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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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모니터를 보다, 정신을 차리길 한두번, 요즘의 일상입니다. 소위 멍때린다는 표현으로 지금의 상황을 대변할 수 있습니다. 조그만 열정들은 자취를 감춘지 몇 일이고, 읽던 책은 습관적으로 읽되 부담없는 책들만을 집어 들고 있습니다. 의지와 무기력 사이에서 후자에 무게를 더 많이 두는 요즘입니다. 

어디선가 열정의 고리를 이을 뭔가가 필요했습니다. 딱히 잘하는 것도 즐겨하는 것도 많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책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합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읽었습니다.

발자크의 인생 만큼이나 열정적으로 한 호흡에 긴 글을 읽었습니다. 읽는 와중에 스스로 속도를 못이겨 짐짓 정신 차리기 몇번 했습니다. 발자크가 쓴 책 한권 읽지 않고서 발자크 평전을 읽는 다는 것이 우습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허할 때 전기나 평전을 읽으며, 새로운 열정의 고리를 찾는 경우가 가끔있습니다.

세상과 단절된 공간, 스스로 만든 공간에서 무한한 사실성을 토해낸 그의 천재적 필력에 읽는 내내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지독히도 스스로를 몰아부쳐 극한의 시공간에서 창조력을 빛낸 작가는 지금의 내 모습과 비교되어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들기 충분합니다.

<<인간희극>>이라는 전대 미문의 소설을 20여년간에 엮은 발자크는 아마 이전에도 이후로도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합니다. 40여일 만에 썼다는 '고리오 영감',  말미에 휘갈겨 쓴 '사촌베트', '사촌 퐁스', '농부들', '시골의사', 6주면 일반 소설가가 평생을 털어 만들 수 있는 역작을 토해냈습니다. 개별적으로 만들어진 인물들을 여러 작품에 되풀이하여 등장시키고, 인물 유형들이 이렇게 여러 작품에 돌아다니게 함으로써 모든 계층과 직업과 사상과 감정과 맥락들을 포괄하는 복잡한 문학적 시대사를 썼습니다. 그것이 인간희극이라는 걸작입니다. 한두개의 소설이 아닌 소설의 군집으로  또다른 큰 문학의 지평을 열었습니다.

사실주의의 극한을 달린 천재, 광기의 천재라고 밖에는 붙여질 형용사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평생을 짊어진 부채, 낭비벽, 사업실패, 인생의 오판이 그 스스로가 자신을 희생시켜 하나의 소설을 완성 하는 듯합니다. 19세기 프랑스의 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소설들에 그의 인생이 덧붙여져 시대상을 또렷하게 새깁니다.

발자크에 있어 힘겨운 가족의 굴레를 넘으려는 시도와 좌절 그리고 거듭된 실패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두려움과 인생의 쓴맛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다시 해볼 수 있다는 성공할 수 있다는 의지의 샘솟음이었습니다. 여기에 그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그의 진정한 천재성은 의지력에 있었습니다. 따라 갈 수 없습니다만, 지향점을 찍을 수는 있습니다. 천재적인 의지력과 하루 16시간의 집필을 평생한 그의 꾸준함, 그리고 현상을 파고들어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 인간이 담을 수 없는 상상력을 가진 그의 모습에서 100분의 1, 아니 1000분의 1이라도 닮고 싶습니다.

발자크 평전입니다. 그렇기에 그에 대해 긴시간 생각하며, 경외감을 느낀 시간입니다. 그러나 발자크와 더불어 그의 생애를 이렇듯 폭발적인 언어로 기술한 슈테판 츠바이크 또한 대단하단 생각뿐입니다. 발자크의 인생을 글 속에서 오롯이 만끽할 수 있습니다. 그의 열정적 인생만큼이나 글의 전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 또한 대단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코예프스키의 일화와 더불어 이 책을 보면 즐거움이 배가 될 듯합니다. 또한 글 중 폴발레리에 관한 한줄이 나와 상당히 반가웠습니다.
폭발적인 열정의 소유자, 발자크의 인간희곡을 언젠가 읽을 날이 오길 바라는 맘으로 서평을 마무리합니다. 곧 제 손에 고리오 영감이 들려져 있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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