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금방 능숙해지지 않는다 - 개인 맞춤형 그림 트레이닝북
나리토미 미오리 지음, 양필성 옮김 / 스몰빅아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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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가르치는 일을 이십 년 가까이 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림 그리는 데 short-cut은 없다는 걸 실감한다. 각자가 타고난 다른 감각의 발달과 반응 속도 문제를 기반으로 하여, 무엇보다 눈과 손의 협응력을 기르는 것이고, 눈-두뇌-손까지의 정확한 정보 처리 과정을 연마하는 길뿐이다. 그냥 즐겁게 많이 그리면 될 뿐 솔직히 굉장한 비법은 없다는 게 그림 가르쳐 먹고사는 사람의 고백이다.

『그림은 금방 능숙해지지 않는다』는 이런 내게 한 줄기 동아줄이라도 될까 하여 들춰본 책. “일본 아마존 예술 분야 1위”라고 하는데, 이 책 안에는 뭔가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방법론이 분명 있을 거라는 기대가 컸다. “미술은 과학이다”라는 내 교수 표어는 수와 양으로 구조화될 수 있는 형태와 빛의 양에 기반한다. 수학적 비례에 기반을 둔 원근법이나 평행하는 빛이 다른 각도로 명면에 닿는 명암법은 분명히 체계적 이해 방법이 있다. 물론 생물학 비례에 기반을 둔 해부학에서도. 그러나 이외의 부분, 형태력이나 구도력 같은 것은 타고난 감각과 이를 촉진하는 시간의 노력뿐이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그림은 금방 능숙해지지 않는다』에는 그런 내 기대를 충족할만한 방법론은 없었다.

다만 이 책에는 그림에 필요한 8가지 능력(아이디어, 독창성, 형태기억력, 구도구성력, 형태파악력, 입체파악력, 테크닉, 완성력)을 구조화하고 자신이 무엇에 특화되고 무엇에 부족한지 체크하게 한다. 한편 자신이 어느 작업형에 적절한지 고민하게 하고, 8능력 중 자신이 원하는 진로에 따라 계발해야 하는 능력을 권장한다. 즉, 미술 교사가 그림의 이론 설명을 하거나 학생의 진로 상담을 하기에 유용한 정보가 삽입된 책. 분명 새로운 접근이지만 미술과 가깝고 미술 관련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특별한 인식의 전환이 되거나 감동적인 작업 테크닉을 소개하는 책은 아니었다.

그래도, 절대 거짓말을 하는 책은 아니다. 허황되게 “이 책만 보면 잘 그리게 되는 책”이라고 하지 않고, “그림은 금방 능숙해지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 제목만큼은 진리 of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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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리하는 법 - 넘치는 책들로 골머리 앓는 당신을 위하여
조경국 지음 / 유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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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 출판사의 작은 책들은 아주 작은 주제로 딱 알맞은 만큼의 수다를 전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 정리하는 법』을 써내린 저자는 헌책방을 운영하는 조경국. 그는 나와 당신과 같은 간서치처럼 책 분리불안증을 앓고 처치 곤란 책의 성 가운데에서 활자 중독으로 침침한 눈을 비빈다. 당연히 자기의 보물 혹은 짐(?)이 되어버린 책들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고민했던 시간을, 꿈의 서재를, 그러다 헌책방을 꾸리게 된 사연을, 오랫동안 닦고 붙이고 싸매고 꿰맨 소중한 책들을 선보인다. 세상에 책 싸는 재료, 책 싸는 법, 책 닦는 오일 스프레이 사진까지 보여줄 정도니 말 다 했다.

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좀 바보스럽다. 세상천지 돈 안되는 거 책 같은 게 없는데, 책에 반해서 낡은 책들만 애지중지하다가 정신을 못 차리다가 세상의 ‘인싸’가 아니라 ‘아싸’로 내내 산다. 저자 역시 그런 사람. 늘 책 때문에 아내에게 가족에게 타박을 당하고, 돈 안 되는 헌책방을 운영하고, 관심 있는 건 남의 멋진 서재 정도뿐. 그러나 간서치만이 알 수 있는 서로의 끌림. 그것 때문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책 수다가 계속 책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특별히, 저자가 발췌해 적어둔 정수복의 파리 시절 서재 이야기가 눈부셨다. 몇 번을 읽어도 눈이 부시네. 아름다운 것은 눈에 담기만 해도 마음으로 읽기만 해도 사람을 적시는 것이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ㅁ 자 모양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 정원이 있었는데, 내 아담한 서재의 유리창을 통해 그 안마당이 보였고, 마당 너머로 다른 건물 정원의 나무가 보였으며, 건너편 건물 돌벽을 덮고 있는 담쟁이덩굴도 보였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리며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도 보였다. 햇빛이 드는 집을 찾기 어려운 파리의 주택 사정을 고려할 때, 그런 서재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내 인생의 행운 가운데 하나이다.”

정수복, 『책인시공』(문학동네, 2013)

한 시간 정도의 자투리가 나면 유유 출판사의 이북을 선택하곤 한다. 이 정도의 유쾌한 수다가 주는 기쁨은 딱 적당한 피로회복제다. 거기에 책을 놓은 수다라면 더할 나위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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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문학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 미술사 결정적 순간에서 창조의 비밀을 배우다
김태진 지음 / 카시오페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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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정, 나는 둘 중 어디에 치우쳐 있는지를 굳이 묻는다면 나는 감정 쪽이다. 물론 두 가지를 균형 맞추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어느 편을 드는지를 묻는다면 어쩔 수 없이 감정이다. 『아트인문학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의 저자 김태진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일 것. 굳이 ‘시대’와 ‘영혼’으로 미술을 풀어나가려다가 ‘영혼’에 방점을 두어 『아트인문학』을 썼으니.

그렇다고 『아트인문학』이 작가의 신성한 영혼과 작품의 위대함만을 서술한 작품은 아니다. 너무나 체계적으로 르네상스 이후 고전미술의 형성과 해체, 그리고 현대미술의 개화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의 흐름 가운데 열 가지의 관점 혹은 세계관, 즉 패러다임 전환 사건을 제시한다. 원근법, 해부학, 유화, 명암법, 알라 프리마, 색채학, 현대성, 표현, 추상, 착상의 열 번의 전복.

이 패러다임들이 바로 뼈대다. 튼튼한 구조 위에 착실히 얹힌 것은 개념들을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정보들. 어느 정도 미술사 지식을 쌓은 나이지만 『아트인문학』을 통해 수많은 빈틈을 확인했다. 고화질의 도판과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 그들의 깨알 같은 이야기들이 부족한 내 지식의 밀도를 채웠다. 게다가 툭하면 감탄할 수밖에 없는 저자의 유려한 글줄. 이건 지식이 아니라 영혼을 건드리는 글쓰기다. 한 노인을 그린 다음 페이지의 그림을 보자. 보는 이들을 몰입시키는 이 그림에서 우리는 렘브란트가 추구한 그림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그건 바로 ‘한 사람의 인생을 한순간에 담아내는 듯한’ 그림이다. 고요한 분위기로 화가를 바라보는 이 노인은 모자와 의상으로 보아 유대인이다. 그의 얼굴과 자세, 꼭 쥔 두 손을 보면서 우린 이 노인이 걸어온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져옴을 느낀다. 그는 아마도 올곧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시련에 아픔도 많이 겪었지만 자신이 믿는 바를 단단히 지켜온 자신감이 엿보인다. 렘브란트를 뛰어난 화가를 넘어선 위대한 화가로 만든 것이 바로 그의 이러한 후반기 작품들이다. 이들에서 렘브란트의 명암법은 스스로를 과시하지 않는다. 때론 숭고한, 때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인간 내면에 대한 통찰’을 드러내는 데 적절히 참여할 뿐이다. 이 그림에 이르고 보니 명암법이 이르러야 할 목적지가 어디였는지가 분명해졌다. 그 목적지는 강렬함이 아니라 깊이였던 것이다. 카라바조가 만들어낸 명암법이 이처럼 렘브란트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같은 글에서 느끼는 터치.

참 감성적이지만 참 이성적이다.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에 ‘믿고 거르려고’ 했던 내가 바보스러울 만큼 『아트인문학』은 좋은 책. 언젠가 나도, 공부가 쌓이고 능력이 자란다면, 이렇게 균형 잡힌 좋은 책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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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생각을 여는 철학자의 사고실험 - 살면서 누구나 생각해야 할 11가지 문제
이브 보사르트 지음, 이원석 옮김 / 북캠퍼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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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디자인은 영어로 Visual Communication Design이라고 하며 정보전달을 핵심 요소로 본다. 이는 참 우스운 일인데 아름다운 것과 정보전달이 일치되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 정보를 전달하려고 하면 이미지가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움의 선을 지키려면 정보를 제한해야 한다. 『세상과 생각을 여는 철학자의 사고실험』의 표지는 전자에 가깝다. 판독성이 좋지 않은 글자체에 번잡스럽기 그지없는 배경은 더욱 화면의 리듬을 까먹는다. 별로다, 그러나 확실하다. 철학의 흐름을 보기좋게 정리한 지도로서는 좋은 배경 일러스트레이션이다.

『세상과 생각을 여는 철학자의 사고실험』은 무엇보다 내용이 충실한 책이다. 보기 좋은 책이 읽기 좋으면 좋겠지만 세상 다 그렇듯 책도 그렇지 못하고, 보기 좋은 책이 내용까지 좋기 어렵기 쉬우며, 딱 보기 좋지 않은 책이 좋은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살면서 누구나 생각해야 할 11가지 문제”라는 부제가 알려주듯 행복, 인식, 도덕, 미와 예술, 자유, 법과 정의, 뇌와 정신, 신과 신앙, 논리와 언어, 공간과 시간, 자아라는 개념들을 생각 게임 안에 던져넣는다. 철학적 사고 유희 혹은 철학적 사고 실험이라고 하는 이 책의 생각 흐름은 탄력 있는 공의 움직임처럼 읽는이의 생각을 운동하게 한다. 책의 전반부에 있던 행복, 인식, 도덕, 미와 예술, 자유, 법과 정의는 내게 비교적 익숙한 생각들이었으나 뇌와 정신, 신과 신앙, 논리와 언어는 여전히 내게 힘겨운 생각들이었고, 새로이 파고든 공간과 시간 부분이 읽는 내내 즐거웠다. 마지막 자아의 생각유희(?)를 마친 나는 바로 첫 장으로 돌아가 다시금 ‘행복’을 찾을 수밖에. 꼬박 두 번 책을 넘기는 가운데 유연해지는 머리와 펄럭이는 뇌세포가 반가웠고, 수많은 학자들의 사고 실험들에 경의를 표했다. 역시, 안다는 건 생각한다는 건 펄럭인다는 건 좋은 거다.

자주 들춰보지 않는 철학책들을 가끔씩 붙들고 읽을 때 얻을 수 있는 고마움이 있다. 안 가본 길을 걸어가는 낯설음과 새로움, 또 다른 즐거움. 삶은 그 모든 불편함에도 걸어갈 만한 가치가 있다. 몇 년에 한 번씩 세 번을 읽어도 여전히 돌덩이같은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에 다시 밑줄을 그으며, 미워도 철학은 아름답다는 것을 확신하게 해 준 『세상과 생각을 여는 철학자의 사고실험』에 인사한다. 너, 정말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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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떠나는 서양 미술 기행 - 세계 최고 명화 컬렉션을 만나다
노유니아 지음 / 미래의창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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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여름, 나는 품 안에 두 개의 책을 끼고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Hello 유럽 미술관, 박물관』 1권과 2권은 30여일간의 여행길에 멘토와도 같았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가이드북 두 권은 한 장 두 장 넘길수록 마음에 불을 붙였다. “비행기를 타야겠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늘려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내가 열흘간 생식 두 개로 점심, 저녁을 때우며 유럽 미술관과 박물관 여행을 하게 된 것은 100% 저 미술관 책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일본 미술관 여행을 하게 된다면 바로 이 책, 『일본으로 떠나는 서양 미술 기행』 때문이리라. 인상파와 영향을 주고 받은 일본의 미술과 문화만 알던 내게, 그 나라에 가득한 서양 미술의 컬렉션을 차곡차곡 담은 이 책은 새로움 그 자체였다. 저자의 “부러움을 넘어 배가 아팠다”는 일본의 미술 문화에의 표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미술관과 주요 컬렉션을 골자로 하는 이 책에서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또한 모든 컬렉션에는 나름의 스토리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미술 역시 그렇다. 두 가지가 함께할 때의 이야기는 또 사뭇 다르다. 특히 이 이야기는 욕망이 선화한 이야기임에 더욱 그렇다. 그렇다, 이 욕망은 사랑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나 역시 삼성가의 리 컬렉션처럼. 언젠가 나만의 컬렉션을 욕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로스코의 시그램 벽화를 보러 나리타에, DIC 가와무라기념 미술관에 꼭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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