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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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믿었던 소고기를 먹는 것이 부와 남성적 우월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소고기이면 되던 시대는 지났다. 앞에서 육식의 종말을 논하는 사람들과 채식주의자들이 주장하던 그 많은 폐해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 육식이 지배가 주류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지방이 많은 마블링된 소를 키
우기 위해서 소에게 옥수수를 먹어야 했던 역사의 이유는 이성적 욕구가 아닌 식욕이란 맛이란 감성적 육구의 지배에 의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감성적 욕구는 분명 현대에도 우리의 혈관 속에 도도히 흐르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식육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만족해서는 안될 것이다. 소고기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이유에 귀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소고기가 대중적 식재로 등장한 것이 한 300년쯤 되었던 것 같다. 몰론 그전에도 식용으로 사용되었지만 앞으로 한 100년쯤 후에는 소고기가 이렇게 대량 소비되는 식재가 아닐 수도 있다. 100년쯤 후의 세상에서의 식사는 비타민 같은 알약이나 겔 타입이 주류가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현재와 같은 양적 개념의 육류 소비나 유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전체 육류 소비는 감소하고 질적 선호도가 높아질 수 도 있다. 이미 소고기를 먹는 것이 계급적 우위의 상징이 되던 시대는 갔다

고객이 늘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포드식 오만은 자멸을 초래한다. 식육산업도 이제 산업화의 길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고객의 움직임에 먼저 눈을 돌려야 한다. 그저 많이 배불리 먹으면 되었던 시절의 사람들과 영양이 과잉이라 고민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한국사회에서의 식육산업은 고객의 눈높이가 어디인지를 찾는 마케팅이 그 어느 시기 보다 중요한 때인 것 같다.

그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분노하고 질타하던 시대는 갔다. 이제 나와 다른 남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면 그들과 함께 공유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사회지향적 마케팅의 자세가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한 10년 전쯤 LA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났을 때 한인상가의 피해가 심했다. 한인들이 돈을 벌면서도 사회봉사하고 환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찬호도 장학회를 만들어 번 돈의 아주 작은 일부지만 사회에 환원한다. 이제 식육산업도 이 사회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만드는 하나의 자랑스러운 산업의 자리를 만들 때 인 것 같다. 반도체 산업을 우리가 자랑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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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13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