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완성도를 떠나.. 일단 신경숙의 소설은 끌리게 되지요..
이 소설도 그렇더군요..
사실.. 신경숙의 소설을 읽을때면.. 지금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것이 무엇일까.. 겨우뚱할때가 많지요..
소설이 진행되다보면... 원래 말하려고 했던 줄기보다.. 그에 대한 곁가지 묘사가 많은것이.. 신경숙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일껍니다..
이 소설도 역시 그러하네요..
지금 이 부분의 상세한 묘사가 왜 필요한거지.. 의아한 생각이 들면서도..
그 묘사자체에 매혹되지요..
이래서 이 사람의 소설적 깊이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면서도.. 꾸준히 관심을 갖게 되네요..
신경숙의 소설중 이책은?
상중하로 나눈다면 비교적 '상'쪽이네요..
이야기는 다분히 신파적인데.. 눈물을 쏟게 되지요..
작가가 방점을 찍었을법한
극중 화자의 엄마가 '나도 엄마가 필요했다'하는 부분은 소설을 읽는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임에도..
목에 메이네요..
신경숙소설은 깊이보다..
그 문장자체의 속살거림을 가만히 들여보는것이 포인트라서.. 여성주의적인 시선을 느끼기 어려운데..
이 소설에 살짝살짝 보여주는 오롯이 여성만이 가질법한 시선이 흥미롭더군요..
예를 들어..
극중 어머니인 박소녀는 항상 자식들을 위해 헌신을 했고.. 모두는 그런걸 칭송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극중 둘째딸은 과연 어머니의 부엌살림이 행복하기만 했을까.. 작은 의문을 제시합니다..
그때 어머니는 명쾌하게 그렇지 않았노라고 고백을 하지요..
그러면서 성질이 날때마다.. 장독뚜껑을 집어던져 깼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또한 극중 엄마는 애셋을 키우는 자신의 둘째딸을 안쓰러워합니다..
애가 울때.. 시어머니는 며느리보고 얼른 애먹이고 너 먹어라.. 하고..
친정엄마는.. 얼른 너 먼저 뜨고.. 애먹여라 한다지요..
이렇듯.. 꼬물꼬물 예쁜 손주들이지만.. 그애들에 치이는 딸을 애처롭게 생각합니다..
여성이 글을 쓴다고 모두 여성주의적인 글쓰기를 하는것은 아닌데..
짐짓 아닌척.. 보여주는 이러한 여성주의적 글쓰기는 지지할만 하지요..
유쾌하게도.. 이책엔 반전이 숨어있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을 보고 통쾌하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자식들이 어머니의 희생과 노고를 치하하는 척하면.. 도리어 어머니라는 굴레를 씌일때
그 굴레는 굴레대로 받아들이면서..
엄마 혼자 키워온 은밀한 욕망은..
이 책에서 숨을 쉴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더군요..
이책의 첫파트..
소설은 '너'가 어쩌구.. '너'가 어쩌구하면서.. 2인칭 시점으로 진행이 됩니다..
학창시절 국어시간.. 소설의 시점이라는걸 배우면서..
1인칭 3인칭 다 이해가 가는데.. 2인칭이란것이 가당키나 한가 싶었는데..
('나는 밥을 먹었다'..도 아니고 '철수는 밥을 먹었다'..도 아니고
'너는 밥을 먹었다'라니..)
이소설의 '너'로 시작되는 문장이 어색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그 시점으로 소설이 씌여졌다는것이 적절하단 생각이 들었지요..
이 소설을 읽을때..
가장 통쾌한 부분은 76쪽과 77쪽에 걸쳐있더군요..

소설의 줄기랑은 상관없는 지나가는 짧은 에피소드인데.. 깨소금맛입니다..
뭐 짧게 요약해서 쓸수도 있지만.. 이건 이책을 읽을분을 위한 팁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그냥 이 문장은.. 웬지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할꺼란 생각이 드네요..
특히 희생을 모성으로 착각하는 남자들이라면 말이죠..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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