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제목에 끌려 책을 사는 경우에 종종 실망스러운 경우가 있는데 이책은 다행히 그 예상을 벗어 났습니다. 이 책의 첫인상은 '성리학의 이기철학을 편지형태로 쉽게 풀어쓰겠다'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 이미지가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현대에서 유학이니 유교니 하면 고리타분하거나 조선의 근대화를 저하한 요소로서 오늘날에는 극복되어야 하는 잔재로 생각하는 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반드시 읽는 동안 진정한 실천 유학자의 면모를 엿볼수 있을 것입니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라는 금언은 누구나 한번은 들어 봄직합니다. 그렇습니다. 유교의 가장 핵심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예를 아래사람이 윗사람에게 갖추어야만하는 덕목으로만 강조되었고 그런 왜곡된 형태로 조선후기로부터 지금까지 기득권층이나 권력자들에 의해 애용되어 왔습니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군주는 백성에게, 사장은 사원에게 이 예를 통해 착취를 합리화하였습니다. 과연 예가 윗사람은 자기멋대로하면서 아랫사람을 착취하라는 의미인가 결코 아닙니다. 진정한 예는 윗사람은 아랫사람은 존중하며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자신의 할 도리는 몰각한 채 예를 곡해하여 자신의 유교적 약속을 저버리면서 아랫사람에게 복종만을 강요하는 자는 절대 아랫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실천유학자인 이황은 고봉과 서신왕래를 시작할 때 이미 조선의 유일한 국립대학 총장격인 대사헌을 지낸 학자로 널리 인정을 받고 있었으나 고봉은 이제 벼슬길에 나선 그야말로 신출내기 관리였습니다. 그렇지만 이황이 고봉을 대하는 태도는 한없이 예스럽습니다. 유학은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17세기 이전만하더라도 우리의 정신은 불교가, 사회전반은 유교가 지배하는 이원적 체제였으며 이런 불합리는 17세기에서야 성리학자들에 의해 비로소 극복되었습니다. 그 성리학자중 대표 주자는 단연 이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학은 공자가 창시하여 맹자, 남송의 주자, 왕양명등을 거쳤으나 모두 공자보다 한수 아래였고 그 성질 또한 더욱 더 형편없어져서 창시자를 능가하는 인물이 없었다고 회자되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의시각입니다. 이황이 조선에 태어나서 올바른 평가를 못 받고 있는 면이 있습니다. 만약 중국은 아니더라도 일본에서만 태어났더라면 그의 사상은 세계적으로 인정되어 공자를 능가하는 인물로 평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끝으로 이책에 쓰인 단어나 문장이 매우 수준있고 격이 높아 암기해 두었다가 대화중이나 편지에 인용한다면 한층 높은 언어생활을 누릴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