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남들의 세계사 - 2014년 제4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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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차남들의 세계사>를 읽었다.
 
이 작품, 힘있다.
시도때도 없이 치고 들어오는 그 우직함에 읽는 사람은 어질하기도 하는데 작가는 그 힘겨움까지도 아우르며 끝까지 힘차게 끌고 나간다.  이기호의 작품은 처음인데 앞으로 그의 이름이 들어갔다면 믿고 읽어도 좋겠다 싶을 정도다.
이 작품은 비극적인 역사적 소재를 가져오면서 어느정도 통속소설의 얼개를 가진다. 물론 이는 작가가 의도한 바.
그러기에 술술 재미있게, 가끔은 킥킥거려가며 까지 읽게 되는데, 오히려 그러기에 역사에 무게에 눌려 그야말로 압사해버린 주인공의 삶에 더욱 강한 연민을 가지게 된다. 역사를 개인의  얹어 표현한 좋은 소설로 기억할 듯.

또한 특히나 개인적으로 재미있다고 느낀 이유는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원주이기 때문(작가의 고향이 원주다)
원주는 내가 결혼하면서 10여년 이상을 살던 곳이다.
그러니 이 책에 나온 지리가 아주 훤하다. 특히나 우리의 주인공 복만씨가 택시운전사이다보니 장소 이름이 잘 나오는데 어디서 좌회전해 터미널이 나오고 어쩌구니, 어느 국민학교가 어쩌구니 하면 그 곳이 머리속에 쫙 그려진다.





(스포일러)





이 작품의 진가는 '충돌'에서 나온다.
가령 나복만의 죄목은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그런데 그가 걸려든건 국가보안법이다.
그런 그가 잡혀가 온갖 고문을 당하는데 그 마지막 과정은 진술서 작성이다. 그런데 그 고초를 다 당하면서도 진술서 쓰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나복만. 사실 거부한건 아니다. 그가 쓸 수 있는 한글 몇 단어로 분명 진술서라는걸 썼다.
이러니 안기부 직원들은 그를 독한 빨갱이로 몰아가지만 그는 진술서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진술서를 쓸 수가 없다. 한글을 모르니까. 한글을 쓸 줄 모르니까.
이렇듯 어이없는 상황에 독자는 쓴 웃음을 짓게되는데 이런식의 충돌은 그 권력(아래로는 안기부 위로는 정권을 잡은 이까지)의 부조리함 혹은 무자비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결국 작가는 그 권력을 조롱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각 장을, '자, 이것을 뭐하면서 계속 들어보아라'식으로 독특하게 시작하기도 하고,  글속에 자주 괄호를 넣어놓기도 하는데 조금은 산만해 보이지만 사실 작가가 진짜 말하고 싶은 건 그 괄호안에 들어가 있다.

제목이 <차남들의 세계사>라서 이게 무슨 뜻인가 싶은데 작가는 작품안에다, 왜 이런 제목을 붙혔는지 풀어놓는다.
이는 나복만이 보좌신부님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로 등장을 하는데(물론 이건 나복만 창작품이 아니다. 나복만은 한글을 쓸 줄 모른다니까!!)
'이 세상은 두려운 한 명의 형과, 두려움에 떠는 수 많은 수 많은 동생들로, 차남들로 이루어진 것이다고. 그것이 바로 신의 뜻이라고.
더 큰 문제는 우리 차남들 스스로가 형을 두려워하다가 숭배마저 하게 된 상황'이라고(279쪽)

작가는 마지막까지 유머를 잃지 않는다.
잠적생활을 시작한 나복만은 김순희에게 꾸준히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그건 김순희에게 전해지지 못한다. 그걸 차곡차곡 모아 보관하는 이는 김순희의 후배와 결혼한 키 작은 집배원.
그런데 시간이 지난 후 그 편지들을 반복해서 읽게 된 이는 그의 고등학교 아들이다. '그 아들은 자라서 소설가가 된다. 그게 누구인지는 다들 말 안해도 짐작하겠지만.. '이라며 눙친다.
이게 팩트인지 페이크인지는 모르겠지만(페이크라고 생각한다) 이런식의 소소한 유머 진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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