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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빛 ㅣ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가끔 읽는 일본소설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가슴 답답함을 안겨주곤 한다. 인간이란 얼마나 어둡고 음울한 존재인지 담담하게 묘사한다. 한 문장씩 읽으면서 나는 아니다, 이렇지 않다 라고 애써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나의 내면. 애써 외면하려 하는 나에게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냉소적으로 묻는다. "당신도 똑같지 않은가." 세상은 아직 살아갈만 하다고 외치는 무리에게 외면하지 말라고 소리지르는 것 같다. 가끔 무섭도록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는 일본소설은 그런 느낌을 준다. '현재 일본에서 인간을 묘사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작가' 라는 미우라 시온의 <검은빛> 을 만났다. 표지에서부터 이 소설은 심상치 않겠구나 싶었다.
흔히들 폭력은 반복된다고 한다. 폭력 문제의 심각성은 그 반복에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 폭행을 당한 적 있는 아이가 자라서 자신의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그렇게 폭력은 세대를 초월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 폭력의 시작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가. <검은빛> 에선 폭력의 시작을 '자연' 으로 바라본다. 대항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폭력에 무너진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기 위해서 인간의 폭력이 시작된 것이다. <검은빛> 속엔 다양한 폭력이 나타난다. 아동학대, 가정폭력을 비롯해 살인에 이르기까지. 평화로운 섬 미하마에서 일어난 거대한 '쓰나미' 라는 폭력은 소설 속 인물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쓰나미 이후 섬에서 살아남은 세명의 아이 다스쿠, 노부유키, 미카.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며 노부유키에게 집착하는 다스쿠, 미카를 사랑한 기억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흉내를 내는 노부유키,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노부유키를 이용하는 미카. 각자 같은 폭력을 당하고 서로 다른 생을 살아가지만 결국 서로가 각자의 인생을 살기 위해 서로 상처를 주는 행위가 반복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그 누군가를 위해 살인을 하고 자신의 죽음으로 다른이에게 삶의 굴레를 덧씌운다. <검은빛> 은 그렇게 안쓰럽고 슬픈 인물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차갑도록 담담한 문체로.
<검은빛> 은 서두의 어린시절 이야기 이후 한명, 한명의 인물을 차갑게 관찰하며 사건을 전개한다. 하나의 사건 속에 모든 인물이 포함되어 있지만 사건을 다양한 시선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독자에게 배려아닌 배려를 한다. 냉정한 문체는 독자에게 상상력을 더욱 넓혀주는 계기가 된다.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 이라는 소설로 따뜻한 사람이야기를 했다던 작가는 <검은빛> 으로 독자의 뒤통수를 칠줄 아는 매력있는 작가다. 작가가 보는 사람에 대한 시선. 더욱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