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웅진 세계그림책 16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허은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못난 엄마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엄마>를 읽고 잠시 나를 돌아 보다-


우리 아들은 네 살이다.

밖에 장마 비 오는 소리를 음악 삼아 들으며 책을 보다가 옆에서 낮잠이 든 아들 녀석 얼굴을 본다. 정말 잘난 내 아들. 잠든 얼굴을 보고 개구쟁이 짓하던 추억을 떠올리며 웃고 있노라면 낮잠 자는 두 시간이 이십 분처럼 훌쩍 지나간다.

내 아들, 정말 잘 생겼다. 얼굴이 호빵처럼 동그랗고 볼에 살이 볼록하고 태어날 때부터 코가 오똑해서 신생아실에 아기 보러 나온 엄마들이 재 좀 보라며 너무 잘 생겼다하며 호들갑을 떨곤 했다. 눈이 왕방울에 속눈섭은 마스카라를 한 듯 길게 말려 있다. 조그맣고 사랑스런 입술은 또 어떻고. 돌 무렵 아장아장 걸으며 재롱을 피울 때 이놈을 데리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모두 아기가 예쁘다 하며 꼭 하는 말이 있었다.

“엄마가 아닌가 보네.”

어떤 사람들은 이모가 대리고 나왔냐고 하고 옆집 엄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우리 아들은 잘 생겼고, 나는 못생겼다는 소리다. 내심 섭섭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 아들이 잘났다는데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 나는 늘 살짝 웃으며

“우리 남편 닮았어요.”

했다. 그래도 명색이 엄마인데 이모나 옆집 아줌마로 불리는 건 싫어서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 같이

“남편분이 잘 생기셨나 보네. 아빠만 쏙 빼닮아서 섭섭하지 않으우?”

하고 묻는데 나는 그들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를 리 없다. 못생긴 여자가 운 좋게도 잘난 남편을 만났나 보네 하는 표정들이다.


내 인생에서 제일 성공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 이놈을 낳은 거라고 말할 것이다. 정말 못난 내가 이렇게 잘난 아들을 낳았고 이 잘난 아들 녀석은 지질이 못난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 사랑한다고 한다. 그저 엄마의 사랑을 더 받고 싶어서 이 더운 여름날에도 목을 감으며 착착 안겨 온다. 덥다고 뿌리치면 서럽게도 운다.

“처쭈니는 엄마 사랑하는데, 치! 치!”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게 참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격스럽다.

그러면 그동안 사랑을 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냐면 그건 아니다. 나름대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부모님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나는 늘 우리 집에서 키 작은 못난이로 불렸다. 전교 1등 하는 오빠들과 다르게 공부도 그다지 잘하지 못했고, 여덟 살 차이 나는 여동생과 늘 비교를 당했다. 동생은 키도 크고 예쁘고 공부도 잘했다. 한마디로 나는 엄마 아빠의 열성 유전자만 타고 나서 우리 집의 돌연변이처럼 여겨졌다. 그래도 속은 좋아서 강원도 묵호 굴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너의 엄마가 거기서 풀빵 장사 한다고 너의 엄마 찾아 가라고 그렇게 놀려 대도 나는 아니다, 아니다 내 눈 큰 거는 엄마 닮았다, 이마 넓은 거는 외할머니 닮고, 콧대 없는 거는 아빠 닮았다 하며 엄마가 아니라고 하는 엄마 품을 한사코 기어 들어가 안기곤 했다. 그렇게 놀려 댄 후 품을 파고드는 딸자식을 안아주는 것으로 부모의 사랑을 표현해 주신 거다. 그리고 나의 십대에는 내 이름이 없었다. 오빠들이 하도 공부도 잘하고 늠름해서 동네 사람들은 물론 학교 선생님들에게 나는 늘 누구집 딸, 누구 동생으로 불려졌다.


정말 못난 존재, 이름 없는 존재로 자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존재가 생겼으니, 바로 내 남편과 내 아들이다. 한때는 남편과 결혼해서 아줌마의 삶으로 전락하는 내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지만 아들 녀석이 자라면 자랄수록 나는 결혼하길 정말 잘했다, 아줌마가 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요놈이 나에게 슈퍼맨 엄마라고 불렀다. 잠자리에 누워서 내 얼굴을 다정스럽게도 만지며

“슈퍼맨 엄마, 우리 엄마!”

하고는 생글 생글 웃는 것이다.

허은미 선생님이 옮긴 앤서니 브라운의 책 <우리 엄마>를 읽은 덕인지, 탓인지…….

나는 정말이지 이 책에 나오는 슈퍼 엄마가 아니다. 요리도 그다지 잘 하지 못하고, 놀라운 재주꾼 엄마처럼 뭘 잘 만들어 내지도 못하고, 돈이 많지 않아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사주지도 못한다. 화장도 훌륭한 화가처럼 잘 하지 못할뿐더러 화장하는 날이 일 년에 몇 번 없을 정도이다. 힘도 약해서 무거운 것도 잘 못 들어서 일하는 남편에게 마트로 오라고 전화 한 적도 있다. 마법의 정원사는 절대 되지 못한다. 우리 집에 그나마 선물로 들어오는 화초는 일주일 이상 살아남은 적이 없다. 아이가 슬플 때 기쁘게 할 수 있는 착한 요정은 정말 아니다. 아이가 울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빨리 그치라고 소리를 버럭 질러 더욱 아이를 슬프게 만든다. 천사처럼 노래하기는커녕 제일로 가기 싫은 곳이 노래방이다. 차라리 몸 흔드는 나이트클럽이 낫다. 어릴 때부터 못난이로 불린 나는 나비처럼 아름답다는 소리는 죽을 때까지 못들을 것이다. 그렇다고 엄마가 되지 않았으면 무용가나 시장은 결코 될 수 없었다.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긴 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아 교대나 사범대 근처에도 못 갔다. 뭐, 교직 이수 과목을 들으면 가능했지만 내가 다닌 학교는 교직 이수과목도 없었다. 뭐, 결혼을 안했으면 지금쯤 평범한 회사원이었겠지? 평범한 회사원이 되는 것 보단 엄마가 된 것이 훨씬 다행이라고 생각 한다. 적성에도 맞지 않은 회사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지긋지긋해서 그 돌파구로 결혼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훌륭한 엄마, 그러니까 슈퍼 엄마도 아니고 훌륭한 직업인도 아니고 나는 도대체 무얼까?

훌륭한 엄마, 슈퍼 엄마는 아니지만 나는 엄마이긴 하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지만 나의 아들과 남편의 사랑을 받는 엄마, 주부이다.

우리 아들이 결코 슈퍼 엄마가 될 수 없는 나의 실체를 안다면 어떨까? 그래도 지금처럼 사랑한다고 말할까? 슈퍼 엄마가 아닌 나를 싫다고 하는 아들 모습을 상상하면 정말 울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것만 같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하면 우리 아들은 그래도 나를 사랑해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천상에 여린 여자인 우리 엄마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더 바란다면 슈퍼엄마가 아닌 나의 실체가 밝혀져서 온전한 나의 모습으로 사랑받을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지금은 본의 아니게 이 동화책으로 인하여 슈퍼 엄마의 가면을 쓰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 나오는 슈퍼엄마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해보면 어떠냐고 충고해주는 이가 있다면, 아니 아니다. 나는 그 가면을 벗어서 내 눈에 띄지 않게 멀리 멀리 던지고 싶다. 슈퍼 엄마의 가면보다 그래도 내 얼굴이 훨씬 예쁠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때로는 아이 같이 어리광을 부리는 내 모습을 매력으로 아는 것처럼 사랑하는 나의 자식들도 못난 엄마의 숨은 매력을 찾아낼 것이라 또 한 번 확신한다.

이 땅에 사는 슈퍼 엄마 아닌 못난 엄마들, 모두 파이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