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닌자걸스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7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9년 6월
평점 :
성장소설을 읽으면 그 시절 생각만 많았던 내가 생각난다. 그때 내가 했던 생각중 가장 확고했던 것은 '지금 읽은 책을 꼭 스무살 넘어서 한번 더 읽어볼꺼야.' 였다. 가끔 그 시절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곤 하지만 '지금 나오는 책들도 많은데 어떻게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찾아' 하면서 옛날의 나와의 약속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마음껏 책을 읽으려고 들어간 곳이 도서부였다. 신설 학교 답게 도서실은 깨끗했고 문학 선생님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위주로 책을 주문해주셨다.
학교는 컸고 사람은 적었다. 남는 교실이 많았기에 우린 자유롭게 지냈다. 우리 후배가 들어오기 전까진. 커다란 학교에 1,2,3학년이 다들 모여있으니 좁아졌다. 가장 넓었던 4층 도서실은 1층으로 옮겨졌다. 대신 4층엔 SKY반이 만들어졌다. 독서실 책상이 들어섰고 나는 그 해 수시합격되어 따로 학교에서 격리될 때까지-아이들 공부에 방해 된다는 이유로 수시 합격한 아이들은 SKY반에 격리되었다-옛날 나의 도서실이었던 SKY반에 들어가보지 못했다.
책 이외에는 별 생각이 없었던 나로선-학교 선생님들 조차 대학 도서관은 시립도서관의 5배는 크다는 이유를 들어 나를 대학에 보내려 했었다.-공부잘하는 아이들이 모여있다는 SKY반엔 별 관심이 없었다. 그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우쭐함에 주변 친구들이 싫은 소리 해도 그런가 보다 했었다. 생각해보니 난 조금 무심한 아이였나보다.
'닌자 걸스' 를 읽었다. 다행스럽게(?) 나와 똑같은 아이는 없었다. 그런데 닌자 걸스 속 고등학교 모습은 졸업한지 4년이 지나가는 나의 고등학교와 판박이 처럼 닮아있다. 무조건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인식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어른들 몰래 키워가고 있었다. 우리는 하고 싶은 것들이 이렇게 확고한데 어른들은 왜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하는 걸까. 이해할 수 없다. 우리의 꿈과 공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은데. 맙소사. 이 아이들과 그때 우리의 고민또한 판박이처럼 닮아있지 않은가.
학교에 존재하는 수많은 교칙들과 학교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숫자라는 점수의 나의 능력치. 이 모든 것에 아이들은 고민한다. 조금이라도 성적이 떨어지거나 심화반인 모란반에서 잘리면 어쩌지. 그래도 나의 꿈을 위해 많은 기회를 잡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선생님께 엄마에게 걸리지 않을까. 자식이 전부인 엄마와 그 기대를 저버릴까 두려운 아이들. 아이들의 고민은 현실적이고 안쓰럽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 0교시에 나는 무기력하게 책상에 앉아서 묵묵히 받아들였다. 닌자걸스의 발칙한 네 명의 소녀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심화반인 모란반 폐지를 위해 나와는 다르게 작전을 짜고 행동으로 옮긴다. 스스로의 꿈을 인정받고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소녀들의 소동은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었다
<닌자걸스> 는 지금 이 시대의 여고생을 말해주고 있다. 조금은 가볍게 보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충분한 생각을 하고 있다.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꿈을 명확히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예쁘다. 그 꿈을 위해 거침없이 앞을 나아가려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아주 조금 극단적인 방법으로 어른들을 설득하려 하지만 그 나이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더없이 사랑스럽기도 하다.
점점 더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약해지는 내 모습에 네 명의 소녀들은 다시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라며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언니도 우리처럼 꿈이 있었잖아. 그럼 앞을 나아가라구. 우리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이 왜 그러니? 귓가에서 속삭이고 있는 것 같다. 그래. 알았다 이 가시나들아. 그럼 우선 옛날에 나와 했던 약속들 부터 지키면 되는거냐 하며 책을 덮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