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세트] 그림자 정원의 마리오네트 (총3권/완결)
유미엘 / Muse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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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졌고, 그의 기행을 전해 들은 신의 배려를 받아 인간이 된 조각상(갈라테이아)와 행복한 엔딩을 맞았죠. 하지만 유령이 깃든, 이미 신이 없는 세계에 존재하는 오토마타 인형과의 연애는 어떻게 끝이 날까요. 오늘의 리뷰는 유미엘 님의 <그림자 정원의 마리오네트>입니다.






오랫동안 계속된 잠에서 깨어난 소녀가 제 꿈 속의 광경을 떠올리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됩니다. 이미 폐허처럼 황폐하던 커다란 성과, 성의 문을 굳게 닫아 건 채 살아가던 검은 옷의 커다란 야수. 그럴싸한 제복을 입은 자그마한 인형들이 야수의 시중을 들고, 그는 간혹 사랑하는 사람을 보듯 웃는 얼굴을 보입니다. 소녀는 야수의 미소를 아주 좋아했지만 그것이 자신을 향한 게 아니라 푸른 눈과 금발을 가진 미녀를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눈물짓죠.

그리고 그 눈물과 함께 소녀의 꿈 같은 기억이 사라집니다.



워렌 하트퍼드는 오토마타 인형을 만드는 인형사이며, 정말로 쓸데없이 넓은 저택을 상속받는 데 들어간 상속세 때문에 가난뱅이가 되어버린 귀족입니다. 하인도 한 명 두지 않은 채 폐허가 된 저택에서 홀로 살아가던 것이 이유가 되어서인지 희끄무레하게 어떤 유령을 보게 되고, 그 유령에게 자신이 만든 실물 사이즈의 오토마타 인형 '신부'를 자랑했죠.

하얀 피부와 금발, 푸른 눈에 완벽한 조형으로도 모자라 스톤 가격만 해도 작은 집 한 채 가격은 될 정도로 값비싼 베일과 웨딩드레스, 실제 보석으로 된 장신구에 감싸인 인형은 유령의 눈마저도 잡아끌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문득 정신차려보니 워렌의 집에서 기생하게 된 유령, 헤이젤은 워렌이 자랑하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신부'를 도둑에게서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와중에 그 안에 깃들어버립니다. 어떻게 해도 인형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도둑들을 부리던 아서의 추파까지 받아버렸죠. 다음날 손님이 방문할 때 워렌과 카리나에게 정체를 들킨 헤이젤은 인형의 몸에 깃든 채 워렌의 집에 얹혀서 살게 됩니다.


까다로운 다즐링을 완벽하게 우려서 내놓은 헤이젤은 카리나와 워렌의 제안대로 손님을 접대하고 잡다한 집안일을 하는 등, 자신이 할 일을 할당받습니다. 워렌과의 대화와, 그를 웃음짓게 하는 일들은 당연하고요. 워렌은 피로를 무릅쓰고 헤이젤이 남은 저택과 인형 전시가 열리는 도심을 매일같이 기차를 타고 왕복하는 등 저도 모르게 헤이젤을 받아들이죠.

조금씩 헤이젤을 신경쓰던 워렌은 인형 전시의 전야제로 열렸던 파티에서 사라진 헤이젤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이사벨과 함께 납치당한 헤이젤이 공황발작으로 쓰러져 인형의 몸에서 이탈했다는 것을 알고는 온종일 그녀를 기다리면서 제 마음을 자각하죠. 아직은 밀어낼 기회가 있다고 생각할 찰나, 헤이젤이 산 박하사탕이 든 봉투를 받고는 그럴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헤이젤은 한 번 공황발작에 걸린 이후로 조금씩 자신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어머니의 사망, 아버지와의 일상…. '신부'에서 빠져나오는 상황을 다시 한 번 겪기도 하고, 화재 현장에 뛰어들어 이사벨을 구해내는 등 대담하게 행동하기도 하죠. 아서가 헤이젤에게 매일같이 추파를 던진다는 것을 안 워렌은 제 마음을 고백하지만, 인형 안의 유령인 그녀는 우물쭈물합니다.




이야기는 정ㅇ향 님의 <오 마이 유령님>에서 시대상과 성별을 바꾸고, 피그말리온 신화(혹은 만화 <쵸비츠>)를 적절하게 섞어 넣은 구도입니다. 생전의 기억이 없는 유령이 자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에 아름다운 인형을 넣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창조해 낸 셈이죠.

피그말리온인 워렌에게는 워커홀릭이며 츤데레의 기질이 있는데, 헤이젤이 사라지고 난 뒤 폐인과 같은 모습에서는 안타까움까지 느껴집니다. 유령인 헤이젤은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인지 다소 소심하지만 필요할 때에는 강해지고요. 조연까지 캐릭터들의 합이 잘 맞는데다가 스토리가 물 흐르듯 흘러서 3권(실제적으로는 두 권 반쯤 됩니다)의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 블로그와 동시에 올라오는 리뷰입니다.


단 21g으로 그의 삶이 이렇게 크게 변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보다 더 큰 질량이라면 분명 인생 전체가 흔들리고도 남지 않았을까.

워렌은 이제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더는 포기할 수도, 무를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발을 내디딘 그는 깊고 어두운 길 끝에서 불어오는 미풍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다. 부디 이 밝은 미소를 다시 잃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헤이젤."
오랫동안 불러보지 못했던 이름은 피를 쏟을 듯 식도를 불태우고 간신히 소리가 되었다. 깊은 곳에 담아두고 차마 꺼내지 못하던 그 이름을 꽉 다문 어금니까지 끌어 올리는 데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 짧은 단어를 읊조리는 동안 턱이 덜덜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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