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진리 대우학술총서 신간 - 문학/인문(번역) 483
레나토 로살도 지음, 권숙인 옮김 / 아카넷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소설책을 읽는 듯한 흥미진진함과 재치를 담고 있는 <문화와 진리>는 추상적 이론을 서술하는 방식이 아닌, 자신의 현지조사경험과, 신문기사, 일상의 경험 등을 총체적으로 사유함으로써 현실감 있는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레나토 로살도의 이 책은 ‘문화와 문화분석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오랜 연구를 통한 사유의 과정물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비판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다시 새롭게 생산하는 과정의 방대한 서사를 진행한다. 여기서 로살도는 기존의 전통적 인류학에서 맹신해온 객관주의에서 벗어나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객관주의에 관한 치밀한 비판의 과정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문화인류학의 성장과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제국주의적 시각에 관한 반성을 통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방식은 자신의 시각과 입장을 드러내기 위한 치밀한 설득과정을 볼 수 있었고, 글쓰기를 하는 연구자로서 깊이 배울 점이었다. 

기존의 문화를 위계화 했던 시각, 문화를 고정되고 불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던 시각에 대한 허구성을 문제시하며, ‘각각의 문화를 하나의 위대한 예술품으로 간주’해야 하며, 그 저변에는 ‘민주주의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측면을 내포’, ‘모든 문화는 서로 다름과 동시에 동등’(91p)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자세는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현장을 대하는 태도, 지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그리고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한 문화 분석과정에서 ‘누가’ 분석을 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고, 그 다름이 만들어 질 수 있는 지점이 얼마나 여러 지점에서 존재하는지를 지적하는 부분은 아주 탁월하다.

이 책은 문화 해석과정에서 이데올로기적 충돌에 의해, 현지인과 연구자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방식에 의해, 연구자의 경험의 정도에 의해, 연구자의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데, 우리들의 관습적인 형식이 현지조사 일지의 형식까지도 결정짓는다는 점(192p)을 보여준다. 우리들은 현지 노트와 그것에 기반하여 쓰는 민족지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현지 노트를 쓰는 형식에도 영향을 끼치는 글쓰기 방식에 관한 질문들은 무시해왔다.(193p) 어떠한 정황에서 중립적인 언어 또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 등의 개념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드러내는데, 여기서 정보제공자들의 판단이 적절성과 타당성의 결정여부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것은 앞으로 현장연구를 진행할 나에게는 중요한 조언이었다. 또한 연구자가 속해있는 사회의 문화와 규범에 따른 인식에서 벗어나 현장연구를 하는 곳의 문화를 보아야 한다고 지적하는 점 또한 현장연구자로서 실천할 지점이었다. 공식적인 것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인 것, 상투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등을 상세하게 관찰할 때만이 그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시간규율(182p)에 관해 분석한 부분에서 연구자가 속해있던 문화권과는 전혀 다른 문화에서는 시간에 대한 인식이 전혀 다르게 구성되어 있는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설명하며 문화적 차이를 인지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로살도는 알롱코트인들이 자신의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의 비통함과 분노를 머리사냥을 통해 해소하는 문화에 대해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하다가, 자신의 아내를 잃고 난 이후에 그 비통함과 분노가 무엇이며, 왜 머리사냥을 통해 그것을 표현하고자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심지어는 비슷한 경험조차 없는 연구자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잘 드러내주는 예였다고 생각한다. 연구 과정에서 연구자가 경험한 적인 없는 고통을 이해하는 과정은 상당한 성찰이 따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의 고통을 잘 드러내는 글쓰기와 이론화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을까? 타인의 고통을 잘 듣는 다는 것은 어떤 것이고, 어떤 자세가 필요한 것인가? 내가 듣고자 하는 대답으로 유도하지 않고,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런 여러 가지 고민들로 채워져 지내는 과정에서 레나토 로살도의 <문화와 진리>는 고민의 실마리들을 풀어갈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기존의 사회과학에서 하지 않았던 자신의 경험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분석과정의 이해를 높이는 시도를 했다. 또한 연구과정에서 자신이 겪어왔던 시행착오들을 드러냄으로써 타인의 문화를 이해하는 그 어려운 과정에서 미끄러질 수 있는 지점들을 숙고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놓았다.

 

연구자가 연구주제를 설정하고, 연구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에서부터 연구자의 입장이 개입되기 시작한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기초자료 조사를 하고, 연구 대상자들을 만나면서 질문을 하고, 대상자가 하는 말에 개입하면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고, 분석하면서 끊임없이 연구자의 해석과 분석의 과정이 들어간다.

이 세상에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주제를 연구할 지라도, 연구자의 해석과정에서 결과물은 전혀 상이하게 나올 수 있다.  다만 파편적 지식을 전부인 양 드러내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연구 대상자의 삶을 다층적으로 드러내고,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시간에 되는 것이 아니다. 사전 연구물을 읽어낼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시간, 메말라 있는 감수성을 키우고, 섬세한 언어로 표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연구하는 주제에 관해 좀더 깊이 있고, 다층적으로 재현해 내기 위해서는 연구자와 연구 대상자와의 권력관계, 텍스트를 구성해 내는 사람이 갖는 권력 관계에 민감해야 한다. 완전한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보이지 않는 경험을 가시화시키고,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연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초조하고, 불안하며, 외로운 과정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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