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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를 읽었다.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해 개인적으로 호불호가 심해(불호가 더 강하다) 잘 안 읽는 편인데 어디선가 추천하기에 잡았다. 작가의 작품을 대부분 안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열광했던 몇 작품이 있었기에 기대를 가지고 읽었는데.. 역시나..
내가 이 작가에서 느끼는 실망감 요소들의 종합선물세트다.
제목이 공허한 십자가인데 내게 이 작품은 '공허한 이야기'다.
물론 끝까지 흥미진진하게는 읽긴 했는데(이건 늘 그렇다. 이 작가의 작품은 늘 끝까지 한달음에 잘 읽힌다) 작가가 띄워놓은 메세지는 촌스럽게 이야기 속에서 작동하고 있었고 특히나 신파감성은 이야기에 몰입하는걸 방해했다.
이야기가 진득하지 못하고 얄팍한 것이 지극히 '아침드라마'스럽다고 느낀 것.
과거의 대한 죄책감을 차원높게 승화시키려 하는 캐릭터도 있고 자신을 내동댕이 치는 등장인물도 있는 등, 구성만으로는 흥미진진한 요소가 많은데 이야기가 깊지 않은지라 그게 책을 읽는 내 마음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원래 소설이라는 것이 이야기를 읽었을 뿐인데 나에게 이런 메세지와 여운이 남았네.. 해야 하거늘 작가의 메세지를 띄우는 방식이 너무도 직접적이라 신문 한조각에 실린 기획기사를 읽은 느낌이다.
또, 프롤로그가 한 챕터 나오는데 나같이 머리 나쁜 사람은 이후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기에 본격적인(?) 이야기를 할 때 캐릭터 잡는데 조금은 애를 먹었다.
뭐 나쁜 내 머리를 탓해야 하겠지만 왜 이 이야기를 앞에 뚝 떼어놓아 이렇게 만드냐구요. 그냥 중간쯤 녹였으면 좋았잖아요.
아, 그리고 이런 '옮긴이의 말'은 왜 붙였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책홍보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글을 쓴다지만 너무해.
손과 손이 싸운다니 너무해.
(스포일러)
이야기의 중심엔 사요코가 있다.
그는 11년전에 아이를 잃고 남편과 이혼한 후 작가로 살다가 살해를 당한다. 누가 죽였는지는 바로 밝혀진다.
이제 소설은 왜? 살해 당했는지 파고든다.
일단 이 작품의 패착은 신파조라는 거.
애를 낳고 죽인후 버리기까지 한 남녀의 죄책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캐릭터로 등장한 이는 남자의 배우자로 나온 하나에. 하나에의 사연은 눈물없이 읽을 순 없다. 쌍팔년도.. 아니 육십년대 정서가 물씬하다.
게다가 하나에의 아버지는, 대부분 인간말종으로 살다가 별안간 뒤에 가서 뭐 이렇게 헌신적인 아버지가 되냔 말이다.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감정이 연결되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캐릭터들이 튄다. 어떤 캐릭터나 사건이 다음의 무언가를 내보내기 위해 만들어졌구나 하는 기능적인 것이 보이다 보니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확실한 성취점이 있긴한데 사형에 대해 생각할꺼리를 준다는 거.
난 '확실한' 사형반대주의자다.
남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강한 금기로 하는 세상에서 무슨 이유가 되었든 남의 목숨을 가져간다는 건 강한 모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이 작품에선 작가는 사형제도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난 어느부분은 동의하기도 하고 의문점을 갖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럼에도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있었으니.. 사요코는 그의 책에 이런 글을 남긴다.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 - 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라고.
물론 난 이 책을 덮고 난 후에도 여전히 사형반대주의자지만, 의문점을 던져준다는 점에선 이 작품에 작은 지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