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
많은 사람들의 일상적 어감에 부합하는 용어를 택하는 것이 문제를 부드럽게 이해시키는데 유리할지 모른다. 그런데 다수자 입장에서 거부감이 없는 용어를 쓴다고 해서 혐오표현의 심각성에 관한 문제의식이 고양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차별표현‘, ‘멸시표현‘처럼 완화된 용어로 이슈화되었다면 ˝왜 그게 혐오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선뜻 문제의식을 받아들였겠냐는 얘기다. 도리어 ‘사실을 말했는데 왜 차별이냐‘, ‘걱정되어 한 말인데 왜 멸시냐‘ 등등 또 다른 방식으로 거부감을 표출했을 것이다.
따라서 혐오표현이라는 과격한 용어의 사용은 의도적으로 선택된 ‘반차별운동‘의 전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된장녀가 왜 혐오표현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왜 된장녀‘도‘ 혐오표현일 수 있는지 설득하는 과정 자체가 운동이라는 것이다. 된장녀 신상털기와 데이트 폭력, 성폭력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 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