2부는 신약성경과 성폭력 문화라는 제목으로 교회 내 젠더폭력과 이를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연결하고 바울 서신의 동성애 해석을 여러 측면에서 살펴본다. 3부는 교회와 성폭력 문화를 다루면서 교회 구조, 성차별적 설교, 가부장제와 보수 신학의 상관 관계, 교회 내 직분에 대한 연구로 논의를 펼쳐간다.
 
1부는 5명의 저자들이 참여해서 구약성경을 기반으로 성폭력 문제를 지목해간다. 1장에선 창세기 34장의 디나 사건을 비평학적으로 접근해서 여러 측면의 해석들을 제시하고 페미니스트 해석도 함께 다룬다. 그러면서 각 해석의 한계와 본문에서 가능한 해석을 제시하면서 본문의 배경이 된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비평을 제시한다(41-42). 2장은 다말 사건을 중심으로 다윗에게 있던 성적 문제와 성적 범죄의 그림자를 밧세바 사건 전까지 추적해간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다윗과 암논의 공통점으로 권력을 이용한 사건 은폐, 여성 비하 태도, 책임 회피 등을 발견했고 이를 통해 다윗의 밧세바 사건 이후의 비극과 다말 사건을 이어서 다윗의 행보를 비판한다. 결론에서 그녀는 다윗과 암논의 행보와 유사한 한국 교회 상황을 지적하고 정의로운 과정과 약자를 보호함으로 회개할 것을 권한다. 3장에서는 서발턴개념을 중심으로 레위인 첩 사건(19-20)을 다루어진다. 여기서 저자는 성경에선 종종 피해자, 약자, 소수에 무게를 두지 않고 큰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하면서 제외시키는 주변화된 입장이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유사하게 벌어지는데 성범죄 사건에도 소위 목회 권력층 보호/옹호나 질서 유지 등을 빌미로 약자, 피해자의 목소리를 묻히거나 정죄된다. 이어지는 4장은 사사기 21장의 민족 전쟁 본문을 다루면서 그때 발생한 여성 피해자들에 집중한다. 저자는 본문에 대한 개론적인 설명을 하고 이후 한국교회에서 설교나 성경공부 자료에서 얼마나 왜곡된 관점을 제공했는지를 지적한다(94). 대부분의 자료는 여성 피해자나 전쟁 및 납치 사건에 대한 상식적인 반응보다는 여성을 도구나 어쩔 수 없는 사건으로 그냥 지나쳐버린다. 더 나아가 저자는 사사기 후반부의 내용은 베냐민이나 나머지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못하고 붕괴되는 신앙 공동체를 그렸다고 진단한다(110). 5장은 구약 선지서의 성적 표현들에 대한 오해 및 해석의 한계를 제시하면서 대안적 해석을 전달한다. 구약 선지서의 여성 비하 표현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를 부부, 부모와 자녀, 주인과 종 관계와 같은 여러 모습으로 그려내면서 은유적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런 표현들은 남성성을 모두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상적으로 충실한남편으로 그려내면서 특별한 용례로 설정 후 그려낸다고 봐야 한다(134). 저자는 글을 마무리하면서 구약의 과격한 여성 비하, 폭력적 표현이 은유적 용도를 위함이라고 구분하고 오늘날 이런 표현이 문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한계를 명확히 한다.
정리하자면, 1부에선 구약을 배경으로 만연하게 퍼져있는 잘못된 해석들을 정리하면서도 동시에 본문 안에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해석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과정은 구약 성경을 향한 몇몇 페미니스트의 공격에 대해서도 설명하게 도와주고 동시에 교회에서 실제로 잘못 전달하고 가르친 본문을 교정해서 앞뒤 맥락과 함께 재-해석하게 도와준다. 결국, 우린 의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주신 을 통해서 다시금 정의되고 우리의 실수를 발견한다.
 
2부는 신약 성경을 토대로 성폭력 문화를 다룬다. 6장은 교회 내 성폭력과 하나님 나라를 비교한다(141). 이 과정에서 저자는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소외된 자를 향하고 평등한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연결한다. 이를 통해서 교회 내 존재하는 혐오 문화는 하나님 나라와 동떨어진 모습이 된다. 저자는 교회 내 혐오 문화를 다른 잣대가 아닌 하나님 나라라는 복음의 기준으로 비판하고 대안으로 복음서에서 설명하는 그 하나님 나라를 제시한다. 7장은 바울 서신에 등장하는 동성애 단락 해석을 다룬다(167). 여기서 저자는 바울 서신이 단순히 동성애 정죄가 아니라 당시 사회 상류층에 있던 권력자들과 성범죄자들에 대한 심판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동성애 정죄 구절을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한국교회 상황을 지적하고 바울 서신의 배경이 되는 로마 사회의 사회 문제에 대한 바울의 충고라는 부분으로 연결한다. 2부에서 2명의 저자들은 하나님 나라와 바울 서신의 배경이 된 로마 사회를 근거로 문자주의적 해석을 넘어선 신약 해석을 제안한다. 그들은 결코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다만 성경의 주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읽어줄 것을 부탁한다.
 
3부는 교회와 성폭력을 문화를 다룬다. 8장에선 교회 구조의 메커니즘에 대한 실천신학적 분석이 있다(194). 저자는 교회 지도층의 성적 타락의 원인으로 집단의 비윤리성, 성과 권력의 관계 등을 제시한다(202). 대부분 교단에서 여성은 정식/공식 회원으로서 배제되거나 제한되어있다. 저자는 이런 한계를 지적하면서 교회의 유기체성 회복을 중심으로 여성 참여적 직분 공동체를 제안한다(215). 9장은 보수 교단 내 성차별적 설교가 비판된다(218). 여기서는 설교 가운데 이루어진 성차별적 발언들이 소개되면서 동시에 지적된다. 저자는 이런 성차별적 설교는 본문과의 연결도 없고 성경 해석도 큰 오류를 동반한 가부장적 해석이라고 정의한다. 그녀는 단순히 여성을 위한 설교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 하나로서 교회는 특정 성을 제한, 배제, 비하, 희롱하지 않아야 한다고 공동체적 안목을 부탁한다(240). 10장은 아우구스티누스와 장 칼뱅의 신학과 가부장제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소개한다. 저자는 아우스티누스조차 가부장제 사회라는 한계 가운데서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았다고 말한다. 이는 대부분의 교부에게서 발견되는데, 교회에 위대한 영향을 미친 자들조차 당시 시대의 정신에선 자유롭지 못했다고 보인다. 이후 여성관은 시대에 따라서 조금씩 진보했지만, 여전히 시대의 한계 가운데 있었다. 종교개혁 신학가 칼뱅조차 타신학자들과 비교했을 때는 진보적이었지만, 여전히 직분과 본성에 대해서는 여성을 낮게 보았다. 저자는 이런 논의를 통해 교부나 칼뱅을 평가절하하는 것에 목적이 없다. 다만, 그는 교회 신학에 아무리 큰 영향을 준 이들이라고 시대적 한계 가운데 있었다고 말하고 재해석을 제시한다. 11장은 종교개혁 직분 제도와 여성을 다룬다. 저자는 교회사에서 드러난 여성관과 직분을 소개하고 한계를 사회학적 틀로 비판하면서 구조적 변화를 제안한다. 3부는 1, 2부에 비해서 좀 더 본질적으로 교회의 문제, 특히 교회 구조를 비판한다. 여기서 그들은 교회가 왜 성범죄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는지를 지목하고 직분 공동체를 제안하고 신학적 재해석을 가리킨다.
 
3. 세상 속에서 교회되기

더는 세상이 그저 악하니 우리?는 구별되야한다는 선언은 우리에게조차 이상하게 들린다. 세상에 물론 악이 있겠지만, 오늘날 교회는 그 자체의 악, 죄를 해결하지 못한 채 왜곡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스도는 우리는 교회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르셨다. 그렇다면, 우린 세상을 그저 악으로 규정하고 멀리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빛과 소금으로서 더 윤리적이고 더 구별된 공동체가 되어서 세상 가운데 있는 불의, 폭력에 맞서면서 약자와 함께 있는 그런 모습이 그려진다.
이 책은 단순히 우리는 큰 문제에 있다! 라고 선언하고 끝내지 않는다. 저자들은 복음 안에서 교회의 죄를 낱낱이 고발하고 이를 고쳐야 한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망했다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겐 큰 문제, 죄악이 있으니 마주하고 좌절로 끝내지 말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자고 청한다. 책의 내용들은 무거운 현실을 보게 하지만 이상하게 다 읽고 난 후 교회를 다시 한 번 꿈꾸고 성경을 다시 읽으면서 현실을 보고 싶게 만든다. 이렇게 우리 같이 걸어갔으면 좋겠다, 함께.

그림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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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수의 우리 신조 수업 -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대소교리문답서의 역사와 해설
유해무 지음 / 담북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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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와 함께 교회사 전체 흐름을 볼 수 있는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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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 - 전염병에 의한 동물 살처분 매몰지에 대한 기록
문선희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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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하게
묻혀진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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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일기 세계기독교고전 3
존 웨슬리 지음, 김영운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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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왜 일기인가?

* 우린 sns에 우리의 일상, 생각을 자주, 많이 그리고 열정적으로 나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공유"를 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뭐 어떻게 생각하면 비슷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다르기에 그런 것이겠지.

* 이런 우리에게 누군가 "일기를 읽는가?"라고 묻는다면 생전 처음 듣는 질문이라고 말할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일기라는 형식은 사랑받았고 서로 읽으며 특정인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18세기 그런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그 시기에는 선교 훈련을 한 번이라도 받아보면 들어본 "데이비스 브레이너드"라는 청년 인디언 선교사의 일기도 있고* 웨슬리의 오랜 친구 조지 윗필드의 일기도 있다(지평서원). 



* 예전 신앙인들은 일기, 편지를 통해서 믿음을 나누고 서로 교제했다. 신약성경 대부분은 이러한 편지이다! 이렇게 서로 주고받은 편지와 개인이 기록한 일기(일지)들은 모여서 그 사람의 생애와 생각을 정리하고 더 나아가서 당시 공동체들의 이야기를 가까이 증언하는 역할을 한다. 

* 오늘 소개할 책은 "존 웨슬리의 일기"이다. 이 책은 18세기 영국의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인 웨슬리의 일기인데 이를 통해 조금이나마 예전 교회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이어보길 바라본다. 



2. 웨슬리 = 감리교 창시자, 야외 설교자, 아내에게 맞은 자?

* 존 웨슬리는 18세기 영국에서 살았던 목회자이다. 그에겐 여러 타이틀이 붙는데 대표적으로는 감리교 창시자가 있다. 그는 당시 영국 국교회에서 활동하다가 이후 감리교 운동을 주도하면서 지금의 감리교파를 만들고 형성했다고 평가된다. 그런 그는 여러 비방과 공격 가운데 있던 감리교 운동을 변호하기 위해서 이러한 일기를 편집 후 출판했다(14쪽, 서론). 그래서 이 일기를 읽다 보면 개인 일기로 볼만한 내용도 많지만, 자신의 사역 소개 목적도 함께 느껴진다. 

* 그는 평생을 설교자, 목회자로 살아갔는데 참 삶이 다이나믹하다. 뭐랄까 좋은 친구들과 동생(찰스~**)과 함께 신앙 훈련 공동체를 만들어서 열심히 하다가 선교사로 떠났다가 어려움 가운데 2년도 안 되어서 귀국하고 그때 비로소 회심을 경험한다. 그리고 야외 설교를 하면서 저거 이상한 것 아니야? 라는 비난받다가 엄청난 인기도 경험하지만 동시에 많은 친구를 떠나보내고(특히, 가장 친했던 조지 윗필드와 불화) 연애와 결혼에도 많이 힘들어한다***. 젊었을 때 선포한 "온 세계가 나의 교구"를 평생에 걸쳐서 이루어간 사람, 웨슬리! 일기를 통해 속마음까지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인디언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아메리카로 갔었다. 아! 그러나 누가 나를 회개시킬 것인가!(62쪽)"



"마을 중앙에 전에 극장으로 쓰여진 듯한 건물에서 설교하였다...매우 거친 사람들이었으나 훼방 놓는 자는 없었다. 설교가 끝나고 거기로 내려가는데 그들도 따라왔으나 욕지거리를 퍼붓는 자는 없었다(334쪽)."



"이맘때 쯤 되면 우린...가난한 교인들에게 석탄, 빵을 지급해왔다. 그러나 지금 살펴보니 음식뿐 아니라 옷가지도 부족하였다(435쪽)."



* 그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그의 일기에서 그는 누구보다 복음에 대한 열정/고집이 있고 사회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을 외쳤고(임금 문제, 구제 강조, 자본주의의 위험성) 전통보다는 열정과 변화를 위해서 한평생을 산 사람이었다. 그래서 읽다 보면 마음 한쪽이 짠하면서 그렇다면 그의 개인 행복은 어떠했을까? 라는 질문이 생기기도 한다. 



3. 신앙인의 삶이란? 

* 웨슬리는 젊었을 때 한 목회자로부터 경고와 조언을 듣는다. 그것은 바로 신앙생활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후 그는 같은 대학에서 경건 모임을 만들어서 평생 동역자를 만들고 지속해서 자신의 삶(사역)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문득 신앙 안에서의 친구, 동역자가 그리워진다. 물론 개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감이 중요한 것은 알지만, 서로에게서 배우고 같이 걸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상적인 것만이 아니라 함께 하면서 서로 다투기도 하고 서로에게 방해되기도 하면서 그래도 같이 살아가면서 같이 나이가 들어가는 친구들, 공동체들이 있기를 바라본다. 

* 우리의 교회 공동체는 21세기의 창작물이 아니다. 분명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하나의 교회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는 있고 거기 다른 교회가 아니라 한 교회 공동체로서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우리는 이 시대만이 아니라 예전에 있던 신앙의 선배들과도 한 공동체로서 존재한다(천국에 가면 다 만나겠지!). 이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대의 조언만이 아니라 과거의 발걸음들이지 않을까. 그들을 기억하면서 무작정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 생각 가운데 지금 우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확신해보고 질문해보았으면 좋겠다. 



4. 고전의 바다

* 이번 존 웨슬리의 일기는 CH북스에서 나온 책이다. 우리에겐 크리스천다이제스트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출판사인데 고전들을 지속해서 번역, 출판하고 있다. 베스트셀러도 좋고 트랜디한 책도 좋지만 스테디셀러 같은 기독교 고전으로 천천히 우리의 신앙을 키워가는 것을 더 추천해본다! 

* 더 자세한 설명과 추천은 아래 기사로 대신해본다.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06406





+ 추가 설명들 ㅋㅋㅋ

*이 책은 브레이너드의 장인, 조나단 에드워즈가 편집해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CH북스)"로 출판되었다!

**존 웨슬리의 동생 찰스 웨슬리는 지금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곡들을 많이 만들었다! ㅎㅎ 예를 들면, "웬일인가 내 형제여", "천부여 의지 없어서", "만입이 내게 있으면" 등이 있다.

***그의 결혼은 아주 유명한 예화로 사용되는데... 슬프게도 비극으로 사용된다. 한 사람은 이렇게 웨슬리의 결혼생활을 증언한다. "그녀가 웨슬리 목사에게 난폭하게 손찌검을 하고 심지어는...머리를 한 줌씩이나 뽑은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36쪽). 물론 존 웨슬리의 일기와 생애를 엿보면 그는 위대한 사역자이지만 남편으로서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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