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 용접공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제프 르미어 지음, 박중서 옮김 / 미메시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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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제목인 '수중용접공'은 주인공의 직업이다. 그는 하고많은 직업 중 왜 수중용접공을 하게 되었을까. 그 '왜'에 관련한 이야기다. 왜 그는 물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었는지. 


  아내와 곧 태어날 아기가 있는 가장으로서 수행하는 그의 일은 본인만 좋아하는 일이다. 임신한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바로 달려갈 수도 없고, 사고가 발생하면 다신 못 볼 수도 없는 위험한 일. 아내가 탐탁치 않아 하는데도 왜 그는 바닷속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가.  


 책은 친절하게 전말을 알려주지 않고, 변칙적으로 알려준다. 꿈인지 생시인지 현실인지 환각인지 제정신인지 잠수병때문인건지 알 수 없게끔. 불쑥불쑥 떠오르는 회상과 중첩되는 현실에 정신을 못차리는 주인공처럼 독자도 정신을 차릴 수 없게끔. 


 시작하면서 TV시리즈 <환상특급>을 얘기하는데(이를 모르는 세대라면, <서프라이즈>정도를 생각하면 될 듯) 딱 그 느낌과 스토리로 흘러간다. 이런 모호하고 뭔가 무서운 분위기를 주는 데에는 그림체가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막 그린 듯한 거친 선과 대충 음영만 넣은 듯한 꼼꼼하지 않은 채색. 거기다 나오는 인물들은 남녀구별이 힘들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느낌이고, 하나같이 눈에 초점이 이상하다. 눈을 그려놓고 눈동자는 성의없게 되는대로 찍은 것 같은 느낌. 약간 사시인 듯 어딜 바라보는지 모르겠는 눈동자는 어디부터가 진짜고 어디부터가 환상인건지 모르겠는 내용과 어우러진다. 

 대체 그는 물 밖에 소중한 사람들을 두고 왜 물 속에 집착하는가.



(※ 직접적으로 얘기하진 않지만 약간 스포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처음엔 그 자신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지만 실상은 짓지 못한 매듭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확인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일은 시간이 저절로 해결해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떤 일은 절대로 시간이 '저절로' 해결해 줄 수 없다. 시간이 해결해 주려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반드시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선행되어야 할 것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았던 사람의 삶의 균열을 보여준다. 도저히 안되겠을 지경까지 다다른 뒤에야 직면하려고 (처자식보다도 우선하면서) 다시 '제대로' 되돌아가는 이야기이다.  

 그 과정을 간단히 말하면, 트라우마 극복기라고도 볼 수 있다. 오랜시간 과거에 사로잡혀'만' 있다가 뒤늦게서야 직면하고자 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 그래서였구나.' 그리고 동시에 '내가 지금 소중한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한거지?' 이제 나아갈 차례다. '이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매듭을 만들러 가야해.' 

 흔히 이제는 '앞을 봐야 할 때'라고 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도 비슷한 말로 쓰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전에 충분히 바라봤는가. 혹은 충분히 괴로워했는가. 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힘들기 때문에 어물쩡 회피해버리진 않았는가. 공부에 때가 있는 것처럼 괴로움에도 때가 있다. 그 때를 놓치면 힘든 시기는 더욱 길고 복합적으로 따라온다.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 한번은 마주해야 한다면 지금 마주할 것인가, 아니면 나중에 더욱 많은 것과 얽혀있는 것을 마주할 것인가. 이 책의 주인공은 운이 좋아 뒤늦게라도 마주할 수 있었지만 대개는 절실히 원한다해도 그런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경우 극복은 더 어렵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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