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 인플루엔셜 대가의 지혜 시리즈
조훈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상한 얘기지만 나는 바둑을 만화로 알았다. 『고스트 바둑왕』이나『미생』같은. 그리고 바둑은 아니지만 비슷한 세계인 장기를 다루는『3월의 라이온』까지. 바둑을 배운게 아니고, 엄밀히 말하자면 바둑 자체도 아닌, 그것을 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만화로 접해보기만 했다.


 나는 이창호, 이세돌 세대여서 그 전 세대의 전설인 조훈현은 위키에서나 접한 전설이었다. 그런 그가 직접 생각을 정리해 글을 써 자신의 생각법을 얘기한다 하니 천재들의 사고방식이 궁금한 나 같은 범인凡人은 찾아 읽어 볼 수밖에.


 그리고 읽고 난 뒤의 결론은, 역시 비법같은 건 없다. 


 일단 바둑은 시작 자체가 천재들만 하는데다 조훈현은 그 천재들 사이에서도 천재중의 천재여서 최연소로(무려 9살) 프로의 세계에 들어간다. 살면서 천재란 말은 정말 수도 없이 들었을, 시작부터 남달랐던 인물이었다. 한 시대를 라이벌 없이 풍미했고 업적만 봐도 사람맞나 싶을 정도의 인물이지만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이 책을 먼저 접한다면 그런게 잘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기도 참 많이 졌단다. 일본에 유학가니 더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그가 느꼈던 좌절이나 고민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것은 그는 계속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계속 생각하란다. 이기려면 생각하고, 수에 몰려도(초읽기에 들어가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생각하고, 지고나선 더더욱 생각해야 한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게 다다. 표지에 적힌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 이것이다. 조금 바꿔 말하면 '답을 찾을 때까지 (열과 성을 다해 오로지 그것만) 생각한다.'


 그렇기에 자기계발서적 교훈으로 들릴수도 있는 얘기들이다.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닌 방법을 알려주는 듯한. 그렇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부분이 있다. 비법을 찾으려한 나의 얄팍한 마음을 깨부숴주니까. 역시 모든 것의 비법은 계속 하는 것 뿐이구나.


 물론 내가 생각한다고 하는 '생각'과 그가 생각하는 '생각'에는 어마어마한 질적 차이가 있다. 책에서 계속 얘기하듯 그는 이미 최고가 공인한 '최고가 될 수 있는 재목'인데다(그의 스승은 이 세계에서 이류는 서러우니 일류가 돼야 한다면서 헛된 희망은 주지 않고 일류가 될 떡잎만 골라 제자 삼았다. 평생 3명이었고, 각 국에서 최고가 되었고, 조훈현이 그 마지막 제자였다) 바둑기사라면 당연히 지니는 어마어마한 암기력도 타고났다. (책에서 그는 프로기사라면 자기가 둔 것을 기억하는 것 정도는 저절로 되는 것이고, 기보는 한 번 보면 외워버리는게 당연한 줄 알았다고 했다. 자신에겐 너무도 당연하기에 이창호가 처음에 복기를 못하는 걸 보고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여기서 이런 암기력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조훈현이 대단한건지, 아니면 남들 다하는 것도 못하면서 남들보다 잘했던 이창호가 대단한건지 헷갈려서 웃었다) 


 이렇게 원래 대단한 사람도 더 향상되기 위해선 노력하는 것밖에는 별 수 없다는 것이 위안이 됐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함에도 진다. 내가 계속 이겼던 사람이라도 순간 방심하면 지고, 생각을 잘못하면 진다. 치열하게 생각하고 방심하지 않았음에도 진다. 시간이 흐를 수록 나만큼 머리좋은 사람은 새로 태어나 계속 올라오고 새로운 류流가 되어 나를 이긴다. 그래도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떨어지면 다시 열심히 생각해서 올라간다. 그게 그의 방식이다.


 책은 이렇게 그가 생각해왔던 것들을 말해준다. 내가 이렇게 생각했더니 이렇게 되더라. 지나고 보니 이랬더라. 나를 도와준 분들은 이런 말을 해주었고, 그것이 나를 이루었다. 같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그가 깨달은 통찰들을 말해준다. 

 

 그리고 반절은 미래를 본다. 역시 한 분야 최고가 되면 자신뿐 아니라 그 분야의 미래까지 같이 보게 되는구나. 그리고 그 시점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영달보다는 그 분야의 번영을 우선하게 되는구나. 그는 쇠퇴해가는 바둑계를 안타까워하며 대세가 바뀌어가는 한/중/일의 상황을 보며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과 해결책은 비단 바둑계 뿐 아니라 쇠퇴해가는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친구인 차민수의 방식과 통찰도 인상깊지만 호주의 바둑광 얘기들이 엄청 인상깊었다. 특히 농장을 사서 일이 끝난 후 바둑을 배우는걸 조건으로 사람을 고용한 농장주의 아이디어가 아주 신박했다. 그는 그저 바둑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바둑을 두었으면 싶은 마음에 그리 한 것이다)


 책을 읽고 위키에서 그를 다시 찾아 읽었다. 역시 본인이 생각하는 본인과 타인이 바라보는 것은 차이가 있다. 업적이 너무도 대단하기에 이기기만 했을 것 같지만 책을 읽으면 지기도 많이 졌고, 아슬아슬했고, 치열했다고 얘기한다. 쉬운 상대는 없었다고. 어쩌면 자신의 기억에 남는 것은 어렵고 힘든 것들이기에 그런 것들만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타인은 결과 위주로 보니까 성취가 더 쉽게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거저 얻어지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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