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너에게
우쥔 지음, 이지수 옮김 / 오월구일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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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에 자리 잡은 현대 조형물 같은 책이다. 그만큼 자연스럽고 동시대에 꼭 필요한 화두를 던진다. 자칫 가볍고 감정적으로 흐를 분위기인 혈연관계를 가정하고 서간문으로 풀어간다는 게 조금 놀랍다.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서양의 부모에 대한 관점을 점검해볼 기회였으며, 우리가 주 생활을 영위하는 문화권에 얼마나 무딘지 대해 고찰하게끔 하는 글이다. 기존 중국 창업가의 활동을 봤을 때 그리 인상 깊은 적이 없던 점에서, 이 책의 저자인 우쥔의 이성과 감성, 동양과 서양의 공존은 엿볼 가치가 있다. 


각 장별로 요약된 부분을 바탕으로 저자가 강연을 해도 될 정도로 실용성이 높다. 실은 이 부분 때문에 이 책을 고르기 주저했던 게 사실인데, 독자층을 생각한다면 이 부분은 마케팅 면에서 탁월한 선택인듯. 


각 주제별로 마지막에 두 딸의 성과를 넣은 것도 일방적인 명령조가 아닌 편지임을 각인시키는 효과를 드러낸다. 단편적인 현재의 아버지 관점을 나열한 것이 아닌, 다음 세대인 딸과 소통하며 삶을 같이 고민한다는 점이 독자에게 쉽게 읽히면서도 만만하게 볼 수 없는 내용임을 깨닫게 한다. 



운명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끝도 없는 것 같아. 이 편지의 내용이 네게 생각할 거리를 남겼으면 좋겠구나. - P59

일단 세상을 바꿀수 있는 일을 찾으면 큰돈을 벌 수 있게 된단다. 반면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작은 돈을 탐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아. - P70

명화 네가 앞으로 2년 동안 학업에 큰 부담을 가질 필요 없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야. 아빠는 네가 선량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안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기쁠 거야. - P115

만약 애플의 제품 성능은 계속 떨어지는데 팀 쿡 개인의 정신적인 수행 능력이 높아진다고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되겠니? 이건 선행이 아니라 위선이라고 할 수 있지. - P149

모든 일에 너무 강한 모습을 보이려 애쓰지 말라는 거야. 내면이 정말로 강한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 - P191

스스로를 점검하지 않으니 자기도 모르게 계속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결국 성적인 일의 성패에 영향을 미친단다 - P224

유명한 책에 나오는 권위 있는 학자들의 결론을 무조건 믿는 태도야.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과학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는 걸 너도 잘 알 거야. 그러니 절대 이러한 태도에 물들지 말고 이성적인 회의론자이자 미지의 탐구자가 되기를 바랄게. - P241

편지를 마치기 전에 한 가지 좋은 소식을 전해줄게. 네가 아빠의 새 책<흐름의 정점>을 위해 디자인해 준 표지가 출판사의 허가를 받았단다. 아빠와 엄마는 너의 예술적 재능을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있어. 멍신도 아주 기뻐하고 있단다. 공부도 좋지만 건강도 잘 챙기렴 - P277

많은 사람들이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닌데 결과물이 안정적이지 않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결국 전문적인 소양이 없기 때문이야. 전문적인 소양이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평균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지만 전문적인 소양 없이 자신의 재능이나 운만 믿고 일을 하는 사람은 결과를 보장할 수 없어. 간혹 성공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성공을 다시 반복하기는 힘들 거야. - P307

사실 가장 중요한 건 네 건강이야. 끊임없는 야근과 밤샘은 업무 진도를 높이기는커녕 건강을 해칠 뿐이란다. 네가 어떤 일을 하든 회사에서의 영향력은 상상한 것만큼 크지 않을 때가 많아, 가장 중요한 건 건강한 너 자신이라는 걸 잊지 말거라.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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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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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리뷰를 쓴 이래로 본문을 인용하지 않는, 아니 '그럴 필요 없는' 최초의 책을 발견했다. 책을 다 읽은 뒤에 서평단에 선정된 게 꿈같음을 느꼈고, 잠시 동안 창작의 깊이와 문학성에 감탄했다. 이 때문에 -특히 글을 수반한- 창작 활동을 하는 모든 이에게 <청소부 매뉴얼>을 추천하다. 


각 문장이 간결하고 각 문단이 함축성을 지녔으며, 단편 별로 모순된 상황을 그린다. 마치, 모퉁이에 서린 일상을 카드게임하듯 펼친다. 각 본문의 끝부분에 다다르면 제목의 단출함이 느껴질 정도로 익살스러운 표현이 곳곳에 등장하는데, 더 놀라운 사실은 소설의 끝과 시작이 기승전결 구조가 아닌 소설 그 자체를 도장 찍듯 박아낸다는 점이다.


서사가 있지만, 글의 감동은 독자의 사유로 결정된다. 철학 책의 한두 문장을 읽은 뒤 숨 쉬긴 하듯 (각각의 단편은 연결되어 있으나,) 단편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생각꾸러미에 담긴 공 같다. 책의 두께가 얇은 대신 책의 깊이는 동굴쯤 된다고 가정하고 책을 드는 게 필요하다. "리뷰 한편을 읽든 열 편을 읽든 소용없을 책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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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베스트 리빙 가이드 The Best Living Guide 65 - 이케아에서 에르메스까지
정은주 지음 / 몽스북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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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상에서 누리는 디자인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가볍게 캐릭터 제품부터 일러스트나 철마다 바꿔 입는 옷 정도? 마음먹고 가는 갤러리, 화랑, 미술관 그리고 박물관 같은 특정 장소나 새집 마련에 이어진 가구 장만까지. 그렇다, 넓고 깊어 애쓰지 않으면 디자인을 유심히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 경험을 질서정연하고 밀도 있게 다룬 책이 <The Best Living Guide65>인 것 같다. 비전문가라 여전히 이 책을 최고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것뿐. 위에 쓴 디자인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고, 일 년에 최소 한 번 이상 펴볼, 적당한 두께와 간략한 사진이 담긴, 한국 출판 시장에 나온 가성비 높은 디자인 책 말이다. 


책 구성부터 -네 가지로 나눴다는 점이- 요긴하다. 이 책을 펼치기 전, 상상한 구성은 브랜드 별 나열식 혹은 지역을 기반한 위치 혹은 디자이너 별로 비슷한 군의 연결 짓기였다. 첫 번째와 세 번째를 혼합한 분류라 비전문가의 디자인 공부(?)에 적절한 구성이다. 첫 번째 언급된 Contemporary Living에서 이노메싸, 루밍, 프리츠 한센, 챕터원, 자주, 에이치픽스, 데스커, 무인양품, 티더블유엘, 짐블랑, 스탠다드에이, 디앤디파트먼트, 이케아, 에스하우츠, 제르바소니, 무아쏘니에, 비아인키노, 라꼴렉뜨 를 이미 알고 있는 브랜드라 눈으로 따라 읽고 공간을 떠올렸다. 세번째 언급된 Interior Material 부분에서 유앤어스, 유로세라믹, 두오모 반요, 던 에드워드 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신비로운 부분은 High-end-Living 이다. 친환경 소재에 최소한의 요소만 남긴 디자인'아 크리니 아'의 부엌에, 하농의 원목 브랜드인 조르다노의 핀란드산 자작나무를 깔고, 아르텍의 모던한 식탁에 원 컬렉션의 핀 율 체어, 그 위에 라이트 나우에서 구한 조명을 올리는 상상을 했다. 집 전체를 관통하는 디자인이 있는 것도 좋지만, 주방에서 함께 하는 가족의 모습만으로도 아늑한 집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집이 크든 작든 넓든 길든 같은 행위를 하는 주방이라는 한 공간에서, 조화로운 디자인이 살아 숨 쉴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꿈꾼 우리 가족의 공간! 벌써 행복하다. 이 기쁨이 오 년쯤 지나 개정판으로 또 지속되길.  

각 브랜드의 역사와 특징은 무엇인지, 어느 숍이 어떤 브랜드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지, 각 브랜드별 위상은 어떠한지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이유다. - P8

총 5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노메싸 쇼룸은 제품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가격대도 다양해서 선택의 폭이 넓다. - P25

고객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아이템을 한군데서 둘러볼 수 있어서 좋다. 대신 많은 물건 속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제품, 필요한 것들을 잘 골라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 P32

챕터원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찾고 싶을 때 들르는 곳이다. - P40

에이치픽스 박인혜 대표는 외국의 뮤지엄과 핫 플레이스 등을 자주 다니면서 디자인의 흐름을 읽고 매 시즌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노력한다 - P70

이케아와 비교해보면 조금 더 에지 있고 내구성이 있는 제품군으로 가격대도 약간 높은 편이다. - P75

비트라는 공간을 펑키하게 만들고 싶거나, 다양한 스타일을 믹스매치하고 싶을 때 선택하는 브랜드다. 다만 최근의 인테리어 트렌드이기도 한 믹스 앤 매치 스타일을 위해서는 상당한 내공과 공부가 필요하다 - P88

제품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도 철저해서 고객의 신뢰가 높은 편이다. 주문 후 생산하는 시스템이어서 고객과 일대일 맞춤 컨설팅이 가능하다. - P104

보컨셉은 북유럽 스타일의 가구 중에서 기능과 디자인,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잡고 싶을 때 찾게 되는 매장이다. 장식장과 테이블을 높낮이 조절이 가능하다거나, 수납 기능을 강조해서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제품이 많다. - P119

가구 제작에 필요한 목재를 직접 가꾸고 품질을 증명하는 FSC 인증을 받은 우드 프레임을 사용하는 등 환경 윤리적인 경영을 추구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몬타나 제품은 사용 공간에 대한 제약이 없다. - P132

에어론 체어는 이름에서 보이듯 공기처럼 편안한 디자인이 특징으로, 인체 공학자를 비롯해 정형외과 전문의, 물리 치료사 등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설계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 P138

소재에 대한 실험 정신이 강한 브랜드답게 라탄, 알루미늄, 양피지, 월넛 등 여러 재료를 사용하고 제품 표면에 변화를 주어 독특한 개성을 부여한다. - P149

가구 디자인의 역사에서 미드센트리가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 시기적으로는 192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를 의미하고 미국과 영국,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지역 등이 이 시대 미학의 중심에 있다.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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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 많은 사람들의 일상적 어감에 부합하는 용어를 택하는 것이 문제를 부드럽게 이해시키는데 유리할지 모른다. 그런데 다수자 입장에서 거부감이 없는 용어를 쓴다고 해서 혐오표현의 심각성에 관한 문제의식이 고양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차별표현‘, ‘멸시표현‘처럼 완화된 용어로 이슈화되었다면 ˝왜 그게 혐오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선뜻 문제의식을 받아들였겠냐는 얘기다. 도리어 ‘사실을 말했는데 왜 차별이냐‘, ‘걱정되어 한 말인데 왜 멸시냐‘ 등등 또 다른 방식으로 거부감을 표출했을 것이다. 따라서 혐오표현이라는 과격한 용어의 사용은 의도적으로 선택된 ‘반차별운동‘의 전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된장녀가 왜 혐오표현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왜 된장녀‘도‘ 혐오표현일 수 있는지 설득하는 과정 자체가 운동이라는 것이다. 된장녀 신상털기와 데이트 폭력, 성폭력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 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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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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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짧게 쓸 자신이 없어 머뭇거렸다. 처음에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분명했기 때문에 더 힘든 것 같다. 저자가 중국계 미국인이고, 다른 직업에 종사하면서 SF 관련 문학상을 받았다는 점이 매력이었는데, 실상 책을 덮고 난 후에 부담감으로 돌아올 거라 상상을 못 한 것이다. 환상을 현실로 옮겨놓은 열네 편의 단편이었고, 첫 편인 종이동물원에서 소설답지 않은 감동을 느꼈다면, 마지막 편인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사람들에서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고, 미래를 그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시점의 이동이 한편 안에서 수없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부모와 자식, 어른과 아이처럼 어떤 세대가 한 공간 한 시점에 일을 겪고, 특정 시점인 과거를 소환하거나 이를 재해석하기 위한 다큐 형식으로 풀어간다는 점에서 다른 시점을 현재로 치환한다. 아주 짧은 이야기 안에 수많은 사람과 시대가 공존하면서 다 읽고 나면 기이함과 경이감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누구나 볼만한 책은 아니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지나칠 수 없는 단편모음이다. 책에 밑줄을 그을 곳은 없지만,읽고 나서 느낀 점이 계속 쌓여, 다시 읽게 된다면 과거의 나를 발견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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