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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창비시선 411
신용목 지음 / 창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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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유명한 어떤 사건이후로 내게 좋은 질문은 아니다. 대신 나는 어떤 시를 좋아하세요라거나 어떤 시인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수용한다. 물론 전자의 질문은 대답하기 어렵다. 너무너무 많기 때문에. 한편 후자의 질문은 몇 가지로 대답 가능하다. 그중에서도 신용목 시인은 내가 생각하는 시인이라면 이래야 해!’라는, ‘시인의 이상상과 같은 사람이다. 시만 바라본 지극히도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그는 선하고 안온한 마음을 가진 사람 같다. 선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시인.

 

내가 죽은 자의 이름을 써도 되겠습니까? 그가 죽었으니

내가 그의 이름을 가져도 되겠습니까? 오늘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으니

나의 이름은 갈수록 늘어나서, 머잖아 죽음의 장부를 다 가지고

 

나는 천국과 지옥으로 불릴 수도 있겠습니까?

 

(중략)

 

네 이름을 훔치기 위해

아무래도 죽음은 나에게 눈을 심었나 보다, 네 이름을 가져간 돌이 비를 맞는다.

귀를 달았나 보다, 돌 위에서 네 이름을 읽는 비처럼,

내가

천국과 지옥을 섞으며 젖어도 되겠습니까?

저기

공원을 떠나는 여자의 붉은 입술처럼, 죽음을 두드리는 모든 꽃잎이 나에게 기도를 전하는……

여기서도

인생이 가능하다면, 오직 부르는 순간에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사랑이 가능하다면,

죽은 자에게 나의 이름을 주어도 되겠습니까? 그가 죽었으니 그를 내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습니까?

 

공동체

아름다운 이름을 수집하는 이가 있다. 나는 그 기분을 이해한다. 내 것으로 훔치고 싶을 정도로 탐이 나는 이름이 내게도 있으므로. 나는 언제나 이름을 관찰한다. 나의 이름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변명하지만 그것은 이미 과거의 문제, 지금은 이 이름을 지극히도 사랑하는데 왜 나는 그것에 집착하는가. 나에게 호칭의 문제, 이름을 붙여주는 문제는 왜 중요한 것인가. 특별한 누군가의 이름은 나를 왜 전율하게 하는가. 나는 이 탐구에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인생이 가능하다면’, ‘사랑이 가능하다면죽은 자에게 나의 이름을 주고 싶다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아직 나는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하였다.

 

 

 

사랑은 내가 꾸는 꿈이 나를 찾아 헤매는 순간이어서 번번이 아침은 실패한 꿈을 물컹한 몸으로 바꿔놓는다.

 

 

진흙 반죽 속에서 조금씩 내가 되어 걸어나오는 진흙 인간처럼(전문)

이 단 한 문장의 시에서 오래오래 눈을 떼지 못했다. 멍한 마음으로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이 한 줄의 시로 마음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았다. 내 텅 빈 매일의 아침이 이런 것이었나 그런 거였나. 나는 그런 밤을 바삐 수행해 온 것이었나 싶어서 조금 기뻐졌다. 매일 아침마다 겪어내는 실패가 기뻐졌다.

 

이 시간이면 모든 그림자들이 뚜벅뚜벅 동쪽으로 걸어가 한꺼번에 떨어져 죽습니다. 아름다운 광경이죠. 그것을 보고 있으면, 우리 몸에서 끝없이 천사들이 달려나와 지상의 빛 아래서 살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됩니다. 나의 시선과 나의 목소리와 거리의 쇼윈도에도 끝없이 나타나는 그들 말입니다.

오랫동안 생각했죠. 깜빡일 때마다 눈에서 잘려나간 시선이 바람에 돌돌 말리며 풍경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거나, 검은 소떼를 끌고 돌아오는 내 그림자를 맞이하는 밤의 창가에서…… 목소리는 또 어떻구요. 투명한 나뭇잎처럼 바스라져 흩날리는 목소리에게도 내세가 있을까? , 메아리라면, 그들에게도 구원이 있겠지요.

 

갑자기 쇼윈도에 불이 들어올 때,

 

마네킹은 꼭 언젠가 살아 있었을 것만 같습니다. 아니, 끝없이 살해되고 있는지도 모르죠. 밤새 사랑했지만,

 

아침이 오고 또 하루가 저뭅니다. 이 시간이면 서서히 어두워지다가 갑자기 환해지는 거리에서 태어났던 것들이 태어나고 죽었던 것들이 죽는 것을 보곤 합니다. 그러나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한꺼번에 깜깜해지는 거리처럼, 사랑하는 순간에 태어난 천사에게만 윤회가 허락될 리는 없으니까요.

 

지나가나, 지나가지 않는(전문)

내 몸에서 그림자가 걸어나가가고 내 몸에서 천사들이 달려나간다. 나는 얼마나 무한한 존재인가. 그리고 그들이 떠난 이후의 나는 얼마나 텅 빈 존재인가. 마네킹이나 천사나 사랑받고 버려지기는 매한가지다. 마네킹이나 천사나 인간이 아니기는 매한가지다. 나는 밤이 되면 이상해진다. 내가 사람 아닌 것이 된 양 이상해진다. 지금이 꼭 그렇다.

 

내가 가장 훔치고 싶은 재주는 어둠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저녁의 오래된 기술.

 

불현듯 네 방 창에 불이 들어와, 어둠의 벽돌 한장이 차갑게 깨져도

허물어지지 않는 밤의 건축술.

 

검은 물속에 숨어 오래 숨을 참는 사람처럼.

 

내가 가진 재주는 어둠이 깨진 자리에 정확한 크기로 박히는, 슬픔의 오래된 습관.

 

공터에서 먼 창(전문)

슬픔의 오래된 습관이라는 맺음말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레이어가 한 겹 한 겹 쌓이듯 차곡차곡 슬픔의 이미지가 쌓인다. 슬픔은 역시 엷은 푸른빛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몫의 슬픔이 쌓인다. 한 겹 한 겹 오늘의 몫이 쌓일수록 어둠이, 밤이 찾아온다. 오늘도 그렇게 습관처럼 충실히 하루분의 슬픔을 쌓는구나. 견고하게.

 

어떤 사랑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아직 사랑하고 있으므로…… 그는 죽은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밤이다. 아름다운 밤이다.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을 때, 거기 내가 살고 있었다. 뻔했다. 영화는 밤에 자는 낮잠 같다.

 

영화는 밤에 자는 낮잠 같다(맺음 부분)

시인은 너의 이름을 읽고 있었다.”라고 했다. 삶도 죽음도 이름을 사이에 두고 줄다리기를 한다. 이름을 읽는 순간만큼은 가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재차 묻는다. 나에게 이름은, 호칭은 대체 무엇인지. 부모가 부여하고 내가 부여하는 고유명사 하나가 생과 사를 가로지른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이름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이름을 지우는 것으로 끝나는가. 이름이 있다면 사랑은 지속되는가.

 

죽음이 인생을 엿보려고 사람에게 사랑을 심어놓았다.

첩자로 키워놓았다.

 

나는 신들의 플러그를 다시 꽂는다.

 

내 분노를 전하기 위하여 - 아직 내게 남은 재앙이 있다면

오늘 자정이 가기 전에 보내주기를.

 

내가 쓰러져 꿈꾸기 전에(전문)

신용목은 R이 좋아하는 시인이다. 작년 R의 추천으로 신용목의 산문집을 읽고 나 역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전 시집을 찾아 읽었다. 닮았다. R과 신용목은. “죽음이 인생을 엿보려고 사람에게 사랑을 심어놓았다.”라는 문장은 꼭 그녀의 스타일이다. 죽음이 인생을 망치려고 사랑을 첩자로 보냈다니, 죽음과 사랑은 꼭 집어 한편인 것이다. 그래서 사랑에 어떤 인생은 살해당할지도 모른다. 시인은 분노했다지만 나는 너무 로맨틱해서 어이가 없다. 어찌됐건 이제 R이 보고 싶을 때는 이 슬픔엔 규격이 없다는 신용목의 문장이 생각날 것이다. 물론, R은 신철규도 소개해 주었으므로, 나날이 우리의 세계는 확장된다 : )

 

신용목의 시는 자극적이지 않다. 심보선 시인이 칼처럼 날카롭고 독처럼 위험해서 매혹적이라면, 신용목 시인은 선하디 선해서 누군가 상처 입을까 피곤하게 주변을 살피는 감동이 있달까. 시를 너무나 사랑해서 시인과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지만, 신용목 시인이라면 꼭 한번 친하게 지내보고 싶다. 요즘 손에 쥐는 시집마다 어메이징, 어메이징 하다. 꽤 좋은 밤이다. 손끝에 피가 돌고 긴장이 풀린다. 건조한 얼굴을 감싸 안는다. 온기 가득한 시에 매달릴 수 있어서 약간 행복해졌다.

 

신용목 시인은 정말로 균형 잡힌, 인상 좋은 미남이다. 꼭 그렇게 잘 생겨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건가요? (진심)

 

이번 시인의 말은 기대에 못 미치게 너무 심심하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은 가끔씩 사랑이 나를 소환한다는 것은.”이라는 그의 유명한 시작 노트에 비하면...

 

제 꼬리를 잡지 못해 빙빙 돌다 터뜨리는 울음처럼. 우는 아이의 달리기처첨. ‘잡고 싶음잡을 수 없음으로서의 사랑! 이 얼마나 다행인가. 안하무인 신공안의 검경이 아니라 아직은 가끔씩 사랑이 나를 소환한다는 것은. (신용목의 공터의 달리기시작 노트, 한국대표시인 70-, 사랑에 빠지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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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 1.4킬로그램 뇌에 새겨진 당신의 이야기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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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국어 선생님 K에게 가끔 이야기한다. “당신은 ‘미문의 인생’(김연수)을 살고 있네요”라고. 그렇다면 내 인생은 어떤가, ‘오독의 인생’이 아닐까. 한 미남 작가의『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을 통해 마음껏 오독하라는 면죄부를 얻은 이후 나는 마음놓고 ‘오독’한다. 이번 독서도 그렇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뉴턴, 1795」이 표지 이미지로 나왔을 때 정해진 것이다.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이란 제목과 상관없이 나는 이 책의 어떤 부분에 꽂혀버렸다고. 재빨리 오독은 결정되었다고. 

영국의 신비주의 시인이자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는 당대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나친 과학주의와 이성적 합리주의가 인간의 영적인 부분을, 특히 예술성을 위축시키고 폄하하며 망친다고 생각했기에. 그래서 블레이크는 “신이여, 부디 우리를 깨어 있게 해주옵소서. 외눈박이 시각과 뉴턴의 잠으로부터….”(친구 토머스 버츠에게 보낸 편지)라고 말하며 이 그림을 그렸다. 블레이크는 자기가 만든 지옥의 삼위일체에 아이작 뉴턴과 프란시스 베이컨, 존 로크를 집어넣었다. 뉴턴의 과학적 유물론을 비난하기 위한 그림이었고, 영적인 세계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은 인간이라는 의미였다. 세상의 거대함을 알지 못하고 기하학으로만, 혹은 과학적 사고로만 세상을 재단하는 인간이라는 비웃음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좋은가,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드물었고 그의 시는 읽히지 않았고 그림도 팔리지 않았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당대에 뉴턴에게 패배했다. (오늘날 이 그림은 뉴턴으로 대표되는 과학주의의 상징으로 정착했다. 대영도서관 앞에는 이 작품을 현대화시킨 파올로찌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

저자가 그림을 표지에 실은 것은 타당하다.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뇌과학’, 뇌라는 기계의 매뉴얼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므로. 또한 뉴턴은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기계 시스템임을 강조했던 과학자이므로. 과학의 세계에서 뉴턴은 영웅이었고, 그를 반대한 블레이크도 예술의 세계에 있어서는 영웅이었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말한다. “100년 후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과거 동물과 인간의 운명이 바뀌었듯이, 이제는 새로운 운명이 출현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1] 뇌과학, [2] 뇌와 정신, [3] 뇌와 의미, [4] 뇌와 영생의 흐름을 따라 뇌과학에 기반을 두어 어떤 운명을 찾을 것이냐고 반문한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심장이 아니라 뇌에 있다.”, “나는 뇌다, 고로 존재한다.”, “나라는 존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 혹은 우리가 모르는 것,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라는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질문은 만나면 만날수록 흥미롭다. 저자가 원한 것이 뇌과학의 정보 전달이 아니라, 뇌과학을 철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김대식 저자는 장절마다 멋진 그림을 삽입하여 눈을 즐겁게 하고 머리를 쉬어가게 하는데, 그것참 내 취향이다. “모든 예술 작품은 나의 다른 표현이다.”라며 삽입한 화가의 자화상 표현은 어떤 미술 도서의 한 챕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논리적이고 깔끔했다. 카프카와 그레고르 잠자를 활용한 연장성(Continuity) 설명 역시 손뼉을 칠만큼 흥미로웠고.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라기보다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정당화 기계로서의 뇌 이야기 역시 동의할 만했다. 전반적으로 어렵다기보다는 쉽게 풀이한 훌륭한 대중 도서라는 데 동의하며, 저자의 놀라운 글 솜씨에 경의를 표한다. 

여러 챕터 중에 내 마음을 빼앗은 것은 역시 [3] 뇌와 의미 부분이리라.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삶의 의미”라는 진화생물학적 입장에서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저자의 “늙는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라는 해석에는 십분 동의한다. 늙음의 공포는 인생을 포기하게 하지만, 삶의 여백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삽입한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역시 나의 고민에 적절하게 젖어든다. “어차피 죽어 땅에 묻히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라면, 왜 이렇게 고생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길가메시의 질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뼛속까지 동일한 나의 고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번번이 행복을 강조한다.길가메시 서사시》의 지혜 역시 ‘행복’이었고저자가 책 말미에서 인정하는 성공적인 인생이란?” 물음의 대답 역시 그냥 행복하면 된다.”라는 대답이다그리고 그건 독립적인 자아를 갖는 것이라고 갈무리한다. 이에 저자는 독립적인 자아를 찾는 방법은 “예측 가능한 세상에 잡음을 집어넣음으로써예측 코드로는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고 추가 설명한다. 가치를 얻기 위해 기꺼이 수련하기 원하는 누군가가 떠오른다. 일본 만화에서 우스갯소리로 (폄하하여이야기하는 ‘자아 찾기 여행은 역으로 한 개인에게는 거대한 여행이다그래서 나는그것을 영웅의 인생이라고 믿고 싶다

저자는 질의응답에서 자기에게 진실해지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그 순간 자아가 성장한다.”라고 말한다그런데 나는 어떠했는가의지했던 치장을 벗고 나에게 진실해지는 순간은 언제나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이었다내 용어로 말하자면 나의 비참을 OK 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과학의 세계는 언제나 내게 낯설다과학의 인간은 불가능이 없는 존재 같다뇌과학(?)은 이제 인공지능도 만든다고 한다그런데 현실의 나는인간이 맞나나는 인생의 비전을 차곡차곡 이루어내기는커녕 하루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이것저것 놓치며 실수투성이로 살고 있는데... 실상 너무나 무력하다
 
나는 이 무력함만이 인간다움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인간과 기계와의 너무나 다른 점, 그것이 인간의 고유성이며, 이 무력함을 사용하는 방법에서 예술과 문학이 발전했으며, 인간성의 매력이 드러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매력이 극대화된 인물이 영웅이 아닐까 생각한다. 길가메시나 오디세우스를 굳이 이야기할 생각도 없다. 문학의 영웅 중에 완벽하기만 한 인간은 몇이나 있었나. 내 기억에는 분명 없다. 혹여 완벽해 보이더라도 그건 그를 사랑하는 단 한 사람에 의한 완벽성이다. 그의 무력함이 사랑스러운 사람에 의한 완벽성이다. 그러하니 자신의 무력함을 사랑하는 사람, 타인의 무력성을 보호하는 사람만이 영웅의 인생을 산다고 믿는다. 

영웅의 인생이란, 자신에게 진실해지는 경험의 합이 아닐까. 자신의 밑바닥을 확인하고 우뚝 서 다시 걸어가는 인간, 또다시 먼지를 뒤집어쓰고 진흙을 묻히는 인간, 샘터에 이르러 무릎을 꿇고 손을 씻고 얼굴을 씻는 인간, 그 낮은 위치에서 진실을 비추어보는 낡아가는 인간이 영웅이다. 뉴턴 역시 그러하였고 윌리엄 블레이크 역시 그러하였다. 그리고 누군가는 각각 그들을 영웅이라고 불렀다. 
인간의 연약함은 분명, 사랑으로 수렴된다. 때때로 나 같은 냉혈한도 인간의 연약함에 사랑을 느낀다. 사람은 강인한 인간에게 기대고는 싶어도 강인한 인간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연약함만이 사랑을 끌어들인다. 길가메시가 영생을 찾아가게 된 계기도 사랑하는 친구 엔키두의 죽음이었지 않은가. 놀랍게도 연약함을 사랑하게 된 인간은 강인해지기로 결심한다. 일종의 영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행복의 관점에서 이 책을 다시 바라보면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이라는 제목도 뭐 그리 심오한 의미가 있을까. 결국 과학도 종래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일 테니. 크게 볼 때 (뇌)과학이란 ‘행복해지기 위한 뇌 사용법’ 같은 것이리라. 

행복은 어디 있나, 여러 번 생각해도 다를 것이 없다. 진심으로 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것이 행복이다. 진심으로 나를 나만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 행복이다. 그걸 거짓 없이 누리고 사는 것이 행복이다. 뜬금없이 워런 버핏의 성공론이 떠오른다. “하지만 내 나이가 되면 말입니다, 당신이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주면, 그게 성공입니다.”라고 말했던 바로 그 문장 말이다. 
그는 성공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성공’을 ‘행복’으로 바꾸어 읽어도 훌륭한 대답이 될 터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공이란 원하는 것을 많이 얻는 것, 행복이란 많이 얻기를 바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는 다른 하나를 반드시 포함한다고 느끼죠.(성공해야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의미.) 하지만 내 나이(82세)가 되면 말입니다, 당신이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주면, 그게 성공입니다. 당신은 세상의 모든 부를 다 얻을 수도 있고 당신 이름을 딴 빌딩들을 가질 수도 있겠죠. 그러나 사람들이 당신을 생각해주지 않으면 그건 성공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자녀들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그런 (주위)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한다면 나이가 든 후 오랫동안 당신은 성공한 겁니다.” (워런 버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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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한 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
김혼비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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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우미양가(秀優美良可)’ 세대다. 나와 일 년이라도 학교를 같이 다녀 본 친구들은 안다. 대부분의 과목에서 수()나 우(優)를 받아내고야 말던 내가 체육만큼은 ‘양()’을 치게 될까 봐 벌벌 떨던 인간이었음을. 어쩌면 그렇게 운동신경이 없는지 체육시간마다 명실공히 학습 부진아로 활약했다. 아직도 배구공을 리시브하다가 엉뚱한 데를 조준해 누군가의 코피를 터트렸던 그날이 생생히다. 한편 성실하기는 무식하기 그지없어 끈덕지게 수업에 임하는 모습 때문에 체육 선생님은 늘 고심하셨다. 한숨을 푹 내쉬며 노력 점수를 주시던 그분들께 감사할 수밖에. 

자연스레 스포츠에 관심이 자랄 일도 없었다. 전설이라는 
2002년 월드컵 때도 아르바이트하느라 경기 한번 제대로 보지 못했고 당연히 응원을 나가본 적도 없다. 이건 진짜 심각하다.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빈혈을 핑계로 트레킹도 등산도 안 간다. 스포츠는 늘 나를 작아지게 한다. 

그런 내게 ‘우아하고 호쾌한’ 워딩이 매력적인 ‘여자’ 축구 책이란 신세계 중의 신세계였다. 게다가 내 정체성 같은 ‘우아한’ 책이라지 않나. 진짜 축구를 해보라는 것도 아닌데 뭐, 눈으로는 얼마든 도전할 수 있다. 눈을 확 집어당기는 (숨겨진) 여자들의 세계, 오스칼님 같은 멋진 여자들이 여기 다 모였다. 


생각해보니 ‘여자’와 ‘축구’의 조합은 낯설다. 왜 다른 운동보다 축구는 여자에게 위화감을 주는가. 몸싸움을 하는 격렬한 운동이어서? 사회가 정해둔 여성성과 거리가 멀어서? 남자들은 어린이 축구단이니 조기축구니 군대 축구니 뭘 해도 축구가 밀접한 운동인데 왜 여자에게는 축구가 신박한 운동일까. 주변에 축구를 하는 여자분도 계신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게 신기한 인물이었을 뿐,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이렇게 많은 여자분들이 전국 곳곳에서 열렬히 축구하며 뜨거운 김을 발산하는지도 몰랐다. 

스포츠는 뜨겁다,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데 이보다 더 정확한 척도가 있을까. 이기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라운드로 달려온다. 이 ()을 살고 싶어서, 이 생에서 한 번쯤은 더 이겨보고 싶어서. 그래서 사람들은 스포츠의 무대에 오르고, 기꺼이 하나가 되고 순간을 거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내가 잘 모르는 기쁨이다. 몸의 극한에서 겪는 희열이다.  

책을 권하는 데 다른 말이 뭐 필요하겠나, 재미있으면 되지. 뭐라 말하기 쑥스럽지만 나는 축구에 대해서 하나도 모른다. 정보 값이 거의 0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나인데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읽는 내내 풋! 빵! 킥! 이 돌아가면서 터져 나왔다. 진짜 오랜만이다. 의성어를 내면서 책을 읽은 건 말이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의 장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균형 잡힌 긴장감이다. 도입부의 초개인주의자 이야기, ‘유교 소녀’이야기부터 말미의 스포츠 일체감까지. 지루할 틈 없이 소소한 유머로 글을 끌어간다. 개인적으로는 축구에 인생을 걸겠다는 대단한 명분 없이 누구 따라서, 누구 땜빵으로, 누구 (헬스장) 캐스팅으로 축구를 시작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그야말로 인간적이고 또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 내게도 저자에게도 낯선 촘촘한 인간관계와 끈끈한 정이 이야기를 드러내고 엮어 보여준다. 이런 사연이야말로 우아하다. 

나는 꽤 
팍팍한 성정으로 매일을 산다. DNA 때문이다, 타고난 기질이 그렇다. 순간순간 심각하기 그지없다. 그런 험한 나날 가운데 몇 시간을 킬킬거릴 수 있다니 낯설면서도 즐거웠다. 다만 이 몸의 운동지식이 제로인 게 좀 아쉬웠을 뿐. 물론 저자가 에피소드마다 축구 용어를 잘 풀어 설명해 주었다지만 내 이해는 100퍼센트 상상일 뿐이다. 아무리 열심히 상상해도 축구를 몸과 마음으로 즐겨온 사람들과의 경험치에 댈 수 없다. 뜨거운 축구인에게 이 책은 또 어떤 즐거움일까. 어쨌든 대단하다. 운동신경 및 운동지식 제로의 내가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읽어버리게 한 저자의 글 솜씨라니. 이 능청스러움, 이게  바로 여자 축구인의 우아함이고 호쾌함이다. 언제나 여자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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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모자가 하고싶은 말 - 꽃 같은 말만 하라는 세상에 던지는 뱀 같은 말
조이스 박 지음 / 스마트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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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합니다. 현실은 가시투성이여서 사람은 늘 아프고, 아파서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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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로 세상을 다 가져라
김시현 지음 / 서래Books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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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습관적이고 기대 없는 독서만을 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어봐야 무엇이 바뀌겠나 일 때문에만 책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정말 뜨겁습니다
독서조언에 대한 책들, 미려구사의 책들은 많이 만났지만
저자의 직접 경험이 이렇게나 뜨겁고 우직하게 드러난 책은 너무나 오랜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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