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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괴테의 문제작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을 읽었습니다. 경제관련 서적을 읽던 도중에 잠깐 머리 식히려고 들었습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은 잠깐 짬을 내서 읽기 적당한 두께이기에 쉽게 첫 장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어릴적에도 한번정도 읽었을 법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전혀 기억이 안났습니다. 이전에는 읽지 못했던 책을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아, 가까운 사람을 위하여 스스로 피를 흘리고 죽음으로써 친구들에게 백 배의 새로운 생을 북돋아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소수의 숭고한 사람에게만 부여된 일입니다.
젊음,
사랑,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익히들 이 책의 내용은 알고 있을 겁니다. 책, TV등 미디어에서 나오는 사랑의 결말은 최고의 행복이거나 아님 죽음이 대부분입니다. 최고의 행복이 결론적으로 해피엔딩이겠지만 말이지요. 그러나 제게 있어서 해피엔딩은 행복에 겨운 끝맺음이 아닙니다. 더구나 죽음을 부르는 비극은 아니지요.
너무나 극적인 사랑이 휩쓸고 있는 요즘에 저의 사랑의 결실은 평범한 일상입니다. 평온한 일상을 잃어 본적이 없는 사람은 그것의 대단함을 모릅니다.
단언컨데 고요한 일상의 영위가 사랑의 최고 결실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의 바탕 속에 이 책의 내용이 공감갈 수는 없었습니다. 무책임한 결말이, 시니컬한 제 마음의 껍질을 전혀 벗겨주지 못했습니다. 독일 고전 문학의 위대함을 논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지만 제겐 그저 현실을 배제한 사랑다툼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감수성 없는 저이기에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할리 없었습니다. 책의 문학사적 가치를 배제하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단지 작중 인물의 행동에 울컥해서 하는 말들입니다.
제겐 죽음을 논할 때 가장 떠오르는 인물은
다자이 오사무입니다. 일본 전후 허무주의의 대표주자이지요. 그의 작품에서 오는 상실감에 한 때 빠져있었습니다. 솔직히 오사무라는 작가와 베르트르라는 작중 인물을 비교하는게 의미없을 수 있겠지만, 생의 마감을 대하는 자세로 비교가 됩니다.
웃자고 시작한 일에 죽자고 덤비는 꼴이 되었습니다. 잠깐 쉬려고 든 책에 울컥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만큼 몰입해서 읽었다고 볼 수 있지요. 거장이 거장일 이유는 분명 있을 테니깐요. 허나 이 책의 번역은 조금 걸립니다. 좀더 쉽게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읽는 도중에 많이 들었습니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다른 번역본을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