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산군님 산군님
차한나 지음 / 문릿노블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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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군山君 : 산짐승의 왕이라는 뜻에서, '호랑이'를 이르는 말.


제 구매내역의 문제인 건지, 그 동안 동양풍 로맨스소설도 꽤 읽은 것 같은데 남자주인공의 정체가 인외존재라면 보통 신이라든가 용왕이라든가 아니면 용(이나 이무기나 뱀 같은 어쨌든 파충류에 속할 존재들)이었던 느낌이란 말이죠. 호랑이는… 있었던가? 표지의 호랑이 그림 보고 구매를 결정했던 거 보면 별로 못 봤던 게 분명한 거 같은데요.

오늘의 리뷰 대상은 호랑이가 크와아앙하는 동양풍 로맨스인, 차한나 님의 <산군님 산군님>입니다.





심마니 일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강희는, 사냥꾼들마저도 무서워하는 금낭산을 제 앞동산처럼 생각했습니다. 포수를 하다가 집채보다 큰 호랑이─즉 산군님께 구해진 경험을 한 뒤 심마니로 전직한 아버지가 항상 그 이야기를 하면서 강희 역시 산군님이 지켜주실 것이라 말했기 때문이죠.

정말 산군님이 보살피시는지 전직 후에도 간혹 굵은 삼을 캐오던 아버지였지만, 산후 몸조리가 잘못되어 고질병에 걸린 어머니 앞에서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 결국 강희가 태어난 지 오 년도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다른 심마니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는 산군님의 가호가 따른다는 말만 남긴 채 깊은 산에 들어갔다가 실종됩니다.

이제 천애고애가 된 강희지만, 그녀는 산군의 가호까진 몰라도 금낭산의 예쁨을 받는다 여겨지면서 약초 캐는 아주머니들의 길을 안내하고 삯을 받아 살림을 꾸립니다. 스무 살이 되면서 며느릿감으로 눈독들여진다는 것은 알지만, 마을의 남자들이 얼마나 한심한지 잘 아는 그녀는 돈을 모아서 마을을 뜨고자 했죠.

약초를 캔다는 단순작업 끝에 길을 잃은 강희는 어쩌다가 선인들의 영역까지 발을 들였고, 여우들이 기르는 삼을 보게 됩니다. 눈앞에 어른어른한 삼을 캐기 위해 한밤중에 다시 불법침입을 시도한 그녀는, 꼬리 다섯 달린 여우에게 잡아먹힐까봐 자신이 산군의 신부라는 거짓말을 해버립니다.



강희의 거짓말 때문에, 졸지에 존재도 모르는 인간 신부를 맞이하게 된 산군은 그런 거짓말을 한 것이 누구인지 보기 위해 친히 그녀의 집까지 나섭니다. 그러다가 그녀의 아버지와 산군의 인연으로 아버지가 저를 산군의 신부로 키웠다 과장하는 강희에게 말린 그는, 한 술 더 떠 강희의 아버지가 갓난아기였던 그녀를 업고 딸을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외치며 돌아다녔던 과거를 말하게 되죠.

그렇지만, 인간과 영물 호랑이는 정말 천양지차인 존재잖아요? 신부로 받아줄 수 없으니 인간들과 살아가라는 산군의 말에 발끈해버린 강희는 제가 얼굴 반반하고 손 야무지고 알뜰하며 골반 넓고 엉덩이가 봉긋해 애도 잘 낳을 것이라면서 객기를 부리고는 바로 후회하면서 펑펑 웁니다. 아주 우습게도 산군은 그 모습을 보며 저를 암컷으로 인식하고 사랑스러움을 느끼면서 신부로 받아들이고자 마음먹었고요.

산군이 보내는 혼수였던지, 강희의 집 마당에는 커다란 수사슴의 시체가 이틀 연속으로 들어옵니다. 첫날에는 좋은 일이라면서 잔치를 벌였던 마을 사람들은 점점 강희가 귀신이나 도깨비에게 홀린 것이라 말하면서 혐오하고, 천애고아인 젊은 여자를 노리개로 공유하고자 했던 남자들은 옳다꾸나 하고 강희의 집에 쳐들어와 윤간을 시도하죠.





인간과 인외존재를 맺어주는 로맨스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욕망으로 가득 찬, 벌레만도 못한 인간 군상입니다. 이 작품 또한 마찬가지죠. 타 마을과의 관계가 폐쇄적인 작은 마을에서 혼자 사는 젊은 여자가 당할 수 있는 (성희롱부터 성폭행까지 포함된)폭력적인 상황은 전부 나오고, 그것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정이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인 <장군의 꽃>은 이런 현실을 확 비틀어버린 형태로 투영했기에 시원한 구석이 있었는데 이건 그렇지 않아서 답답하더군요.

어쨌든 답답하기까지 한, 과하도록 충실하게 반영된 현실이 둘 사이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감정선은 몰라도 강희가 인간계를 버리고 선인계, 그것도 저를 지켜주고 살려준 산군에게 갈 이유는 충만하게 만들어주죠. 둘의 사이는 꽤 달달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저 인간 군상을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에서 호불호가 갈릴 책입니다.



※ 블로그와 동시에 올라오는 리뷰입니다.


"그럼 도망갈 생각은 다신 하지 마."
이미 네 마을은 사라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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