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 1.4킬로그램 뇌에 새겨진 당신의 이야기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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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국어 선생님 K에게 가끔 이야기한다. “당신은 ‘미문의 인생’(김연수)을 살고 있네요”라고. 그렇다면 내 인생은 어떤가, ‘오독의 인생’이 아닐까. 한 미남 작가의『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을 통해 마음껏 오독하라는 면죄부를 얻은 이후 나는 마음놓고 ‘오독’한다. 이번 독서도 그렇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뉴턴, 1795」이 표지 이미지로 나왔을 때 정해진 것이다.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이란 제목과 상관없이 나는 이 책의 어떤 부분에 꽂혀버렸다고. 재빨리 오독은 결정되었다고. 

영국의 신비주의 시인이자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는 당대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나친 과학주의와 이성적 합리주의가 인간의 영적인 부분을, 특히 예술성을 위축시키고 폄하하며 망친다고 생각했기에. 그래서 블레이크는 “신이여, 부디 우리를 깨어 있게 해주옵소서. 외눈박이 시각과 뉴턴의 잠으로부터….”(친구 토머스 버츠에게 보낸 편지)라고 말하며 이 그림을 그렸다. 블레이크는 자기가 만든 지옥의 삼위일체에 아이작 뉴턴과 프란시스 베이컨, 존 로크를 집어넣었다. 뉴턴의 과학적 유물론을 비난하기 위한 그림이었고, 영적인 세계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은 인간이라는 의미였다. 세상의 거대함을 알지 못하고 기하학으로만, 혹은 과학적 사고로만 세상을 재단하는 인간이라는 비웃음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좋은가,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드물었고 그의 시는 읽히지 않았고 그림도 팔리지 않았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당대에 뉴턴에게 패배했다. (오늘날 이 그림은 뉴턴으로 대표되는 과학주의의 상징으로 정착했다. 대영도서관 앞에는 이 작품을 현대화시킨 파올로찌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

저자가 그림을 표지에 실은 것은 타당하다.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뇌과학’, 뇌라는 기계의 매뉴얼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므로. 또한 뉴턴은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기계 시스템임을 강조했던 과학자이므로. 과학의 세계에서 뉴턴은 영웅이었고, 그를 반대한 블레이크도 예술의 세계에 있어서는 영웅이었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말한다. “100년 후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과거 동물과 인간의 운명이 바뀌었듯이, 이제는 새로운 운명이 출현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1] 뇌과학, [2] 뇌와 정신, [3] 뇌와 의미, [4] 뇌와 영생의 흐름을 따라 뇌과학에 기반을 두어 어떤 운명을 찾을 것이냐고 반문한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심장이 아니라 뇌에 있다.”, “나는 뇌다, 고로 존재한다.”, “나라는 존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 혹은 우리가 모르는 것,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라는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질문은 만나면 만날수록 흥미롭다. 저자가 원한 것이 뇌과학의 정보 전달이 아니라, 뇌과학을 철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김대식 저자는 장절마다 멋진 그림을 삽입하여 눈을 즐겁게 하고 머리를 쉬어가게 하는데, 그것참 내 취향이다. “모든 예술 작품은 나의 다른 표현이다.”라며 삽입한 화가의 자화상 표현은 어떤 미술 도서의 한 챕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논리적이고 깔끔했다. 카프카와 그레고르 잠자를 활용한 연장성(Continuity) 설명 역시 손뼉을 칠만큼 흥미로웠고.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라기보다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정당화 기계로서의 뇌 이야기 역시 동의할 만했다. 전반적으로 어렵다기보다는 쉽게 풀이한 훌륭한 대중 도서라는 데 동의하며, 저자의 놀라운 글 솜씨에 경의를 표한다. 

여러 챕터 중에 내 마음을 빼앗은 것은 역시 [3] 뇌와 의미 부분이리라.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삶의 의미”라는 진화생물학적 입장에서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저자의 “늙는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라는 해석에는 십분 동의한다. 늙음의 공포는 인생을 포기하게 하지만, 삶의 여백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삽입한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역시 나의 고민에 적절하게 젖어든다. “어차피 죽어 땅에 묻히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라면, 왜 이렇게 고생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길가메시의 질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뼛속까지 동일한 나의 고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번번이 행복을 강조한다.길가메시 서사시》의 지혜 역시 ‘행복’이었고저자가 책 말미에서 인정하는 성공적인 인생이란?” 물음의 대답 역시 그냥 행복하면 된다.”라는 대답이다그리고 그건 독립적인 자아를 갖는 것이라고 갈무리한다. 이에 저자는 독립적인 자아를 찾는 방법은 “예측 가능한 세상에 잡음을 집어넣음으로써예측 코드로는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고 추가 설명한다. 가치를 얻기 위해 기꺼이 수련하기 원하는 누군가가 떠오른다. 일본 만화에서 우스갯소리로 (폄하하여이야기하는 ‘자아 찾기 여행은 역으로 한 개인에게는 거대한 여행이다그래서 나는그것을 영웅의 인생이라고 믿고 싶다

저자는 질의응답에서 자기에게 진실해지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그 순간 자아가 성장한다.”라고 말한다그런데 나는 어떠했는가의지했던 치장을 벗고 나에게 진실해지는 순간은 언제나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이었다내 용어로 말하자면 나의 비참을 OK 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과학의 세계는 언제나 내게 낯설다과학의 인간은 불가능이 없는 존재 같다뇌과학(?)은 이제 인공지능도 만든다고 한다그런데 현실의 나는인간이 맞나나는 인생의 비전을 차곡차곡 이루어내기는커녕 하루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이것저것 놓치며 실수투성이로 살고 있는데... 실상 너무나 무력하다
 
나는 이 무력함만이 인간다움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인간과 기계와의 너무나 다른 점, 그것이 인간의 고유성이며, 이 무력함을 사용하는 방법에서 예술과 문학이 발전했으며, 인간성의 매력이 드러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매력이 극대화된 인물이 영웅이 아닐까 생각한다. 길가메시나 오디세우스를 굳이 이야기할 생각도 없다. 문학의 영웅 중에 완벽하기만 한 인간은 몇이나 있었나. 내 기억에는 분명 없다. 혹여 완벽해 보이더라도 그건 그를 사랑하는 단 한 사람에 의한 완벽성이다. 그의 무력함이 사랑스러운 사람에 의한 완벽성이다. 그러하니 자신의 무력함을 사랑하는 사람, 타인의 무력성을 보호하는 사람만이 영웅의 인생을 산다고 믿는다. 

영웅의 인생이란, 자신에게 진실해지는 경험의 합이 아닐까. 자신의 밑바닥을 확인하고 우뚝 서 다시 걸어가는 인간, 또다시 먼지를 뒤집어쓰고 진흙을 묻히는 인간, 샘터에 이르러 무릎을 꿇고 손을 씻고 얼굴을 씻는 인간, 그 낮은 위치에서 진실을 비추어보는 낡아가는 인간이 영웅이다. 뉴턴 역시 그러하였고 윌리엄 블레이크 역시 그러하였다. 그리고 누군가는 각각 그들을 영웅이라고 불렀다. 
인간의 연약함은 분명, 사랑으로 수렴된다. 때때로 나 같은 냉혈한도 인간의 연약함에 사랑을 느낀다. 사람은 강인한 인간에게 기대고는 싶어도 강인한 인간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연약함만이 사랑을 끌어들인다. 길가메시가 영생을 찾아가게 된 계기도 사랑하는 친구 엔키두의 죽음이었지 않은가. 놀랍게도 연약함을 사랑하게 된 인간은 강인해지기로 결심한다. 일종의 영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행복의 관점에서 이 책을 다시 바라보면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이라는 제목도 뭐 그리 심오한 의미가 있을까. 결국 과학도 종래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일 테니. 크게 볼 때 (뇌)과학이란 ‘행복해지기 위한 뇌 사용법’ 같은 것이리라. 

행복은 어디 있나, 여러 번 생각해도 다를 것이 없다. 진심으로 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것이 행복이다. 진심으로 나를 나만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 행복이다. 그걸 거짓 없이 누리고 사는 것이 행복이다. 뜬금없이 워런 버핏의 성공론이 떠오른다. “하지만 내 나이가 되면 말입니다, 당신이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주면, 그게 성공입니다.”라고 말했던 바로 그 문장 말이다. 
그는 성공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성공’을 ‘행복’으로 바꾸어 읽어도 훌륭한 대답이 될 터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공이란 원하는 것을 많이 얻는 것, 행복이란 많이 얻기를 바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는 다른 하나를 반드시 포함한다고 느끼죠.(성공해야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의미.) 하지만 내 나이(82세)가 되면 말입니다, 당신이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주면, 그게 성공입니다. 당신은 세상의 모든 부를 다 얻을 수도 있고 당신 이름을 딴 빌딩들을 가질 수도 있겠죠. 그러나 사람들이 당신을 생각해주지 않으면 그건 성공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자녀들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그런 (주위)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한다면 나이가 든 후 오랫동안 당신은 성공한 겁니다.” (워런 버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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