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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의 비밀생활
수 몽 키드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세계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60년대 남부의 인종차별의 현장과 그 속에서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사는 세자매와 그녀들의 공동체 이야기, 그리고 모성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 릴리의 이야기.
어릴적 사고로 엄마를 죽인 릴리는 늘 사랑에 굶주려 한다. 자신을 유일하게 사랑해주는 존재인 자신의 보모 로살린이 인종차별로 인해 감옥에 갇히게 되자 그녀를 구출하는 동시에 가출을 시도한다. 그녀는 엄마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녀는 엄마가 남긴 단서를 통해 벌꿀을 생산하는 오거스트의 흑인 공동체에 문을 두들긴다. 오거스트는 두 자매와 함께 살고 있으며, 흑인 성모마리아를 믿는 '마리아의 딸들'이라는 공동체를 꾸리며 벌꿀 생산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릴리는 이 공동체의 유일한 백인으로서 흑인 사회에서 가시화되는 자신의 존재, 부정당하는 자신의 존재를 경험하며 부당함을 호소한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백인들의 흑인인종차별의 문제들을 성찰해가기 시작한다. 1960년대 남부의 인종차별 상황은 읽는이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지금도 인종차별의 문제는 심각하지만 내가 지금 투표권도 얻지 못한 노예해방 이전 시기의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이 여성들만의 공동체에서 릴리는 그 동안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해왔던 사랑을 듬뿍 받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한다. 지혜로운 여신같은 존재인 오거스트는 따뜻하게 릴리를 보듬어주고, 그녀의 그런 마음이 릴리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열게한다. 이 소설에는 여성 공동체의 모든 가능성을 담고 있는데,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담아오는 메이의 치유방식 ‘통곡의 벽’. 사랑의 갖가지 색과 폭넓은 사랑의 표현을 향유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일상. ‘사랑을 표현하는 열두가지 언어’.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죽은이를 6일간 거실에 두며 죽은자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이들의 슬픔을 해소하는 방식은 슬기롭다고 느껴졌다. 또한 모성애 대한 강한 집착을 갖는 릴리가 공동체의 사랑으로 조금씩 극복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 고통의 극복과정에서 릴리의 심리적 변화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치유의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고, 힘든 일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 소설의 메시지처럼 사랑은 열두가지 언어로 표현해도 모자랄 만큼 다양한 모습을 띠며, 여기서 여성의 지혜와 따뜻한 공동체의 힘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 인종차별의 벽을 뛰어넘어 행복으로 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