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원작으로 새롭게 읽는 피노키오 - 개정판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2
카를로 콜로디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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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나는 피노키오의 스토리를 잘 모른다. 디즈니의 <피노키오>로 그 이미지만 기억할 뿐 그 자체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사람이 되고 싶은 나무인형, 그리고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것 정도의 설정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게임에서 나중에 상어뱃속을 나가는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얘가 어쩌다 그 상황에 처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캐릭터도 디즈니의 이미지로만 기억하기에, 피노키오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착한 나무인형이고, 제페토 역시 그런 그를 만들고 안쓰러이 여기며 보살펴주는 순한 할아버지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책을 보면 처음부터 그 이미지가 와장창 깨진다. 제페토는 수 틀리면 동네 할아버지와 육탄전을 벌일 정도로 과격한 노인네였다.

그리고 피노키오는 제페토가 생명을 불어넣어 그렇게 된 줄 알았더니,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원래가 말하는 나무토막이었다! 책의 첫 문장이 이렇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나이 어린 독자들은 곧바로 '어떤 왕이 살았어요!' 라고 대답하겠지만 
이번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옛날 옛날에 나무토막 하나가 있었어요.'

그 나무토막이 무엇인지 이미 명백하게 알고 있음에도 저 서두는 사람을 두근거리게 하는 마력이 있다. 심지어 그 나무토막은 혼자 구를수도 있고 말도 할 줄 안다. 얼마나 신기한가. 그렇게 내가 혼자 신기해하고 놀라고 있을 타이밍엔 여지없이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세요!' 하는 변사가 나타난다. (순간 어린이 된 기분)

처음엔 대체 피노키오가 언제, 어떻게 사람이 될까 하는 호기심보다도 책의 특이한 말투 때문에 웃겨서 읽기 시작했다. 직역한(번역기 돌린) 듯 한 대화와, 순화라곤 없는 가차없는 표현(옛날 얘기 특유의 뜬금없는 잔혹성), 그리고 중간중간 나타나서 방향제시를 해주는 변사가 생경해서 웃겼다.

그렇게 읽다보면 점차 스토리에 빠져들게 된다. 피노키오가 겪는 사건 하나하나가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은건지가 너무 명확해서 이 사건에서 얻는 교훈을 찾으라는 문제를 내면 바로 맞출 수 있을 정돈데 문제는 그걸 피노키오만 모른다. 그래서 이 철없는 꼬마는 모든 유혹에 다 넘어간다. 그리고 그 고난을 겪고도 또 당한다. 다신 안 그런다고, 착한 어린이가 되겠다고 앞에서는 다짐하고 뒤돌아서면 까먹는지 유혹에 또 넘어간다. 그 어리석은 짓을 한 권 내내 반복한다. 그래서 대체 얘가 철이 들긴 할까 사람이 될 수 있긴 한걸까 하는 궁금증에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피노키오가 정신을 못차리는 걸 보면서 처음엔 '쟤 또 속네' 하며 웃으며 읽지만 다음엔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도 여전히 감언이설에 혹하는 피노키오는 아닌가. 충실히 일해서 돈을 벌 생각은 않고 일확천금을 바라며 땅에 금화를 묻어 금화나무가 열리기를 바라지는 않는가. 일하지 않고 매일매일 놀기만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하지는 않는가. 당장의 재미를 위해 소중한 사람을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내 주변의 좋은 사람의 말과 나쁜 사람의 말을 혼동하여 듣고 있지는 않은가.

피노키오를 볼 때는 너무나도 명백한 유혹에 넘어가는 피노키오가 한심하지만, 정작 나를 돌아봤을 때도 그 유혹에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 아이가 깨닫지 못하고 그대로 컸다면 어른이어도 똑같다. 양상만 다를 뿐이지 핵심은 같다. 

피노키오의 세상에서 공부를 하지 않고 놀기만 한다는 말에 혹해 사기꾼을 따라갔던 아이들은 당나귀가 되어 고된 일을 하다 죽는다. 그 마을에서 빠져나와 몇 번의 고난을 더 겪고 정말로 정신을 차린 피노키오는 그제서야 사람이 된다. 나도 한 때는 피노키오였다. 그래서 지금은 사람인가, 당나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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