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개인주의자 선언』이 먼저였는지,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 칼럼이 먼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어쨋든 그 둘을 읽어본 독자로서 신간이 나왔다길래 바로 샀던 터였다. 그리고 기대에 차서 읽고 있는데 미안하게도 최대한 깨끗하게 읽어 중고서점에 팔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짜사이가 맛있지 않았다. 적당히 흘리면서 읽다가 덮어두었다.

두달 뒤, 가벼운 책이 읽고 싶어 다시 집어들었다. 다양한 책의 나열, 내겐 취미가 없는 팝송 부분을 지나 눈이 떠진 건, [시드니 셀던을 기억하시나요] 세상에, 이 아저씨 진짜였어!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지 않나. 어느정도 수준이 아닌, 서울대 법대, 서울대 의대를 거쳐 전문직이 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얘기하는 책이며 취향 어쩌고 하는 얘기는 소재의 한계가 있을거라고 혼자 생각했었다. 그 편견이 처음 깨진 건, 정신과 의사 하지현의 책을 읽으면서였는데 이 아저씨도 그 부류다. 공부 잘하면서도 이것저것 보고 즐기는 부류. 그 범위가 직업과 상관없이 매우 광범위하면서도,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도. 69년생 아저씨가 학창시절엔 유리가면을 좋아했고 지금은 마스다 미리도 읽어? 세상에 이런 어른도 있구나.

앞부분에서 내가 시큰둥했던 건 초중고를 지나 자신을 스쳐갔던 책, 음악 등의 썰을 푸는 톤이 너무 가벼웠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하듯 '온라인에서 휘리릭 일기 쓰듯' 쓰는 톤이었기 때문에. 내가 기대한 건 전작과 비슷한 정도의 적당히 시니컬하면서 진중한 톤이었기에.

그래서 몰입이 덜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중반 이후부터 내가 아는 책들도 나오고, 얘기에도 공감하게 되면서 깨끗하게 읽어 중고서점에 팔고 싶은 마음을 철회하고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간혹 책 읽는 거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이들에게 조금 구체적으로 물어봤을 때 실제로 어느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하게 많이 읽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진짜 책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책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어떤 썰을 풀어주는지 궁금하다면 읽어보시라. 책이 인생을 바꾼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자기계발서류의 사람이 아니다. 이 사람은 진짜 자기가 좋아서 읽은 걸 얘기한다. 당연한건데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책은 재미로 보는거다.



세상에는 뻔히 보이는데 피할 수 없는 펀치도 있는 법이다. 인간이란 판단력이 없어서 결혼을 하고, 인내력이 없어서 이혼을 하며, 기억력이 없어서 재혼을 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래서 또 책의 프롤로그를 쓰기 시작한다. - P10

내가 찾은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 방법은 단순하다. 일단 읽어보는 거다. 물론 일부분만 맛보기로. 한30페이지 정도 읽어봐서 재미있으면 사서 읽곤 한다. 가끔 실패할 때도 있지만 그 정도 읽어서 읽을 만했던 책은 마저 읽어도 후회 없는 편이다. 짜사이가 맛있는 중식당은 음식도 맛있더라. 예외 없이, 신기하게도.

내 취향의 글이란 뭘까 생각해봤다.

· 어깨에 힘 빼고 느긋하게 쓴 글
· 하지만 한 문단에 적어도 한 가지 악센트는 있는 글
· 너무 열심히 쓰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잘 쓴 글
· 갯과보다는 고양잇과의 글
· 시큰둥한 글
· 천연덕스러운 깨알 개그로 킥킥대게 만드는 글
· 이쁘게 쓰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촌스럽지도 않은 글
· 간결하고 솔직하고 위트 있고 지적이되 과시적이지 않으며 적당히 시니컬한 글
- P52

평생 책을 즐겨 읽었지만 자기가 쓴 책을 읽는 느낌은 뭔가 다르다. 그건 두세 살짜리 아이가 방금 싼 큼지막한 자기 똥 한 덩어리를 내려다보며 뿌듯해하는 마음에 가깝다. 엄마! 나 고구마 똥 쌌어! 엄청 커! - P178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의감이 아니다. 오류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다. 자신이 틀릴 가증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의감이야말로 가장 냉혹한 범죄자일 수 있다.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에 불타는 수사관과 법조인들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상범을 만들었는지 생각해보라. 자신이 믿는 정의 때문에 분노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들은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나는 내가 틀렸을 가능성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또는 틀렸어도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분노하고 있는 대상보다 더 위험한 존재다. - P219

미래를 바꾸는 방법은 현재의 사회부터 바꾸는 것이다. 미래의 사회가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쓸모‘가 없어진 인간을 어떻게 대우할지 궁금하면 지금 이 사회가 탑골 공원에 앉아 있는 노인과 편의점 알바 청년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보면 된다. 미래의 눈부신 과학 발전이 낳을 부가 어떤 방식으로 분배될지 궁금하면 지금 사회의 분배 구조를 보면 된다. 더 먼 미래에 인공지능 또는 그와 결합한 신인류가 평범한 인간들을 어떻게 취급할지 궁금하면 지금 사회가 소수자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보면 된다. 미래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 여기서 인간을 어떻게 대우하는지에 따라. - P2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고 나면, 나도 당장 걷고 싶어진다.
훌륭한 예술은 건강한 생활에서 나온다는 그의 예술론은, 규칙적으로 글을 쓰지 않을 때는 달리기를 하는 하루키와 김연수작가를 생각나게 한다.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그랬다고 말할 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드리뷰 잘못 만들어놨다. 저 완벽한 유모가 대체 왜 그런짓을 했는지도 주요한 서스펜스인데. 워킹맘의 비애를 다룬 작품인가 생각하고 읽었다가 스릴러여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면서 읽었다. 다 읽고 다시 충격적인 앞부분을 읽으면 더욱 소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실한 이의 세밀한 로맨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보통 제목이 이렇게 강렬하면 낚시용이어서 내용은 예상보다 약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목차는 더더욱 무시무시해서 이런 걸 들고 다니며 읽다가 누군가 들춰보기라도 한다면 다소 민망한 나머지 묻기도 전에 먼저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게 될지도 모르겠다. 근데 만약 상대가 친한 친구라면? "야, 이거 읽어봐. 진짜웃겨." 라고 권할 듯.

 목차의 제목과 소제목이 기가 막히다. 한문장 한문장이 압권이라서 전부 옮겨오고 싶을 정도다. 강한것 몇 개만 데려와보면,


부모란 작자들은 한심하다

태어나보니 지옥 아닌가

별 생각 없이 당신을 낳았다

노후를 위해 당신을 낳은 거다


부모를 버려라

밤 산책하듯 가출해라


국가는 당신을 모른다

바보 같은 국민은 단죄해야 한다


직장은 사육장이다

자유를 방기한 사람은 산송장이다


종교단체는 불한당들의 소굴이다

사람다워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종교다


알아서 기니 그 따위로 살다 죽는 것이다


연애는 성욕을 포장한 것일 뿐이다


생각 좀 하고 살아라

국가는 골 빈 국민을 좋아한다


동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죽어라


몇 개만 데려오려 했는데 인상깊은 구절이 너무 많아서 1/3정도 데려왔다. 그렇다고 나머지 2/3의 강도가 약한 것도 아니다. 소제목이 이정도면 이를 아우르는 큰 제목은 어떨까?


부모를 버려라, 그래야 어른이다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나


아직도 모르겠나, 직장인은 노예다


신 따위, 개나 줘라


언제까지 멍청하게 앉아만 있을 건가


애절한 사랑 따위, 같잖다



에이, 제목만 이렇게 자극적이고 내용은 좀 더 돌려서 말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그것도 전혀 아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직설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촉구한다. "제발 생각 좀 하고 살으라"고. 왜 그렇게 산 송장 같은 삶을 살고 있느냐고.

 책의 마지막 장에는 이 구절이 적혀 있다. 



너를 키우는 자가 너를 파멸시키리니.



이게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 그러니 경각심을 가지고 벗어나서 제발, 스스로 생각 좀 하라고!!!
 이런 점에서 나는 니체에 대한 글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걸 좀 극단적으로 말하는 느낌?

 저자는 '너를 키우는 자'를 모두 깐다(비판과는 다른 느낌이고 그렇다고 근거없는 비난이나 막말도 아니라서 '깐다'라고 적는다. 다른 말을 못 찾겠다). 직접적으로 나를 키우는 부모가 그래서 제일 첫타자가 되고, 그 다음은 국가, 직장, 종교(신), 사랑, 삶과 죽음까지 모두 깐다. 이런 '너를 키우는 자'만 까임의 대상일까? 아니, '너'도 포함이다.

 서로 상호작용하는 관계에서 어느 한 쪽만의 일방적인 잘못은 없다. 일이 이지경까지 흘러가게 된 데에는 지분율의 차이일 뿐 다들 어느정도 일조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자식이 떠나지 못하게 하는 부모의 잘못이 있으면 동시에 그걸 뿌리치지 못하는 자식의 잘못도 있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것이 아니고 소수의 '그냥 인간' 손에 의해 흘러갈 때, 왜 가만히 있는가. 멍청하게 있는 국민의 잘못도 있는 것이다. 역경을 구원해줄 대상을 찾으면서 왜 스스로 역경을 극복하려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종교집단에 속아 넘어가도 할 말이 없다는 식이다.

 이 책을 읽고 불쾌해질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오히려 유쾌해졌다. 점잖은 어른이 있는 한편 과격한 어른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책이라는 매체에서 점잖은, 정갈한, 돌려말하는 아저씨만 만나다가 가끔은 이런 점잖빼는 것 없이 직설적이고 노골적으로 자신의 인생관을 말해주는 아저씨도 재미있지 않은가(그런 면에서 나는 마광수 작가의 에세이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재미나게 읽었다. 초월번역일 것 같은 제목은 의외로 직역에 가깝다. 일본어 제목을 그대로 한국어로 옮겨왔듯, 책에서 말하는 것들은 그대로 한국에도 적용 가능하다. 항시 느끼지만 정말 너무나도 사회가 흡사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무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