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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강렬한 햇살이 가득한 오후가 지나고 지표면을 달군 열기가 조금이나마 수그러들면, 수그러든 열기만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책을 찾았습니다. 요즘같은 더위에 시원한 책이 아니고, 왠 차분한 책이냐 하실런지 모르겠으나, 기묘하고 신기하게도 하루 100엔으로 어떤 물건이든 다 맡아주는 보관가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관가게'라하면, 이름마저도 생소한 이 곳은 무인 보관함이 아닌 사람이 직접 의뢰인의 물품을 받아 보관하는 가게입니다. 자전거, 유서, 이혼서류, 오르골, 책, 냄비등 보관하는 품목은 어느것이든 가리지 않습니다. 보관비용만 지불하면 됩니다. 하루에 100엔. 제시한 날짜까지 물건을 찾으러 오지 않으면 물건은 주인의 소유가 되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습니다.
보관 가게에 대한 에피소드를 다섯가지 정도 소개하고 있는데, 소개하고 있는 대상들이 신기합니다.
가게 문 앞에 걸어두는 포렴, 주인 손에 의해 이 가게에 맡겨진 자전거, 가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장식장, '사장님'이라고 불리는 고양이까지 - 더 신기한 것은 이 보관 가게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사장은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입니다. 임무라고 하기엔 너무 무거운 말이 될 테지만, 어쨌거나 뛰어난 기억력과 따스한 성품으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꾸려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일렁이는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
성실함이란 고마운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p. 086
맡겨진 물건조차 가게 주인에게 애정을 품는 기묘하면서도 따스한 이 가게에 내가 물건을 맡기게 된다면 무엇을 맡길 수 있을까요?어린 시절에 썼던 지금 읽으면 손발이 자동으로 오그라드는 일기장을 맡길까요? 아니면 첫사랑의 기억을 담아 샀던 물건을 맡길 수 있을까요? 가장 행복한 순간에 나와 함께했던 것들? 그도 아니면 기억에서 조차 지워버리고 싶은, 그럼에도 미련이 남아 버리지 못하는 것?
그는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받아들임이 그의 인생 전부로 보인다.
아직 젊은 그가 그런 인생을 살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P. 120
그것이 어떤 것이 될 지 모르겠으나 분명 보관 가게 주인 도오루는 성실하게 당신의 보관품을 맡아줄 것 입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그 보관품에 담긴 사연을 들어주겠지요. 참 신기하게도 이 가게에 찾아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가게 주인 도오루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참 따스해집니다. 힘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행동에도 녹아내려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곳은 뜨거운 여름의 열기 속에서도 봄 날의 포근함을 느끼게 됩니다.
보관 기간을 무시하고 물건을 찾아가지 않을 경우, 주인의 소유가 되어 주인은 그 물건들을 자유롭게 처리합니다. 남의 손을 빌려 추억을 없앤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참 야박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물건을 맡기도 찾아가지 않는 원래의 주인이 야속해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또 때가 되어 기꺼이 보내는 도오루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란게 이런거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니까 100엔 보관 가게는 주인이 살아있는 한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길을 잃었을 때, 혼란스러울 때, 내가 가야할 길을 잃어버렸을 때 나침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될 테니까요.
읽을 때는 그저 마음 편하게, 가게를 소개하는 물건들이 그저 사랑스럽고, 허세 가득하지만 믿음직해보이고 마냥 귀여운 만화같은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뒤돌아 생각해보니 엄청난 의미를 가진 책이 되었네요. 이 마음을 너무 늦게 깨닫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게는 변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장소가 되어 줄 것입니다. 내 마음이 길을 잃었을 때, 길 잃은 마음이 이 가게를 다시 잘 찾아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오래오래 - 늘 거기 있던 것 처럼 말이죠.
그래도 일렁이는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 성실함이란 고마운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받아들임이 그의 인생 전부로 보인다. 아직 젊은 그가 그런 인생을 살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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