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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당신이 가장 마지막으로 크게 변했던 건 언제입니까?"
매일매일의 비슷한 일상.
출근하고 퇴근하는, 아이를 데려가고 데려오는 지겨울 정도로 익숙한 나날들.
그런데도 조금씩 나빠지는 상황과 아무 걱정 없이 해맑아 보이는 과거 어느 순간의 나.
손원평의 신간 <튜브>는 겹겹이 밀려드는 파도에 휩쓸려 떠돌다 자기도 모르게 가라앉아가는 이들에게 가느다란 지푸라기를 보여준다. 당신이 잊고 있을 뿐, 누구에게나 지푸라기는 있다고. 그것 하나로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지푸라기를 모아 엮어 나가다 보면 튜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소설의 주인공인 김성곤 안드레아는 몇 차례나 거듭되는 사업 실패 끝에 이혼을 목전에 둔 중년 남성이다. 한때는 모든 걸 가진 것 같았던 때도 있었는데, 다 잘 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아득하기만 하다. 포기하지 말아라,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라, 변화해라 같은 입에 발린 소리는 항상 들어왔는데, 어쩐지 이번만큼은 뭔가 될 것도 같다. 아니, 이것 하나만은 해보고 싶다. 그러면 모든 게 좋아질 것만 같다.
김성곤은 평범하고 흔하다. 유별난 정의로움을 가진 것도 아니고, 딱히 눈살을 찌푸릴만큼 모나거나 악하지도 않다. 무색무취의 불행함을 견디고 있고, 그저 그런 미래가 예상되고 있다. 어쩌면, 그렇기에 누구나가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진석의 독백처럼, 측은하지만 딱히 나도 그보다 썩 나은 것 같지는 않아서 복잡해지게 되는 그런.
이 책은 한 남자의 인생역전 성공 스토리는 아니다. 뭔가 바꿔보고 싶었고, 그래서 노력했고, 그 결과가 어렴풋한 형체로 보이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이 지점까지는 여러 번 도달해보았다. 뭔가를 시도해볼 때마다 단번에 포기하게 되지는 않는다. 조금쯤은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 이래서 사람들이 하는구나 싶기도 하다가, 어떤 계기로 그것을 잠시 멈추게 되었을 때 진짜 시험을 마주한다. 한 번 깨진 루틴을 다시 이어가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보다 몇 배는 힘들다. 익숙한 관성에 이끌려 '좋긴 했는데...'라고 그만두고 만다.
그러나, 그것이 '실패'인가?
김성곤이 꾸었던 '지푸라기 프로젝트'의 꿈은 그 하나 하나는 지푸라기일지라도, 그것들이 모였을 때 만들어질 튜브를 상상한다. 나 혼자만의 의지로 어려울 때는 다른 이들의 응원에 힘입고, 그래서 한 발을 내딛은 뒤에는 나 역시 누군가의 한 발을 응원해주는 선순환.
튜브는 파도로부터 건져올려 하늘로 띄워주지는 않는다. 가라앉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파도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진정으로 꿈꾸어야 할 변화는 흔들림 자체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오고 가는 흐름의 변화를 매 순간 즐기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박신영에게서 김성곤의 미래를 보았다.
되는 것부터. 너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중 되는 것부터, 운동이든 공부든, 책을 읽는 거든. 하다못해 나처럼 등을 펴는 게 됐든. 너 혼자 정해서 너 스스로 달성할 수 있는 것부터.
끝이 언젠데요. 알게 돼.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상황이 끝나든 네 마음이 끝나든, 둘 중 하나가 닥치게 돼 있으니까.
생각만 바꿔선 안 돼, 아빠. 아영이가 엄숙하게 말했다. 행동까지 바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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