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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한 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
김혼비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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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우미양가(秀優美良可)’ 세대다. 나와 일 년이라도 학교를 같이 다녀 본 친구들은 안다. 대부분의 과목에서 수()나 우(優)를 받아내고야 말던 내가 체육만큼은 ‘양()’을 치게 될까 봐 벌벌 떨던 인간이었음을. 어쩌면 그렇게 운동신경이 없는지 체육시간마다 명실공히 학습 부진아로 활약했다. 아직도 배구공을 리시브하다가 엉뚱한 데를 조준해 누군가의 코피를 터트렸던 그날이 생생히다. 한편 성실하기는 무식하기 그지없어 끈덕지게 수업에 임하는 모습 때문에 체육 선생님은 늘 고심하셨다. 한숨을 푹 내쉬며 노력 점수를 주시던 그분들께 감사할 수밖에. 

자연스레 스포츠에 관심이 자랄 일도 없었다. 전설이라는 
2002년 월드컵 때도 아르바이트하느라 경기 한번 제대로 보지 못했고 당연히 응원을 나가본 적도 없다. 이건 진짜 심각하다.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빈혈을 핑계로 트레킹도 등산도 안 간다. 스포츠는 늘 나를 작아지게 한다. 

그런 내게 ‘우아하고 호쾌한’ 워딩이 매력적인 ‘여자’ 축구 책이란 신세계 중의 신세계였다. 게다가 내 정체성 같은 ‘우아한’ 책이라지 않나. 진짜 축구를 해보라는 것도 아닌데 뭐, 눈으로는 얼마든 도전할 수 있다. 눈을 확 집어당기는 (숨겨진) 여자들의 세계, 오스칼님 같은 멋진 여자들이 여기 다 모였다. 


생각해보니 ‘여자’와 ‘축구’의 조합은 낯설다. 왜 다른 운동보다 축구는 여자에게 위화감을 주는가. 몸싸움을 하는 격렬한 운동이어서? 사회가 정해둔 여성성과 거리가 멀어서? 남자들은 어린이 축구단이니 조기축구니 군대 축구니 뭘 해도 축구가 밀접한 운동인데 왜 여자에게는 축구가 신박한 운동일까. 주변에 축구를 하는 여자분도 계신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게 신기한 인물이었을 뿐,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이렇게 많은 여자분들이 전국 곳곳에서 열렬히 축구하며 뜨거운 김을 발산하는지도 몰랐다. 

스포츠는 뜨겁다,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데 이보다 더 정확한 척도가 있을까. 이기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라운드로 달려온다. 이 ()을 살고 싶어서, 이 생에서 한 번쯤은 더 이겨보고 싶어서. 그래서 사람들은 스포츠의 무대에 오르고, 기꺼이 하나가 되고 순간을 거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내가 잘 모르는 기쁨이다. 몸의 극한에서 겪는 희열이다.  

책을 권하는 데 다른 말이 뭐 필요하겠나, 재미있으면 되지. 뭐라 말하기 쑥스럽지만 나는 축구에 대해서 하나도 모른다. 정보 값이 거의 0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나인데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읽는 내내 풋! 빵! 킥! 이 돌아가면서 터져 나왔다. 진짜 오랜만이다. 의성어를 내면서 책을 읽은 건 말이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의 장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균형 잡힌 긴장감이다. 도입부의 초개인주의자 이야기, ‘유교 소녀’이야기부터 말미의 스포츠 일체감까지. 지루할 틈 없이 소소한 유머로 글을 끌어간다. 개인적으로는 축구에 인생을 걸겠다는 대단한 명분 없이 누구 따라서, 누구 땜빵으로, 누구 (헬스장) 캐스팅으로 축구를 시작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그야말로 인간적이고 또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 내게도 저자에게도 낯선 촘촘한 인간관계와 끈끈한 정이 이야기를 드러내고 엮어 보여준다. 이런 사연이야말로 우아하다. 

나는 꽤 
팍팍한 성정으로 매일을 산다. DNA 때문이다, 타고난 기질이 그렇다. 순간순간 심각하기 그지없다. 그런 험한 나날 가운데 몇 시간을 킬킬거릴 수 있다니 낯설면서도 즐거웠다. 다만 이 몸의 운동지식이 제로인 게 좀 아쉬웠을 뿐. 물론 저자가 에피소드마다 축구 용어를 잘 풀어 설명해 주었다지만 내 이해는 100퍼센트 상상일 뿐이다. 아무리 열심히 상상해도 축구를 몸과 마음으로 즐겨온 사람들과의 경험치에 댈 수 없다. 뜨거운 축구인에게 이 책은 또 어떤 즐거움일까. 어쨌든 대단하다. 운동신경 및 운동지식 제로의 내가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읽어버리게 한 저자의 글 솜씨라니. 이 능청스러움, 이게  바로 여자 축구인의 우아함이고 호쾌함이다. 언제나 여자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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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모자가 하고싶은 말 - 꽃 같은 말만 하라는 세상에 던지는 뱀 같은 말
조이스 박 지음 / 스마트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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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합니다. 현실은 가시투성이여서 사람은 늘 아프고, 아파서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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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로 세상을 다 가져라
김시현 지음 / 서래Books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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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습관적이고 기대 없는 독서만을 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어봐야 무엇이 바뀌겠나 일 때문에만 책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정말 뜨겁습니다
독서조언에 대한 책들, 미려구사의 책들은 많이 만났지만
저자의 직접 경험이 이렇게나 뜨겁고 우직하게 드러난 책은 너무나 오랜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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