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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야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0년 3월
평점 :
히가시노 게이고 <환야>






히가시노 게이고의 2004년 작품 <환야(幻夜)>. 헛보일 환 '幻'과 밤 야 '夜'로 구성되어 있는 이 단어가 처음엔 어떤 뜻인지 감이 잘 오질 않았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환(幻)은 '남을 속이는 기술'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이 뜻을 적용하면 '남을 속이는 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제목처럼 이야기도 남을 속고 속이면서 긴박하게 흘러간다.
미즈하라 마사야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고모부가 찾아와 차용증을 꺼내며 돈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게 된다. 다음날 새벽 대지진이 강타해 마을을 덮치고 무너진 공장 잔해 사이에 깔린 고모부를 기왓장으로 처참히 살해한다. 살해 현장을 지켜보았던 신카이 미후유는 마사야에게 도움을 주며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가지만, 이를 바탕으로 나중에는 꼭두각시처럼 그를 조종한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생명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살인을 저지르고, 마사야가 나락으로 빠질 동안 미후유는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 이들을 추격하면 한 명의 형사. 수사망을 포위하면서 점점 사건의 실마리를 발견하면서 범인을 뒤쫓는다.
이 소설에서 한 가지 포인트는 1995년 1월 일본 고베를 강타한 한산 아와지 대지진, 같은 해 3월 도쿄 지하철에서 발생한 사린가스 사건, 1990년대 버블 경제의 붕괴 등 90년대 실제로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바탕으로 내용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소설이라는 생각이 안 들고 실제 상황을 보는 것처럼 몰입감 있게 책장을 빠르게 넘길 수 있었고, 판타지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근 작품들과는 다른 스타일이어서 신선했다.
저자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예전에 s-woman.net과 한 인터뷰에서 "어느 쪽을 먼저 읽어도 좋지만, 양쪽을 읽으면 양쪽을 읽은 만큼의 재미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단, '백야행'의 속편으로 하고 싶지는 않기에, '환야'를 쓸 때 고생했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속편이라는 공식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환야>와 <백야행>의 서사구조와 분위기가 비슷해서 속편이라고 불린다. 예를 들어, 미후유가 과거에 운영했던 부티크 상호가 '화이트 나이트'라는 점, 30대 중반의 여자가 사장이고 미인이라는 점 등 두 작품이 오버랩 되는 지점이 많다. 나는 아직 <백야행>은 읽어보지 않았는데 <환야>를 읽으면서 <백야행>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권으로 구성되어 있어 꽤 두껍지만, 첫 장을 넘기고 흥미로운 이야기에 빠진다면 금세 독파할 수 있는 책이다. 책을 보는 내내 영화 한 편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2주전에 종영된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 등장했던 악귀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이 소설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인간의 악한 모습과 파멸하는 과정을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면, 그리고 추리소설에 진득하게 빠져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