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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평점 :
야쿠마루 가쿠 <어느 도망자의 고백>







명문대에 다니는 마가키 쇼타는 어느 날 밤 빗길에 음주 운전을 하다 뺑소니 사고를 낸다. 그리고 사람들 치고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달아난 혐의를 받고 경찰에 체포된다. 마가키 쇼타는 법정에서 사람인 줄 몰랐다고 진술하지만 결국 징역 4년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는다. 이 사건으로 가해자 쇼타를 비롯해 그의 가족의 인생은 송두리째 망가지게 되고, 쇼타에게 빨리 오라고 문자를 보냈던 여자친구 구리야마 아야카는 사고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며 자책한다.
피해자의 남편인 80대 노인 노리와 후미히사는 쇼타가 출소한 마가키 쇼타의 거주지를 찾아서 인근으로 이사를 간다. 하지만 인지 장애가 빠르게 진행되는 바람에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만다. 출소한 쇼타는 교도소에서 형기를 채움으로써 자신의 죄를 다 씼었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일 하며 살아가려는 순간, 과거 여자 친구였던 아야카가 나타나고 피해자의 가족까지 직접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서 내용이 전개된다.
현대 사회에서 속죄른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인 야쿠마루 가쿠는 그의 전작으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돌이킬 수 없는 약속>에서도 다뤘던 이 메시지에 대해 논한다. 사건의 가해자가 되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자신의 죄를 뉘우치면서 속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내가 가해자가 된다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주인공인 마가키 쇼타처럼 벌어진 일이 두렵고 무서워서 벗어나랴고 하지 않을까. 가해자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내용은 쇼타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게 만들었다.
봉평터널 연쇄 추돌 사고, 선릉역 오토바이 사고 등 우리나라도 어마무시한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당시 저 사고 관련 뉴스를 보고 정말 충격적이고 마음이 아팠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의 기억이 오버랩됐다. 누군가에게는 실수로 사고를 낸 것이겠지만,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은 평생 육체적 및 정신적 고통을 떠안으며 살아가야 한다. 이런 사고가 애초에 발생하지 않도록 전국민적인 계도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사법부에서는 음주운전에 대해서 더 가혹해질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사람 죽였는데 3~4년형만 선고할거야? 미국처럼 100년 정도는 선고해야 그나마 피해자분들을 돕는 길인 것을 알아야 한다. 야쿠마루 가쿠의 이 소설이 전작보다 더 큰 이슈가 되어 보다 살기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도록 소망해본다.
p.91
그때 왜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을까. 나는 도대체 무엇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 무엇을 두려워했던 걸까.
음주 운전을 한 데다 빨간불까지 무시하고 사고를 일으킨 탓에 학교에서 퇴학당하는 것이었을까. 그로 인해 닫혀버릴 미래의 가능성이었을까. 아니면 교육평론가로 활약하는 아버지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였을까. 누나의 행복을 빼앗을까 봐 두려웠던 걸까.
p.141
쇼타는 자기가 죽게 한 노인의 얼굴을 모른다. 인터넷에서 사건을 검색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이 자기 때문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워서 그렇게 할 수조차 없었다.
p.224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전할 수 없고, 세상을 떠난 사람의 마음은 그 무엇도 전해지지 않는다.
p.332-333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아니, 어디에도 갈 수 없겠지. 제대로 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악에 완전히 물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과거의 잘못에 벌벌 떨며 살아가면서 사회 밑바닥에서 혼자 쓸쓸히 지내는 수밖에 없다.
p.340
아버지는 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병상에서 괴로워하고 이제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들의 미래를 염려해 주었으리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