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조 - 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다
이석원 지음 / 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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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2인조'는 무얼 말하나. 나다. 나랑 나.

나는 '나'를 모른다거나 '나'를 사랑해줘야 하는데 등한시 했다는 식으로 등장하는 내가 아닌 것 같은 '나'다. 그래서 누구나 다 날 때부터 2인조라는게 이 책의 소제목이다. 이제 앞자리가 5가 된다는 그가 왜 이제서야 2인조 타령을 할까. 그런 자아성찰같은걸 10대 청소년이나 20대 젊은이가 아닌 반세기를 살아온 아저씨가 왜 이제서야.

아팠단다. 스트레스가 극심해 갑자기 걸을수가 없게 되어 다시 정신과 신세를 지게 되면서 그 한 해동안의 생각과 고민을 적어낸 게 이 책이다. 그래서 책은 마치 일기장처럼 월별로 진행된다. 아주 사소한, 예를 들면 맘에 드는 편집샵의 직원에게 평소답지 않게 한마디 건네봤다가 시작된 변화와 느낀점이라던가. 아끼는 셔츠를 수선하기 위해 청담의 세탁소에 찾아갔는데 불친절함을 느끼고 다음번에 똑바로 얘기해야지 하고 이런저런 시뮬레이션을 그려보고 그러나 막상 다음에 가니 내가 벼르고 있었던것과는 달리 그쪽은 아무렇지도 않았고 결과물도 너무나 훌륭해 아무말 않기로 한 것. 이런 소소한 일상의 마음과 생각을 구구절절하게 적는데 와 이러니까 이석원이지 싶었다.

기본적으로 아주 섬세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상처를 잘 받고 스트레스를 받나 싶다가도 묘하게 긍정적이며 앞을 향해간다. 그 점 때문에 좋은 것 같다. 징징대면서도 자기 갈 길을 찾아가니까. 장강명이 『책한번써봅시다』에서 "쓰는 사람은 써야 한다"고 했는데 바로 이런 사람인 것 같다. 그도 스스로 「이 책은 생의 반환점을 넘긴 한 사람이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다가올 남은 생을 도모하기 위해 쓰는, 한 해 동안의 기록」이라고 했다. 이 책은 내가 나를 치유하기 위해 쓴 것이다.

일상의 모든 것이 소재다. 생각하고 느낀 것을 그대로 쓰면 그게 그대로 글이 되니까. 그렇다고 중구난방 의식의 흐름대로 썼다는 얘기도 아니다. 소설처럼 복선회수도 기가 막히다. 년초에 있었던 사소한 계기가 연말에 어떻게 나의 생각을 바꾸는지, 이 책은 한가지 주제로 흘러간다. 책의 마지막장에 친절하게 정리해 준 그 결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깨닫고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은 그 과정의 기록이다. 나도 알지만 잘 안 된다. 어떤 하나의 계기로 인해 사람이 바뀌는 일은 없다고 믿지만 하나의 계기와 작게 실천한 경험이 누적되어 사람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글을 쓴다. 그의 말대로 솔직하게.

나는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은 일들에 내 탓을 하며 살아왔고, 어쩌면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인지도 몰랐다. 이럴 때 스스로에게 한없이 관대해지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내 몸과 마음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탓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설령 뭘 잘못했어도 다음에 잘하면 된다 격려하고, 손톱만 한 일이라도 호들갑스럽게 자신을 칭찬해주려 애쓰면서 더는 어떤 자책감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태도가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면 바로 그 태도 때문에 살 수도 있을 터.

-p.58-59 [3월_나를 살리기 위한 지침들] 中 - P58

그랬던 내가, 세상에서 별로 잘나가지 않아 집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변변한 곳에서 화환 하나 내 앞으로 오지 않아도, 내 친구 지인들 떼거지로 몰려오지 않아도, 뭐 어쩌겠나 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더이상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아 설령 사람이 적게 와도 뭐 그럼 어때, 그냥 형편대로 사는 거지 하며 허무할 정도로 편한 마음을 갖게 되었을 때. 나는 그때 느꼈던 그 바다와도 같은 자유를, 그 자유로운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거기까지 오는 동안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편안함은 어디에서 올까.

인생의 궁극의 편안함은.



나는 그게 솔직할 수 있는 자유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남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로부터.

나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용기로부터.

-p.322 [12월_자유] 中 - P322

사소한 것이라도 나로 하여금 주눅드는 상황을 자꾸 경험하게 하지 않기. 대신 작고 별것 아닌 것이라도 좋으니 이기는 경험, 인정받는 경험, 타인의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내는 경험 같은 것들을 자꾸만 하게 해주기. 그뿐 아니다. 좋은 곳에 날 데려가서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훌륭한 예술작품들을 감상케 하고 책과 신문을 펼쳐 세상과 타인에 대해 진지하고 따뜻한 시선을 갖게 하면 그 모든 순간들은 나와 내 영혼을 살찌우고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부정적인 기억과 상처들은 점점 쪼그라든다. 바로 이게 나의 내면을 살찌우고 내 자존감을 높이는 길이라는 걸, 그게 바로 상처의 보호막이었다는 걸 그동안엔 왜 몰랐을까.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게 다 나를 사랑해주는 방법이었다.

내가 그토록 알고 싶어했던.

-p.346 [12월_여름의 일] 中 - 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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