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이어 말한다 - 잃어버린 말을 되찾고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글쓰기, 말하기, 연대하기
이길보라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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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라는 인물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은 사람이다. 자신의 표현 방식으로 글과 영상을 선택했고, 그를 통해 세상을 조금씩이라도 바꾸고 싶어하는 예술가이자 활동가인 아티비스트(Artivist, Artist + Activist)이자 농인 부모를 가진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다. 이는 작가의 부모님께서 단순히 소리가 없는 세상을 사신다는 의미를 넘어 보이는 것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자연스러운 분들이라는 의미이다. 그 분들께 박수는 소리가 아닌 반짝임이며, 모자람 없는 완전한 세상 속에서 자신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살아가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수화가 제1언어인 사람들을 농인이라 한다. 그리고 입술을 읽어 소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구화인이라 하고, 소리를 듣는 사람들을 청인이라 한다. 흔히 한국인이라면 한국어가 제1언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생 때 교양으로 수화 수업을 들었다. 그때 수화가 공통어가 아니라는 것은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수화와 미국, 일본, 각 나라의 수화가 다르다는 것과 한국어의 발음을 그대로 표기할 뿐인 수지한국어와 대부분의 농인들이 주 언어로 사용하는 한국 수어는 다르다는 것이 어떤 상황을 만들어내는가를 읽으며 망연했다. 자막으로 표기된다고 전해지는 것이 아니었고, 수화 통역사가 영상에 나온다고 전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알지 못하는 것은 그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고, 그렇기에 인식하지 못한 부분은 공존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에 대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이들을 느끼고, 그 다름을 인지하고,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자연스러움으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와 나의 편안을 공존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을 해야할지조차 막막한 순간에서도, 나의 작은 시도는 그 다음으로 이어질 것이고 끊어지지 않는 이어짐 속에 무언가를 낳게 될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읽었고, 나와 다른 생각에서는 갸우뚱하기도 하고 내가 몰랐던 것에 대해서는 놀라기도 하며 듣고 보았다. 어쩐지 이길보라의 글은 '읽었다'가 아니라 '보았다'고 해야만 할 것 같다. 



다름에 대하여 

우리는 흔히 동질감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다시 고쳐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내가 좋은 것이 너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당연스러운 편안함. 하지만 때로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알게되는 차가운 순간들 때문에 '인간관계'란 항시 어려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소수와 다수의 역학관계는 틀림없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다름'에 대해 생각했다. 


오이와 생토마토를 싫어하던 한 친구를 떠올렸다. 익히지 않은 토마토에서는 비릿한 맛이 난다며 -사실 토마토에는 철분이 많으니 정확한 맛 평가다- 싫다고 했었다. 인구 전체를 보면 그 친구와 같은 사람은 소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 한 명은 아닐 것이다. 그 또는 그녀들에게 너희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생토마토를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으니 너희도 참고 먹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혹은 나에게 그들이 생토마토를 먹지 않/못하니 너도 먹어서는 안된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당신을 이어 말한다>는 '다름'이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저 그것이 존재함을 아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시작될 수 있고 그 누구도 다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글들이었다. 때로 불편한 지점이 있다면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느끼게 하는지, 그것은 나의 '외부'에 있는지 '내부'에 있는지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저자에게 완전히 공감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지점에서는 나와 저자는 갈라졌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이야기가 '이길보라'의 이야기임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그런 순간과 시도를 마주할 때마다 희망이 생긴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각자가 가진 고유성을 인정하기에 '장애'라는 단어를 굳이 가져다 쓰지 않아도 될 때, 사회의 '소수자', '마이너리티', '장애인'이라는 말을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다수'가 '소수'에게 매번 자신의 소수성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믿게 된다.



나는 이 문단을 처음 읽고 '다수'와 '소수'가 바뀌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면서 '다수'와 '소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연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 나를 중심으로 이어진 사회에서 '다수'가 숫자로 이루어진 '다수'와 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나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것을 매번 설명하지 않아도 각자의 '다름'을 헤아릴 수 있는 세상, 그로 인해 설명하지 않아도 받아들여짐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정말 따스할 것 같다. 가불가를 논하기 보다, 그런 꿈을 꾸어도 되는 삶이었으면 한다.


그러나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조금 움찔하게 된 문장도 있었다.



촛불 집회가 확산 및 확장되면서 휠체어, 유모차, 자전거 등의 온갖 탈것이 거리에 등장했고 농인,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청소년, 노인 등의 '사회적 소수자'들도 모였다. 기존의 세계에 질문을 던지기 위해 광장에 모인 만큼 모두가 동등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청인들에게 농인들의 세상이 낯설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실수와 오해들에 대해 긴 이야기를 준비한 저자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부분에서도 조금 더 넓은 시야를 보여주길 기대했던 것 같다. 한 문장 내에서 '농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면, 시각장애인 외에 다른 표현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러나 나는 듣는 자이며 말하는 자이고 보는 자이므로, 맹인과 시각장애인 사이에 어떤 다른 의미들이 있는지를 모른다. 그래서 그 잠시의 불편으로 여전히 내가 모르는 세계들이 존재함을 인지할 수 있었고, 그 영역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음에 저자에게 감사했다.


책을 읽어나가 보면 저자가 수화를 글로 풀어 묘사해놓은 부분들이 존재한다. 그런 부분들을 보면 잠시 읽던 것을 멈추고 따라해보거나, 어려우면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문득 주석이나 첨부로 수화 동작을 그림으로 묘사해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이 불편함, 낯섦이 농인들이 느끼는 청인들의 표현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좀 더 뒷 부분을 읽으면서 저자가 사용한 표현들을 접하고, 그림 자료는 일부러 배제했겠구나 싶었다. 수화는 기호로 표현될 수 없음을, 그 동작의 형식과 형태 뿐 아니라 얼굴 표정까지도 하나로 '보이는' 언어라는 것을 외치는 저자의 문장을 보자 나의 짧은 생각이 민망했다. 어쩌면 나는 농인과 코다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을 알기 전과 후의 내가 조금은 다르다면, 이를 이어가는 그 다음과 또 그 다음은 서로 조금은 더 가까이에서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찾아본 자료 : 수어는 수형, 수위, 수동, 수향과 비수지 표현으로 구성된다. 수형은 손의 모양, 수위는 손의 위치, 수동은 형상을 그리며 움직이는 손의 동작, 수향은 손의 방향이다. 비수지 표현은 표정을 말하며 수어 통역시 결정적이라 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한다.) 


때로 우리는 '내'가 아닌 이들의 이야기에서 낯섦과 동질감을 함께 느낀다. 낯설음은 개인의 세계를 확장하고 동질감은 나의 세계를 공고히 다져준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어제와 내일을 이어 말하는 오늘. 

나와 당신, 우리의 부모님과 그 부모님의 부모님,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들로 이어지는 이야기. 


내가 당신을, 당신이 나를,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이들이 우리를.


그 목소리가 허공에서 사라지기 전에,

이어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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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장도연·장성규·장항준이 들려주는 가장 사적인 근현대사 실황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
SBS〈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제작팀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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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영상으로 방영되었던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하지만 영상으로 접하는 것과 활자로 접하는 것은 이란성 쌍둥이 이상의 색다른 느낌이 있다. 나는 매체 장르를 달리하는 작품을 같이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마음에 든 영화는 원작 소설도 찾아 읽는다거나, 인상 깊게 읽은 작품을 극화한 공연을 찾아본다거나. 


이렇게 하나의 작품을 다양한 장르로 표현하는 것을 OSMU(One Source Multi Use)라고 한다. 이는 스핀오프나 각색과는 조금 다른 개념인데,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하고 들어 보는 대표적인 예로는 마블 시리즈나 해리포터 등을 들 수 있겠다. 여기서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여러 개의 미디어 플랫폼을 이용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다. 


그리고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이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각각의 매체는 각기 가지는 최선의 특성을 살려 제작되고, 따라서 다뤄지는 주제는 각기 색다른 매력과 생명력을 가지고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 식상함이 아닌 신선함이 더욱 강조된다는 말이다. 


이미 <꼬꼬무> 시즌 1과 2를 즐겁게 시청한 적이 있는 분이시라면 이 책을 읽으며 기존 방송에서 느꼈던 놀라움과 일종의 감동을 자신만의 속도로, 더욱 내밀하게 곱씹어 볼 수 있을 것이고 미처 따라가지 못해 놓쳤던 디테일들까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방송을 접하지 못한 분들은 이 책으로 먼저 각 시대의 결절점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시대는 하나의 속도로 흘러가지 않는다. 어느 시점에서는 일종의 분기점이 되는 결절점이 존재하고, 그것은 대개 하나의 사건이 담당한다. 보통은 그를 기점으로 큰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나거나, 시대정신이 변화하는 경우를 떠올리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쌓이고 쌓인 것들이 터져 나오며 분출되는 사건도 해당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달라진 관점으로 되짚어 올라가다 보면 발견되는 바늘 하나이기도 하다. 


그 무엇도 아니지만 무엇도 될 수 있는 수 많은 그날들 중에,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선정된 일곱 번의 "그날들"을 모았다.


보호받아야 할 정조, 보호받을 수 없는 정조 -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


미궁 속에 남은 정치 테러 - 공작명 KT 납치 사건


개돼지보다 못했던 사람들 -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


미워할 수밖에 없는 죄, 미워할 수 없는 사람 - 서진룸살롱 살인 사건


유전무죄 무전유죄! - 탈옥수 지강헌 인질극 사건


사람이 증발한다, 지구 최후의 날! - 1992 휴거 소동


꽃분홍 아지트의 괴물들 - 지존파 납치 살인 사건



이 놀라운 사건들은 그 면면들을 살펴보다 보면 내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 이웃과 동료와 내 부모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느 날 식사 도중 "그런데 옆 동에 ㅇㅇ 아저씨네 말이야.... 그 집이 글쎄...."라고 흘러나올 법한 이야기들이다. 


귀를 쫑긋 세우고 관심있게 들을 법한 놀라운 이야기.

구어체의 말투로 친근하고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일곱 개의 이야기들을 같이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부담감 없이 신기함과 즐거움을 찾아가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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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시체 문화유산 탐방기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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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의 다양한 장례 제의와 매장 의례를 직접 체험한 저자.
그와 관련한 간단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결과적으로 내게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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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아르테 미스터리 19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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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시원한 느낌.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저자도 만나보고 싶고, 데뷔 당시의 순수 문학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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