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연출의 사회학 -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
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 현암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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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에 책 포스팅이 많아서인지, 간혹 메일로 서평 의뢰가 들어온다. 그런 메일은 갑작스럽기도 하거니와 내 흥미와는 다른 책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수락했던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안 그래도 읽고 싶었던 책이어서 염치불구하고 냉큼 수락했다.

 책을 받고는 신이 나서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바로 당혹감이 밀려왔다. 나름대로 심리학을 필두로 한 인문학 계통의 책을 어느정도 읽어서 내공이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껏 읽었던 책은 상당히 쉽게 쓰여진 대중 교양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부 읽는 데 시간이 엄청 걸렸다. 만약 '이 책을 다 읽고 서평을 써야해!' 하는 의무감이 없이, 그냥 평소처럼 가볍게 집어들었다면 분명 가볍게 도로 내려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익숙치 않았기 때문이었고, 초반 설명하는 설정과 용어를 이해하고, 전공도서같은 말투가 익숙해지고 나니 엄청 재밌어졌다. 오히려 상황자체는 희극인데 그걸 설명하는 저자의 진지함이 역설적으로 엄청 웃길 때가 있다. 

 '삶이라는 연극'이란 말은 너무나도 진부해서 새삼스레 쓰기도 민망하다. 그럼에도 그 연극의 무대가 어떻게 꾸며지고, 어떻게 연출되며, 관객은 어떻게 달라지고, 그에 따라 연기자는 연기를 어떻게 달리하는지, 나와 같이 이 연극을 꾸려나가는 동료 연기자와의 상호작용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막상 상황이 닥치면 그런 복잡하고 미묘한 신경전과 행동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얘기들은 사실 다 알고 있고 나도 해왔던 것들이다. 모르는 내용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의식적으로 행했던, 혹은 의식적으로 행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고 암묵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라 굳이 설명 할 필요가 없던 사회적 행동에 대한 설명을 듣게된다. 그렇기에 읽으면서 민망하면서 웃기기도 하다. 나의 연기도 다들 알고 있었겠구나. 그리고 다들 그렇게 하고 있고, 그렇기에 알면서도 다들 봐주고 있는 거구나.

 이 책을 읽는데 오래 걸린 또 다른 이유는, 내 경우를 떠올리며 읽게 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낯가림이 심하고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자신을 정의해왔다. 그렇기에 20살 전까지는 낯선 곳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일도 매우 드물었고 필요한 경우라도 말을 못해서 우물쭈물하기 일쑤여서 부모님은 그런 나의 모습밖에 몰랐다. 그런데 막상 혼자 떨어뜨려 놓으면, 적응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말도 잘 걸고 처음 본 사람과도 금방 친해진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어느 쪽이 진짜 나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본디 내성적이지만 필요에 따라 용기를 내어 활발함을 연기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런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나의 옛날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 활발함 연기가 잘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책에서는 이런 걸 배역의 연기가 달라져 공연자의 몰입도가 떨어졌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공연자는 '관객분리'를 해서 극의 통제력을 되찾는다고. 나한테는 그 '관객분리'라는 말이 아주 명쾌하게 와닿았다. (물론 책의 예시는 나와 다르지만서도) 

 이 외에도 너무나 와 닿아서 웃긴 예시들이 많다. 특히 정부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가난해보이려 '빈곤쇼'를 벌인다는 얘기와, 계층별로 달라지는 연출, 전문직들이 '전문적으로 보이려' 꾸미는 무대, 팀 동료들과 암묵적으로, 순식간에 행해지는 상호작용 등 사회인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얘기들이 진지하게 적혀있다. 직업인의 고충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들의 프로의식에 대해서도 다 풀어헤쳐 설명한다. 유머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학문적인 설명인데 읽을수록 너무 웃겼다. 그 상황을 너무 잘 알겠어서. (연출이 실패할 경우의 설명도 무척 재밌다)

 마지막 장의 [결론]에서 저자는 내용을 정리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일반적 연극 규칙과 행동 성향을 기준으로 삼아 규칙이 다른 사회의 생활 영역을 간과하는 잘못을 저지르지는 말아야 한다."고, 또 "우리 사회 전체를 연극적 관행으로만 규정지으려는 시도도 삼가야 한다."고도 말한다. 책 한 권으로 다양한 상황을 들어가며 삶의 연극적 행위를 얘기했으나 그것을 전부로 생각해선 안된다고 주의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 오만에 빠질 때가 있다. 특히 심리학 등 사람에 대한 책을 읽었을 때 그에 맞춰서 주변의 사람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 생각한다. 저자 또한 그런 점을 말한게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읽고 세상 전부를 이해한 게 아니라 일부만을, 그리고 그 자체를 알게 되었다기 보다는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하나 알게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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