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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꽃
이인화 지음 / 동방미디어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하늘꽃. 언뜻 생각해보면 아무렇지 않게 보고 지나갈만한 제목이지만 보면 볼수록 역설적인 제목에서 풍겨 나오는 신비감은 나에게 더 없는 호기심을 느끼게 해주었고 이는 소설의 재미를 한층 더해주었습니다. 하늘의 꽃은 하늘이 있기에 존재하듯이 부처님의 법은 중생의 마음이라는 불이를 평생 수행으로도 깨닫지 못하고 떠난 단도 스님. 그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인 하늘 꽃이 다른 4가지 소설보다 더 크게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하늘 꽃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에서 나얀과 쏠마의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고 끝을 맺습니다. 언제나 쏠마만을 그리워하다 함정에 빠지고 결국 스님으로까지 전락하게 된 나얀. 가족들과의 다툼으로 부부의 연까지 끊고 달아나 나얀을 버린 여인 쏠마. 정말 그녀의 사랑은 나얀, 단지 그 자신이 아니라 감찰관으로서의 나얀에게 있었던 것일까요? 나는 이점에서 오히려 작가의 시대적 현실성에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신라의 침입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수치스러운 삶을 살게 하느니 먼저 자신의 손으로 가족들을 죽이고 전장에 나간 계백장군의 일화에서 생각해 볼 수 있듯이 그때의 시대적 상황은 그 무엇보다 도와 의가 중시되는 시대였습니다. 가냘프지만 카란의 여장부였던 쏠마는 사랑의 감정보다 도와 의를 먼저 지킨 것이고 이는 아직 단순한 아가페적 사랑이야기만 보고 들어온 우리에게는 조금 거리가 있는 사랑이야기일지 모릅니다. 오히려 쏠마의 입장에서는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한다면 피붙이인 자신과 형제들을 떼어 놓는 것보다 나얀이 예전 병사들의 복수를 잊어버리고 쏠마의 형제들과 잘 지내는 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엇갈린 두 사람의 생각은 오해가 되었고 권력과 세상사의 허무함을 느낀 나얀의 모습으로 인해 감정적으로 고통 받는 인간의 약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배경을 살펴보면 이 소설의 주된 무대는 몽골입니다. 우리나라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지만 넓은 광야에 사는 기마민족이라는 것 정도 밖에는 모르는 신비로운 나라 몽골. 과연 단지 역사적 사실을 소설의 근간으로 하기 위해 몽골이라는 나라를 선택하게 된 것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몽골이라는 나라는 작가가 허구적 상상을 펼치기 위해 선택한 무대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사실을 통해 현실적인 느낌까지 주는 나라입니다. 즉 구체적인 나라, 특히 가까운 나라의 무대설정을 통해 현실적인 느낌을 얻게 하고 그에 반해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로운 이미지로 작가의 상상력을 무한히 펼칠 수 있는 공간인 것입니다.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현실적인 허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상황설정이 더 큰 가슴의 울림으로 감동이 남아있게 되는 이유인 듯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점이 슬픔과 허무 그리고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조함보다는 비록 단편이지만 한편의 영화를 보고 난 듯한 떨림이 책을 읽고 나서도 남아 있는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