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부자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힘들 때 도와 주기도 합니다. 물론 공짜로 주지는 않구요, 차용증을 쓰거나 현물을 저당 잡기도 합니다. 그래도 힘들때 도와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한 일입니까? 또한 제가 힘들게 만든 물건을 사가기도 합니다. 물론 막역한 친구이니 전 많은 돈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 친구는 가끔씩 따끔한 충고도 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해야 보다 잘 살 수 있다. 더불어 잘 살기 위한 방법도 친절히 제시해줍니다. 그렇기에 전 이 친구와 절대 헤어질 수가 없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영원한 제 친구이니까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이 친구 주위에 있다보니, 전 점점 더 가난해집니다. 늘 친구의 충고에 따라 죽을 힘을 다해 일하는데 전 잃는 것이 조금씩 많아집니다. 제 탓이려거니 하기에는 수상한 구석이 한두군데가 아닙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친구와 저의 관계를 되짚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왠걸 이 친구의 충고는 절 위한 충고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힘들게 일해 번돈이 조금씩 그 친구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 고발해야 할까요? 배신감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비록 지어낸 이야기 입니다만, 이 상황을 국가간의 이야기라면 제가 확대 해석한 것일까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었습니다. 그 친구가 바로 사마리아인, 선진강대국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늘 주장하는 더불어 잘 사는 방법이란 신자유주의 정책입니다.

근래 신자유주의 정책의 파국에 온 나라가 혼돈 속에 웅성입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나은 유동성 과잉에 경제의 근간이 흔들리고, 경기 침제가 바닥을 뚫고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본질적 결함을 논하지는 않습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또다른 이면, 경제대국이 개발도상국 착취 수단으로서의 폐혜를 낱낱이 고발합니다. 역사는 반복 된다는 큰 명제하에 다시 생각해보면, 신자유주의 정책은 개도국이 선진국에 바치는 현대적 조공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 이념을 실천하는 선진국의 충복들은 다름아닌, IMF, 세계은행, WTO입니다. 1997년을 되돌아 보면, 우리는 IMF 구제 자금을 받기위해, 외국인 투자 상한선이 대폭 확대되고, 성장률 뿐아니라, 국가 예산 집행에 까지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 납니다. 구제한다는 명목하에 그들은 교묘히 덫을 짜놓고 기다렸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탄탄한 경제적 기반을 다지기 위한 필요조건 이란 명목하에 수탈의 고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대전제 하에 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역사를 되짚어 현재 선진국들의 과거 모습을 파헤칩니다. 이 들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그 들이 부를 축적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신자유주의 정책의 전통적 지혜라는 것들을 뒤집어 생각해봅니다. 세계화, 자유무역, 외국인 투자, 민간기업 확대, 저작권, 재정 건전성, 부패, 민족성 등을 자세히 다룹니다. 각 단어 하나하나가 하나의 챕터를 이루며 막연한 주장이 아닌 역사적 증거와 현실의 증거를 토대로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책의 결론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냅니다. 이 책의 백미는 이 주장들을 반박하는 저자의 생생하고, 풍부하며 명료한 논리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의 종착역에서 마주할 수 있는 현실을 처절할 정도로 생생하게 예상합니다. 그리고 그런 역사를 후대에 남기지 않기 위한 저자의 주장이 대미를 장식합니다.

주장의 핵심에는 기울어진 경기장이 있습니다. 출발선이 다른 만큼 개도국의 상황에 맞는 환경을 조성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출발선에서 같이 뛰는 것은 결국 개도국의 엔진을 서서히 멈추게 하는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선직국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면 약한 나라들이 자국의 생산자들에 대한 보호와 보조금 정책을 보다 강력하게 실시하고, 외국인 투자에 대해 엄격하게 규제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합니다. 지적 소유권 보호를 완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술 이전에 도움 또한 줘야합니다. 단기적인 이익이 아닌 장기적인 화합의 선언입니다.

시카고 학파의 주장이 빛을 잃어가고 케인즈 학파의 주장들이 서서히 힘을 받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시기 적절합니다. 물론 적당한 타이밍 때문에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봅니다. 정권이 바뀌고 신자유주의 정책의 속도는 배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버스를 타고 벼랑으로 돌진하는 형국입니다. 다들 살아보자는데, 죽을 힘을 다해 벼랑으로 갑니다. 거꾸로 가는 정부란 말은 심심풀이로 나온 말이 아닙니다. 지금의 정부까지 명맥을 유지해온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는 분명 수정 되어야합니다.

저자는 희망이란 단어로 마무리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 속에서 희망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 능력의 부족함 때문만이 아님은 명백합니다. 불온서적이란 타이틀과 마지막 희망이란 단어가 씁쓸하게 교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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