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 아케이드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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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캘린더>, <인질의 낭독회>,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작가 오가와 요코.

아끼는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은 '소묘집' 같다. 흥미진진한 사건이 없다. 다만, 흥미로운 인물과 사연이 모여 있다.

흐리터분하고 쓸쓸한 분위기. 그 속에서 빛나는 것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

흔적과 기억의 이야기.

오가와 요코의 작품은 '연작 소설'이 많다.

내가 읽은 소설 중에는 <인질의 낭독회>, <우연한 축복>, 그리고 <세상 끝 아케이드>

공통 사건이나 장소를 두고 사람들 하나하나의 사연을 엮어 직조한다.

<<세상 끝 아케이드>>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아케이드가 '배경'이다.

이 아케이드의 상인과 손님의 사연들이 중심이다. 화자인 '나'는 상가 소유주 및 관리인의 딸이며 배달부 역할을 맡아 상인들과 손님을 엮는다.

1. <의상 담당>은 레이스를 파는 상인 + 연극 의상 담당 여자.

무대의상 담당자는 "죽은 사람의 살갗이 느껴지는 소재"여야 창작의욕이 생긴다고 한다.

그녀는 여배우를 좋아한 남자를 좋아했다. 그가 여배우의 속옷을 훔쳐달라고 했을 때, 자신의 속옷을 몰래 내줬다. 그 남자는 결국, 여배우를 죽였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이제 무대의상 담당자 여자도 죽는다. '나'는 유품인 그녀의 슬립을 손에 넣었다. "마네킹에서 벗겨낸 슬립은 흠칫할 만큼 가벼웠고, 개켰더니 손 안에 쥐어질 만큼 조그만 덩어리가 되었다."

2, <백과사전 소녀>

아케이드의 독서 휴게실로 찾아오는 남자. 그는 딸이 읽던 백과사전을 마저 읽는다.

'나'는 그의 딸인 '소녀'와 알던 사이였다.

(42)그 애는 학교 교실에서 말이 없었다. 꺄꺄 떠들며 장난친다든지, 다른 여자애와 손잡고 복도를 걷는다든지, 교환일기를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 늘 당당하게 외톨이로 있었다.

그러다 '나'와 알게 된다. 하지만 (44)친하게 말을 나누게 된 뒤로도 학교에서는 서로 모르는 척 했다. 눈짓조차 주고받지 않았다. 독서 휴게실에서 보내는 시간을 비밀로 하자는 양해가 우리 둘 사이에 암암리에 이루어져 있었다.

그 소녀 R은 휴게실에서 백과사전만 읽었다. 그러나 (50)R은 백과사전 제10권의 <응>페이지를 펴지 못했다. 까다로운 내장질환이 생겨 눈깜짝할 새 죽고 말았다.

독서휴게실에 남겨진 해바라기 의자에는 R의 무게가 우묵하게 팬 자국으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애의 체온이 남아 있지 않나 확인하려고 가끔 그곳에 손을 대어보곤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타나, 딸이 읽던 백과사전의 마지막 권까지를 읽는다.

3. <토끼 부인>

토끼 부인은 '의안' 상점의 손님이다. 그녀는 래빗의 눈을 갖고 싶다.

(63)래빗의 눈이 얼마나 멋진지 사진 같은 걸로 알 수 있을 리 없잖아요. 그 애의 전부가, 총명함도, 자유분방함도, 솔직함도, 명랑함도 모두 그 속에 담겨 있어서, 무슨 색이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결정을 이루거든요.

그녀는 죽은 아이를 (래빗의 눈을 빼닯은 눈의)돌려받고 싶었던 거다.

(74)죽은 것들의 목소리는 전부 눈에 갇혀 있는지도 몰라요.

4. <고리 집>

도넛 가게. 국가 대표 체조 선수라고 사기를 친 도넛 가게 주인의 아내.

그녀는 전문적인 결혼 사기꾼이었다.

그녀는 정체가 발각나 사라진다. 하지만 그녀는 무얼 바라고 도넛 가게 주인에게 사기를 쳤는지는 미지수로 남는다.

몸으로 고리를 만드는 그녀의 모습은 멋졌다. 도넛 같았다.

백과사전 세일즈 맨 등장 (앞서의 이야기와 연결 지점)

5. <종이 상점 시스터>

종이에 관련된 문구류를 파는 상점의 자매

그녀들은 목제 상자에 쌓인 엽서를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111)그림엽서를 하나하나 꺼내서 보다 보면 시간이 가는 것도 잊었다. 엽서 하나를 손에 들면 누가 어떤 사람을 위해 무엇을 써서 보냈는지에 대한 온갖 상상이 뻗어나갔다. 판독할 수 있는 글자가 얼마 없어도, 그저 아름다운 무늬로만 보이는 언어라도 상관 없었다. 글씨체, 잉크색, 수신자 주소의 지명, 우표도안, 엽서의 낡은 정도 등 온갖 것이 뭔가 말했다.

6. <손잡이씨>

의안 상점 남자는 자바 어린 사슴의 박제를 안고, 시체 검안소로 배달을 간다.

사체 과학 연구실은 대학 캠퍼스 북쪽 변두리, 물풀로 뒤덮인 수영장 뒤쪽에 있었다.

(134)온갖 종류의 동물 사체가 모여 있었다. 접수처를 지나 바로 나오는 복도 한구석에 큰개미핥기의 두개골과 느림보로리스의 모피, 오리너구리의 부리가 뒹굴고 있었다.

포르말린에에 담근 기린의 심장. 개는 유리 너무로 할짝할짝 핥을 수 있었다.

이 챕터의 주요 인물은 '손잡이'를 파는 남자. 문 손잡이 같은.

중요한 건 '연결'

7. <훈장 상점 미망인>

8. <유발 레이스>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레이스를 짜는 사람.

갓난 아기의 유발. 양이 적고 길이도 짧으며 연약하다. 손가락에 올려 놓을 수 있는 크기의 레이스만 뜰 수 있다.

9. <유괴범의 시계>

'나'의 이야기. 화재로 잃은 아버지 이야기.

나는 그런 손님들 중 한 명을 골라 뒤를 밟는다. 명확한 선택 기준 없이 그저 막연히 마음에 남는 사람을 고른다. 유괴범이 문자판 안에서 아이를 선택하는 것도 이런 식일지도 모른다. (201)내가 미행하는 사람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였다. 얼굴과 모습이 닮았는지 아닌지는 상관 없었다. 그저 지금 눈앞에 있는, 나를 인도하는 세상에 하나뿐인 뒷모습, 그게 바로 아버지라는 마음이 가슴을 메우고 있다.

'나'는 그러던 중 어느 대학의 조수 뒤를 밟게 된다. 그는 박쥐의 초음파를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208)인간은 아무도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캄캄하고 습한 동굴에 사는 황갈색 과일 박쥐를 생각하는 인생. 그들이 발하는 초음파의 의미를 알고 싶어하고, 그것을 알면 어떻게 되는 건지도 모르는 채, 날이면 날마나 그들을 고나찰하고 그래프를 만들고 가설을 수립하고 실험을 되풀이하는 인생, 인간이 모르는 방식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작은 동물의 현명함에 감명 받는 인생, 그리고 바이올린을 켤 수 있는 인생

작가가 사물이나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잘 드러난 부분.

(211)짜부러진 토마토를 짐받이에 싣고 가던 노인이 넘어졌다.

넘어진 게 충격이었는지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평소보다 풀죽어 보였다. 발걸음은 기운 없고 핸들을 쥔 손은 힘이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귀찮다는 듯이 자전거를 피해 갈 뿐, 노인이 다쳤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로지 나만이 삐걱삐걱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었다.

10. <포크댄스 발표회>

아버지가 화재로 죽은 그날의 이야기.

'나'는 포크댄스 경연대회에 트로피를 배달하러 갔다가 아버지와의 약속을 놓친다.

아버지는 불타는 극장에서 혼자 죽었다.

죽음과 사라짐의 의미를 '노인들의 포크댄스'에 빗댄 부분도 좋았다.

함께 늙어가는 종이 시스터즈.

(218)그들은 고요의 베일 한 장에 함께 싸여 있었다. 다행히도 고통은 없는 듯했다. 등이 굽고 백발은 숱이 적어지고 다리가 가늘어져도 그런 것을 염려하는 기색은 없었다. 자신의 몸에서 털과 청력과 근육이 빠져나가는 것도 모른 채, 그저 가만히 있으면서도 차츰 조그맣게 줄어들었다.

(227)노인들은 모두 진지했다. 이제 젊었을 적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몸으로도 곡에 담긴 의미를 어떻게든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동시에 파트너에게 경의를 표하려 했다. 어깨에 손을 얹고 손을 잡고 스텝을 밟으면서 왼발 뒤꿈치로 바닥을 지른다. 치맛자락을 잡고 팔짱을 끼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돈다. 또는 한 손을 허리에 얹고 다른 손을 맞대며 스텝을 밟아 앞뒤로 이동한다. 손이 떨리고 다리가 꼬일 대로 꼬일 때도 가끔 있었지만 그래도 안무가 흐트러지거나 보기 흉해지는 일은 없었다. 다들 서로서로 돕고 보완해주며 음악 속에서 하나가 되어 있었다. 작은 실수는 절묘한 악센트로 역할을 다했다.

옮긴 이의 말.

오가와 요코의 세계는 고요하고 정밀하다.

(238)세상 끝 아케이드의 상점에서 취급하는 레이스, 의안, 훈장, 옛날 그림엽서, 유발 등은 모두 둘도 없이 소중한 것을 영원히 잃었다는 슬픔과 외로움, 상실감을 물건이라는 형태로 남긴 것이다.

(239)세상 끝 아케이드는 그저 따뜻한 어둠처럼 슬픔을 감싸주고 일부분이나마 맡아줄 뿐이다. 하지만 비록 해소해주지는 못한다 해도 자신의 슬픔을 이해하고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이, 장소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아닐까.

 








"비누는 망가진 게 아니야. 이렇게 좋은 냄새로 변신한 것 뿐이란다."(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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