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는 책을 잘 안 읽으신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께서 안경까지 쓰시고 한숨까지 쉬시며 열심히 읽으시는 책을 발견했다. 징비록. 내가 며칠전 사놓고 쳐박아두었던 책이었다. 나보다 아버지께서 먼저 읽으실 줄이야. 아버지께선 책 속에서 지금의 모습과 똑같은 우리나라를 보셨다고 한다. 미래를 보지 못하는 나라. 조국을 위해 일하는 진실한 신하들은 바보가 되고 미련하고 무딘 신하들이 이끄는 군대는 일인들의 재물이 되고. 발밑의 충직한 신하보다 명나라의 군대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임금. 이 책은 그간 우리 머리속에 심겨있던 자랑스런 한국인, 논개, 만인의총, 칠백의총, 행주산성, 의병 들의 이름들을 잊어버릴 만큼 강력하고 생생하게 임진왜란 당시의 처참한 현실을 보여준다. 왜 우리는 밟힐 수 밖에 없는 가. 예전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유전인가... 안타까움과 절망이 이 책을 읽는 나의 마음에 베어들었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나는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